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박물관 야외전시물 사진 (2008. 2. 10)
* 만덕터널 지나 오른편에 있는 만덕사터에서 옮겨온 고려시대의 만덕사지 삼층석탑.
만덕사는 고려말 공민왕 때 왕위계승을 둘러싼 다툼의 희생양이 되었던 왕실사찰로 전해진다. 만덕사지에는 인위적으로 파괴된 대좌나 초석 등 흔적들이 남아 있다.
* 조선시대의 석조 부도
*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조여래입상.
신체의 크기에 비해 머리 부분의 길이가 길고, 돌의 재질도 달라 보여 본래의 제짝인지 의심스럽다.
*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이는 석조여래입상
* 합천의 삼가면에 있는 영암사터의 쌍사자석등 복제품이다.
영암사터는 절의 축대와 금당터, 탑과 건물의 초석, 귀부 등 많은 유물이 남아있는 폐사지로서, 훌륭한 답사처이다.
* 동래부사를 지낸 유심의 선정비인데, 비석의 받침(귀부)이 해학적인 모습을 보인다. 비석을 세운 사람의 실명도 새겨져 있다.
* 다리를 웅크리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거북의 얼굴 모습이 이채롭다.
* 비석을 세운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놓고 있다.
* 정면에서 바라본 얼굴 모습. 눈, 콧구멍, 입 등이 해학적인 모습이다.
* 동래성 남문비. 많이 훼손되어 글씨를 알아볼 수 없지만, 그 내용은 전해져와 옆에 새로이 복제품 비석을 만들어 세워놓았다.
* 남문비의 이수 부분.
* 구한 말 대원군 때 세운 척화비.
* 약조제찰비.
**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이 비석은, 1683년에 동래부사 윤지완과 쓰시마섬주가 왜관의 운영을 위한 금제조항 다섯가지를 제정하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비석의 높이는 140cm, 폭은 68cm이며, 머리는 반달모양이고 재료는 화강석으로, 원래 초량왜관(草梁倭館)이 있던 용두산공원 동쪽에 있던 것을 1978년 5월에 부산시립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1607년(선조 40) 수정도 부근의 두모포에 왜관이 설치되고 양국간에 국교가 정상화되자 왜관에는 쓰시마섬 관인과, 상주 왜인이 거주하게 되고 일본 상인들의 출입도 빈번해지면서 두 나라 상인의 접촉도 많아졌다. 이에 따라 밀무역, 잡상행위 등 여러 가지 폐단이 일어났고, 정부에서는 폐단을 바로잡기 위하여 여러 차례의 약조를 맺어 위반자를 엄히 단속하였다. 그러나 두모포에서 초량(용두산 일대)으로 왜관을 옮긴 후 왜관의 규모가 커지고 면적도 넓어져 왜인들의 범법행위가 심해졌다.
이에 1683년에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윤지완이 돌아올 때 쓰시마섬에서 섬주와 함께 전문 5개조에 달하는 약조를 체결하였는데, 같은 해 8월에 양측은 약조를 각각 한문과 일본어로 명문화하고 비석에 새겨서 조선측은 수문 안에 세우고 일본측에서는 왜관의 경계선에 세워서 널리 알리게 하였다. 이때 조선측에서 세운 비가 지금 남아 있는 비석이다.
비문의 내용은 ‘출입을 금한 경계 밖으로 넘어나온 자는 크고작은 일을 논할 것 없이 사형으로 다스린다. 노부세(路浮稅)를 주고받은 것이 발각되면 준 자와 받은 자를 모두 사형으로 다스린다. 개시(開市)하였을 때 각 방에 몰래 들어가 암거래를 하는 자는 피차 사형으로 다스린다. 4·5일마다 여러 가지 물건을 공급할 때 아전(衙前)·창고지기·통역 등은 일본인을 붙들어 끌어내어 때리는 일이 없도록 한다. 피차 범죄인은 왜관 문 밖에서 함께 형을 집행한다. 왜관에 있는 여러 사람은 만약 용무가 있으면 왜관 사직(司直)의 통행증을 가지고 훈도와 별차가 있는 곳에 왕래할 수 있다.’ 등이다.
* 효암리 월경 전복채취 금령 불망비.
정조 23년(1799)에 기장군 장안읍 효암리에 세워진 비석인데, 당시 경상좌병영(울산)에서 군사들이 지역 경계를 넘어와 진상품이었던 전복을 마구 채취하는 것을 금지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자연석에 글씨를 새겨 넣었다.
* 동래성에 있던 인생문 돌현판.
인생문은 동래읍성에 있었던 6개 문 중의 하나이다. 임진왜란 때 이 문을 통해 피난 간 사람은 모두 살았다고 하는 전설이 있으며, 왜군의 집중적인 공략 대상이 된 문이기도 하다.
1995년, 동래구 칠산동에 인생문을 복원하여 놓았다.
* 유원각선생 매안 감고비와 비각.
돌로 된 비각이 이채롭다. 내가 이제껏 본 수많은 비각 중에서 돌로 만든 것은 이것이 유일하다.
** 유원각선생매안감고비라는 비석은, 조선후기 대일외교의 실무관청이었던 유원각과 관련된 유일한 금석문 자료로서, 아주 희귀한 비석이다.
특히 이 비석이 주목받는 이유는, 비석을 보호하는 건물이 석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며, 비각의 형태나 결구 방식이 전통적인 양식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비석은 대일외교 창구 역할을 했던 부산의 지정학적 위치를 잘 드러내는 비석인 것이다.
* 비석 상세부
그런데 이 비를 세운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설 명절기간이라 민속놀이용품을 갖다 놓았다. 투호
* 윷놀이판과 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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