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사진

청도 석빙고 답사 사진 (2008. 3. 9)

道雨 2008. 3. 12. 12:12

 

 

               청도 석빙고 답사 사진 (2008. 3. 9)

 

 

* 일요일 아침, 집사람이 속한 주부독서회 지인 두 분과 함께 경북 청도지역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전에 한두번 쯤은 다녀온 곳이지만, 한동안 시간이 흐른 터이라  봄나들이 겸한다는 생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습니다.

 

* 석빙고는 돌로 만든 얼음저장고이지요.

  얼음의 저장과 사용에 대한 기록을 보면, 신라의 지증왕 때 얼음을 저장해서 사용한 문헌기록이 있다고 하니 상당히 오래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조선 초에는 나무로 만든 목빙고를 사용했으며, 세종 이후 석빙고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남한지역)에 남아있는 석빙고는 모두 6개라고 하네요.

  청도, 창녕, 영산, 현풍, 안동, 경주에 남아있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경상도 지역이군요. 저는 현풍에 있는 것만을 제외하고 모두 가 보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이 청도 석빙고입니다. 

  이들 석빙고는 모두가 조선시대(18세기 이후)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 가운데 축조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이 청도 석빙고라고 합니다. 숙종 39년(1713년)에 축조되었다는 비석이 있습니다.

   

 

* 멀리서 보니 마치 돌무더기 처럼 보이는 군요. 

 

* 석빙고의 지붕 덮개돌로 썼음직한 돌 들이 길가에 자리잡고 있다.

 

 

* 아마 다른 데서 옮겨온 듯 여겨지는 당간지주(괘불대?) 

 

 

* 석빙고의 외부 모습

 

 

* 석빙고 안내문 

 

 

 

* 석빙고 지붕의 홍예와 덮개돌 

 

 

 

* 홍예와 덮개돌 

 

 

 

* 홍예의 모습

 

 

 

* 석빙고 내부와 내부에서 홍예를 올려다 본 모습 

 

 

* 석빙고 내부에서 무지개 다리 모양의 홍예를 올려다 본 모습

 

 

 

* 홍예의 모습 

 

 

* 내부 모습과 홍예

 

 

* 해운대 주부독서회 회원들끼리 기념사진

 

 

 

* 우리도 한 컷. 햇볕이 강렬해서 눈이 부셔요.   

 

 

 

* 이 비석에 축조 기록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희미해서 알아볼 수가 없어요.

 

 

 

  청도 석빙고는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합니다만, 무엇보다 위에 봉토가 없어져서 그 골격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봉토가 없어진 모습은 한편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구조를 이해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상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봉토를 덮어서 복원하는 것 보다 이렇게 현재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조선시대에 석빙고의 얼음은 왕실과 종친,관청, 퇴직 관리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공급되었지만, 활인서의 환자나 감옥의 죄수들에게 까지 공급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석빙고에도 애민정신이 깃들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석빙고와 장빙제도



  · 빙고의 운영과 얼음을 누구에게 얼마만큼 나누어 줄 것인지를 정한 반빙제도(頒氷制度)는 퍽 오랜 역사를 가졌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지증왕 6년(505)에 얼음을 저장토록 했다는 기록이 있음. 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녹지 않게 효과적으로 보관하였다가 이듬해 여름에 사용한 예가 적어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알려주는 기록.

  · 고려시대에는 수도 개성은 물론 평양에도 내빙고와 외빙고가 설치되었음.

  · 조선시대에는 개국하자마자 곧 한양의 한강가와 궁중에 얼음창고를 만들었다. 서빙고(용산구 서빙고동), 동빙고(성동구 옥수동), 내빙고(창덕궁 안)를 설치. 조선왕조의 빙고 운영은 그 제도가 폐지되는 광무 2년(1898)까지 지속되었다.

    - 동빙고 : 왕실의 제사를 지낼 때만 쓰임.

    - 서빙고 : 국가행사와 관청·종실·고급관료들에게 나누어 줌.

    - 내빙고 : 궁궐 전용의 얼음창고.

  · 빙고의 얼음 저장과 반출은 예조에 소속된 종5품 아문인 ‘빙고’(氷庫)에서 관장함.

  · 겨울날씨가 따뜻하여 한강에서 두꺼운 얼음을 뜰 수 없을 때에는 근기지방의 산속에서 얼음을 떠다가 빙고에 채우기도 하고, 조정에서는 날씨가 추워져 얼음이 잘 얼게 해달라는 제사, 곧 기한제(祈寒祭)를 지내기도 하였다. 음력 섣달에 얼음을 빙고에 넣을 때는 장빙제(藏氷祭)를 지냈으며, 빙고문을 열어 얼음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는 개빙제(開氷祭)를 올렸음.

  · 동빙고의 얼음은 음력 3월 1일부터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상강)까지 공급되어 왕실 제사 전용으로 쓰임. 서빙고의 얼음은 비변사·승정원·홍문관·시강원·춘추관·병조·내의원·양현고 등 여러 관청을 비롯하여 종친, 문무 당상관, 내시부 당상관, 70세 이상의 퇴직 당상관이나 활인서의 환자, 의금부와 전옥서의 죄수 등에게도 지급됨. 내빙고의 얼음은 궁중 각 전과 주방에 공급.

  · 처음 동서 빙고는 나무를 재료로 한 목빙고였으며, 갈대·솔가지·짚 등을 이용하여 얼음을 보관하였다. 이런 구조는 매년 얼음을 저장할 때마다 보수를 해야 했고 얼음도 빨리 녹아 비효율적이었으며, 보수할 경우 그 비용과 노동력을 경기지방 백성들이 부담해야 했으므로 민폐 또한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세종 2년(1420)에는 동서 양 빙고가 석빙고로 개조되었으며 이후 이것이 빙고의 일반적인 형태가 되었다.

  · 민간에서 만든 빙고는 현재까지 전하는 것이 하나도 없고, 다만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던 관영의 빙고, 그것도 돌을 이용하여 축조한 석빙고만이 몇몇 남아 있어 이를 통해 그 형태와 구조를 살펴볼 수 있을 따름이다.

  · 석빙고는 멀리서 보면 마치 길쭉한 고분처럼 생겼다. 빙실의 절반은 지하에 있고 나머지 절반이 둥그스럼하게 지상에 솟아 잔디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빙실은 대개 장방형을 하고 있고, 빙실 바닥은 출입구 쪽이 높고 안쪽이 낮도록 경사지게 만들고 바닥 중앙이나 가장자리에 배수로를 만든다.

  · 석빙고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빙실 천장을 이루는 홍예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홍예를 틀어올리고 이를 구조재로 하여 그 사이를 석재로 쌓거나 판석으로 덮어 빙실공간을 만든다. 기둥이 없으며 천장에는 환기구멍이 있다. 문짝은 판석을 이용한 돌문이나 나무문을 달았으리라 추측됨.

· 석빙고는 현재 6개가 남아 전하는데, 6개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6개 모두 18세기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청도 석빙고(보물 제323호), 달성 현풍 석빙고(보물 제673호), 안동 석빙고(보물 제305호), 경주 석빙고(보물 제66호), 창녕 석빙고(보물 제310호), 창녕 영산 석빙고(보물 제1739호)가 그것이다.

  

* 청도석빙고는 현재 남아있는 석빙고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선 숙종 39년(1713)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에 봉토가 없어지고 골격만 남아 있어, 더욱 이색적인 모습을 보이며, 그 구조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