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전설, 설화

[스크랩]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만남과 내기

道雨 2007. 12. 19. 22:00

<불교설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만남
허공에 세운 계란 : 금강산·장안사

서산대사

 

사명대사

 


묘향산을 한달음에 내려오는 한 스님이 있었다. 의발은 남루했지만 그 위엄은 천하를 압도하는 기풍을 지녔다. 축지법을 써서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를 지나 강원도 금강산 장안사로 향하는 그 스님은 사명대사. 서산대사와 도술을 겨루기 위해 가고 있었다. 서산보다 스물 세 살이나 아래인 사명은 자신이 서산대사보다 술수가 아래라느나, 높다느니 하는 소문을 못들은 체했으나 풍문이 꼬리를 물고 퍼지자 돌연 실력을 겨뤄 보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신출귀몰한 서산대사의 실력을 모르는 터는 아니나 나의 묘기로 서산을 궁지에 몰아넣어 세상을 놀라게 해야지." 사명의 마음은 다급했다. 서산대사가 있는 금강산 장안사 골짜기에 이르자 우거진 숲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소리는 천 년의 적막을 흔들며 요란했다. 사명당이 이 계곡을 오를 무렵 서산대사는 굴리던 염주를 멈추며 상좌를 불렀다.

"이 길로 산을 내려가 묘향산 사명대사를 마중하여라." 상좌는 깜짝 놀랐다.
"장안사에 사명 스님이 오신다는 전갈이 없으셨는데요."
"허허 골짜기를 내려가노라면 냇물이 거꾸로 흐르는 곳이 있느니라. 바로 거기에 사명대사가 오시고 있을 거네."
서산대사는 앞을 훤히 내다보는 듯 말했다.

"냇물이 거꾸로 흐르다니.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로구나." 상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절을 나섰다.
"정말 사명대사가 오시는 걸까. 아니면 서산대사가 나를 시험하려 함인가."

평소에 없던 분부라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면서 골짜기를 향해 내려가던 상좌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분명 냇물이 거슬러 흐르는 것이 아닌가. 고개를 들어 앞을 살피니 과연 저만치 웬 스님이 오고 있었다. 상좌는 그 스님 앞에 공손히 합장배례했다.

"스님, 스님께서 사명대사이시온지요?"
"그렇소마는…."
"먼 길에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저는 서산대사의 분부 받고 대사님을 마중나온 장안사 상좌이옵니다."
"아니… 그래…." 사명당은 내심 놀랬다.

'서산대사가 어떻게 알고 마중까지 내보냈을까.' 마치 덜미를 잡힌 듯 아찔함을 느꼈다. 상좌는 앞장서서 걸었다. 소문만 듣던 사명대사를 직접 모시게 되니 누구에겐가 자랑이라도 하고픈 마음이었다. 이윽고 장안사에 이르렀다. 그때 법당문이 열렸다. 서산대사가 막 법당을 나서려는 찰나였다. 사명당은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공중에 날아가던 참새 한 마리를 잡아 쥐곤 첫 말문을 열었다.

"대사님, 내 손아귀에 있는 이 참새가 죽을까요, 살까요?"
사명의 손 안에 있는 새인지라 새가 죽고 사는 것은 사명당에게 달려 있었다.

이쪽도 저쪽도 택하기 어려운 그 질문 앞에 서산은 의연히 입을 열었다.
"허허 사명대사, 이 몸의 발이 지금 한 발은 법당 안에 있고, 한 발은 법당 밖에 나가 있는데 이 몸이 밖으로 나가겠습니까, 안으로 들겠습니까?"

이 또한 난처한 질문이었다. 안으로 든다고 하면 한 발을 마저 밖으로 내놓을 것이요, 밖으로 나갈 것이라 답하면 안으로 들 것이니. 잠시 생각에 잠긴 사명당은 멀리서 객이 오는데 밖으로 나오는 게 당연한 도리라고 판단했다.
"그야 밖으로 나오시겠지요."
"과연 그렇소. 사명당이 그 먼 길을 한달음에 오셨는데 어찌 문 밖에 나가 영접치 않겠소."

모든 답이 끝난 듯 서산은 사명에게 어서 올라올 것을 권했다. 그러나 사명은 손에 참새를 쥐고 있는 터라 답을 듣고 싶었다.
"고맙소이다. 대사님, 이 참새는 어찌 되겠습니까?"
"불도를 닦는 분이 어찌 살생을 하겠습니까?" 서산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당대 고승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명은 자기가 오게된 사유를 말하고 이번엔 도술로 겨루자고 제안했다. 사명은 지고 온 봇짐에서 바늘이 가득 담긴 그릇을 하나 꺼냈다. 잠시 그릇 속의 바늘을 응시했다. 이게 웬일인가. 바늘은 먹음직한 국수로 변했다. 사명은 맛있게 먹으면서 서산에게도 권했다. 이를 지켜보던 서산 역시 국수를 먹었다. 그리곤 사명과는 달리 입에서 바늘을 뱉아 놓았다. 대단한 신술이었다.

사명은 다시 계란을 꺼내더니 한 줄로 곧게 쌓아 올렸다. 그러나 서산은 그 반대로 공중에서 계란을 쌓아 내려왔다. 사명당은 초조해졌다. "아래서 위로 쌓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사명은 열세를 느꼈으나 한 번 더 겨루기로 했다.

사명당은 하늘을 우러렀다. 구름 한 점 없던 장안사 상공에 갑자기 먹장구름이 뒤덮이더니 천지를 흔드는 천둥번개와 함께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땅 위의 모든 것을 삼킬 듯한 무서운 위세였다.

"사명대사, 과연 훌륭한 신술이오."

이쯤 되면 서산대사도 굴복할 것 같아 사명은 내심 기뻤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헛기침을 했다.
"뭘요, 대사께선 아마 이 비를 멈추게 할 뿐 아니라 하늘로 되돌리시겠지요."

"허어, 사명대사님이 미리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니? 그렇다면…." 사명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서산은 좀 전의 사명처럼 합장한 채 하늘을 우러렀다.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줄기차게 퍼붓던 비가 뚝 그치고 빗방울은 하늘로 거슬러 올라갔다. 함참을 오르던 비는 눈부실 만큼 아름다운 새로 변하여 나르는 것이었다. 청명한 천지엔 새의 노래와 환희로 가득찼다. 가슴 조이던 사명은 이 변화무쌍한 광경에 자기의 모자람을 깨달았다.

"대사님! 진작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과연 만천하의 스승이옵니다. 부끄러운 몸이나 저를 제자로 삼아 법도에 이르도록 가르침을 내려 주옵소서." 사명당은 눈물로써 제자되기를 간청했다.
서산대사도 마음이 흡족했다.
"진정 그러하시다면 나 또한 즐겁지 않을 수 없소. 그대같이 슬기로운 제자를 맞게 되니 더없이 기쁘구려."

그들은 합장한 채 오래도록 부처님 앞에 서 있었다. 사명은 그날부터 서산의 수제자로 용맹정진했다.

 

어느 날 서산대사와 사명당께서 길을 나섰다.

잠시 쉬기 위해 앉아있는데 누렁소와 검은소가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있지 않은가.

슬며시 마음이 동한 사명당께서 스승인 서산대사께 여쭈었다.

“스승님 누렁소와 검은소 둘 중 어느 소가 먼저 일어날지 주역 궤를 한번 빼볼까요?”

“좋지.”

궤를 뽑아보니 불〔火〕자가 나왔다.

“스승님 누렁소가 먼저 일어날 것입니다.”

“글쎄, 아닐걸”‘걸’자가 끝나기도 전에 검은소가 먼저 일어났다.

“이상하다. 분명히 불〔火〕자가 나왔는데, 어째서 검은 소가 먼저 일어난 것입니까?”

“불은 원래 검은 연기가 먼저 피어오르고 그 다음에 불꽃이 이는 거지.”

사명당께선 속으로 스승의 지혜에 탄복하셨다.

 

그러던 어느 늦가을, 두분은 다시 먼길을 떠나게 되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곧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쯤 피곤에 지친 그들 앞에 외딴 초가가 나타났다.

두분은 주인께 하룻밤 쉬어가게 해달라고 청했다.

사람 좋은 주인은 방을 내어주며 쉬게 하고 부인에게 배고픈 나그네를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 했더니 부인은 조금 남은 밀가루로 국수를 만든다고 하였다.

늦은 저녁식사를 기다리던 사명당께서 스승에게 다시 여쭌다.

“스승님, 저녁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오늘 저녁으로 뭐가 나오는지 맞혀볼까요?”

“좋지.”

“뱀〔巳〕자가 나왔으니 틀림없이 국수가 나올 겁니다.”

“글쎄, 아닐걸.”

“이번엔 맞을 겁니다.”

그러나 저녁식사로 나온 건 수제비였다.

주인아낙이 조금뿐인 밀가루에 물을 많이 넣어 질어졌으나 밀가루가 더 없어서 할 수 없이 수제비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상하다. 어째서 틀렸을까?”

“그건 봄·여름에 그 궤를 뽑았으면 국수지만 지금은 뱀들도 땅에 들어가 동면하는 계절이 아니냐. 그러므로 길지 않고 동글하게 말아서 동면하니 국수가 아니고 수제비니라.”

사명당께선 진심으로 스승의 지혜에 탄복했다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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