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
소같은 근면과 성실은 부와 재산을 상징
|
기축년(己丑年) 소띠의 해가 밝았다. 다난했던 2008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은 사람들 표정이 생기롭다. 예기치 않은 경제 불황으로 다들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저마다의 마음엔 희망과 기대가 싹 트고 있을 것이다. 2009년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해가 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새 천년을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해가 아홉 번 바뀌었다. 긴 역사로 보면 순식간의 일이지만 우리는 지난한 시간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소(丑)는 12支의 두 번째 동물이다. 우직함과 순박함을 타고난 동물로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가축 중 최고로 친다. 가난에 허덕이던 저 7, 80년대 소는 집안을 일으키고 희망을 불어넣는 보배이자 든든한 재산목록 1호였다.
송아지를 1년 정도 키워 시장에 내다팔면 자식 대학 등록금을 댈 수 있었다 해서 이를 ‘우골탑(牛骨塔)’이라 불렀다. 집안의 유일한 재산인 소를 팔아서 자녀의 학비를 댄 데서 비롯된 말이다. 소를 ‘농가의 조상’ 또는 ‘생구(生口)’라 부른 것도 집안에서 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떠했던가를 말해준다.
강원도 삼척에서는 외양간 문에 “소는 남산의 범 같고(牛如南山虎), 말은 북해의 용 같다(馬似北海龍)”는 글을 써놓았다. 또 홍천에서는 송아지가 태어나면 외양간 입구에 사흘 동안 금줄을 쳐놓았다고 한다. 이는 사람과 소를 하나로 여겼던 옛 사람들의 진득한 정을 엿보게 해준다. 소는 입춘첩에도 등장해 외양간 안쪽에, “입춘이 되니 크게 복되고, 서울에는 경사가 많다”라든지 “재앙은 물러가고, 복은 들어온다” 따위의 글귀를 붙여 소가 탈 없이 잘 자라길 빌었다. 소는 사람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예부터 소 말 돼지 양 닭 개를 육축(六畜)이라 하여 사람과 가장 가깝고 친근한 동물로 여겼다. ‘설날 송아지 울면 풍년 든다’는 말은 예부터 우리 조상들이 소를 아주 귀히 여겼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 옛 분네들은 정월의 첫 축일(丑日)을 이른바 소의 날(생일)로 정해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영양이 듬뿍 든 쇠죽을 끓여 먹였다. 이리저리 불려 다니느라 시달렸던 소도 이날만은 팔자 늘어지게 쉬는 날이었다. 이 날은 도마질을 하지 않고 쇠붙이로 만든 연장도 다루지 않았다. 도마질을 하지 않은 것은 쇠고기를 요리할 때 도마에 올려놓고 썰어야 하는데 ‘소의 날’이므로 그 같은 잔인한 짓을 삼간다는 뜻이다. 또 쇠로 된 연장도 소에게 일을 부리지 않는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옛 시절, 단오나 추석 같은 명절날 마을에서 힘센 장사들이 모여 씨름대회를 열곤 했는데 이때 우승을 한 장사에게는 황소 한 마리가 상으로 주어졌다. 그리고 우승자는 그 황소를 타고 마을을 도는 풍습이 있었다. 이런 풍습은 지금도 내려오는데 마을에서 힘께나 쓴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라고 했다. 여기서 덕은 소의 타고난 품성을 일컫는다. 이를 테면 우직하나 성실하고 유순하며 참을성이 많고 끈질기며 힘이 세다 자랑하지 않고 늘 자기희생(순종)을 삶의 신조로 여긴다. 모략하고 비방하고 시기하고 자랑을 일삼는 인간에 비해 이 얼마나 거룩하고 참된 동물인가.
소는 우리 역사나 신화, 문학, 회화(會畵)에 아주 친근한 동물로 등장한다. 특히 농사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은 우리 민족이 소를 기른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부여조에는 ‘전쟁이 벌어졌을 때 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지낸다. 이때 소 발굽이 벌어져 있으면 흉한 징조이고 합쳐져 있으면 길한 징조라고 점쳤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고고학자들은 우리 민족이 석기시대부터 소를 길러왔음을 고대 벽화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그 한 예로 고구려 고분인 황해도 안악군 안악 제1호분에는 여물을 먹는 소의 모습과 코뚜레를 하고 있는 소가 보인다. 또한 화가 이중섭은 일제시대의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역동적인 소 그림을 남겼으며 박목월 시인은 ‘황소예찬’에서 소가 지니고 있는 유순함, 성실, 어진 눈 등을 아름다운 시어로 노래하기도 했다. 우리 전통사상에서도 소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유교에서 소는 의(義)를 상징했으며 불교에서는 사람의 곧은 성품을 소에 비유했다. 특히 십우도(十牛圖)는 동자(童子)가 본성인 소를 찾아 길들이는 과정을 10단계로 나타낸 것으로 수행의 참 의미를 일깨워준다.
소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근면하고 성실하며 꾸준히 노력해 성공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근면과 성실은 부(富)와 재산을 가져다주게 마련이어서 소띠 태생은 여러 모로 부러움을 사곤 한다. ‘꿈에 황소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거나 ‘소처럼 생긴 터에 무덤을 쓰면 자손이 부자가 된다’같은 속담은 소가 재물과 명예의 상징임을 보여준다. “천천히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속담처럼 소띠들은 맡은 바 일을 끈기 있게 밀고나가 마침내 성공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는 사람 역시 소띠 태생일 확률이 크다.
이와는 달리 ‘황소고집’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해 오해를 사는 일도 가끔 벌어진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소귀에 경 읽기’라는 말은 이 황소고집에서 생겨난 말이 아닌가 한다. 이런 황소고집은 종종 사람들의 눈총을 사기도 하는데 한번 화가 났다 하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한바탕 난리를 친다든가 강자에게는 결코 무릎을 꿇지 않는 면도 보여준다.
우둔하고 미련한 사람을 소에 비유하기도 한다. 좀 거북하게 와 닿는 말이지만 ‘겨울 소띠는 팔자가 편하다’든가 ‘그늘에 누운 여름 소 팔자다’라는 말도 있는데 때만 잘 타고나면 일을 안 해도 편하게 산다는 우스개 섞인 표현이다. 이밖에 굼뜬 사람을 보고 ‘소죽은 넋 덮어쓰다’라고 하고, 고집스런 이를 가리켜 ‘소죽은 귀신같다’라고 하며, ‘소 닭 보듯 한다’는 서로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무덤덤한 사이를 빗대 이르는 말이다.
소띠 해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는 이 나라를 빛낸 분들이 많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위대한 고승인 원효대사,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 청산리 싸움의 김좌진 장군, 시인 노천명, 소설가 김동리, 상록수의 작가 심훈 같은 분들이 그런 분들이다.
이맘때쯤이면 누구나 한 해의 운세를 점쳐보곤 한다. 무슨 띠는 어떻고 무슨 띠는 어떻다며 역술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이런 ‘띠 풀이’는 정답이 없다. 좋고 나쁘다는 이분법적인 해석에 연연하기보다 맡은 바 일에 충실하면 그게 바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제 소의 힘찬 울음소리처럼 한 해가 활짝 열렸다. 저기 희망이 보인다. 2009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경제 불황이 나라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하기에 따라서는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어느 때보다 충천해 있는 1월이다. 불필요한 갈등과 마찰을 줄임으로써 이 정부가 나라의 역량을 미래지향적으로 이끌어 가길 국민들은 간절히 원하고 있다.
힘들고 험난했던 지난해를 거울삼아 당찬 각오로 새날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소처럼 느리지만 꿋꿋하게 변화와 발전의 토대가 마련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저 들판을 힘차게 뛰어가는 황소처럼 머잖아 우리 경제도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김동정(수필가·아동문학가)
* 윗 글은 '한의신문'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