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endless love(詩妓 김부용-3)

道雨 2008. 7. 16. 17:47

 

 

 

endless love(詩妓 김부용-3)

조선의 3대 시기(詩妓) 김부용의 사랑3


아, 운초야! 세월은 흘러 또 낙엽지고 눈 내리는 계절이 되었구나. 날씨조차 차가워지니 보고싶은 마음 간절하고, 네 모습을 그려보니, 구름 속의 달처럼 보였다 사라졌다하여 마음만 더욱 아프구나. 마음이야 항상 네 곁에 머물지만 몸만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어야하는 저승 길이 오늘 따라 더욱 야속하게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 밤은 너를 그리워하며 애절한 상사곡을 부른다.

사랑하는 운초야! 만남이란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또 행복하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집착이 지나쳐 욕심이 생기면 만남의 의미도 송두리채 사라져 버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좋은 만남인가 아니면 잘못된 만남이냐의 판단은 만남에 있지않고 헤어짐에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세상이 변하여 남여가 서로 만나기는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 만큼 만남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헤어질 때에 가슴 가득히 고마움과 아쉬움을 간직하면 그건 좋은 만남이고, 더 이상 그리움이 없다면 아마 잘못된 만남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만남을 좋게 만들려면 과정을 성실하게 가꾸어야 한다. 어렵게 가꾼 사랑일수록 비록 고통은 크지만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 사랑이 될 것이다.

생떽지베리의 ‘어린 왕자’를 읽어보았을 것이다. 어린 왕자는 어느 혹성에 장미를 남겨둔 채 떠나왔는데, 항상 그 장미를 걱정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돌보지 않으면 장미가 시들어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몸은 떠나 있지만 어린 왕자가 늘 장미를 생각하는 이유는 장미에게 정성을 들였기 때문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정성을 통해서만 사랑도 자라나고 만남의 의미도 커 나간다. 가꾸지 않은 채 젊음과 아름다움만 빼먹다보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부단한 정성만이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울 것이며 끝내 귀하게 여길 것이다.

사랑하는 운초야! 젊음이란 소유한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과정일 뿐이다. 패기와 야망이 번뜩이는 젊음도 세월을 두고는 어쩔 수 없이 늙어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다. 자기의 의견이나 의지가 개입할 여지도 없느리라. 되돌아 본 인생은 언제나 짧고 또 허망함 뿐이다. 막연히 앞만 바라보며 사는 네가 걱정스러워 하는 말이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날들이 더 많았다. 만나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잊어 버렸다. 마치 전생부터 아니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 나를 끝까지 책임져 주어야 할 사람,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되는 사람, 내가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을 해 주어야 하는 그런 사람으로 단정하고, 그렇지 않을까 봐 항상 걱정하고 불안해 한다. 그래서는 안된다. 사랑은 자유여야 하고 그가 있음으로 내 삶이 더 풍부하고 더 멀리 더 높이 날 수 있는 자유여야 한다.

운초야! 백낙천(白樂天)이 지은 ‘태행로(太行路)’라는 시를 기억하느냐. 그는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태행산의 험한 길과 무협의 뱃길에 비유하면서, 끝마무리에 ‘세상살이의 험난함은 산 때문도 아니요, 물 때문도 아니니 오직 사람의 마음이 변덕스럽기 때문이다.’라고 하지 않았느냐.

자기가 처한 현실을 좀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보도록 노력해 보거라. 행복은 세상에 널려 있지만 그러나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찾고 발견하는 사람의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신명나는 일일 수가 있다. 그러니 어떤 일이나 너무 집착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최고의 가치로 삼을 경우에는 그것의 노예가 된다. 세상이나 내 자신이 추구하는 선이나 가치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시간에 따라 변해 간다는 것을 새롭게 알아야 한다. 그러니 정을 나눔에 있어서도 분별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 길이 우리의 만남을 영원히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만든는 진리의 길이다.

운초야! 아득한 견우성은 희고 밝은 은하수 옆 직녀성을 오매불망 그리지만 무(無)는 유(有)를 더욱 가치있게 함을 믿는다. 아! 고개드니 하늘에는 밝은 달이 떠 있고 그 속에 운초의 얼굴이 가득 담겨 있구나. 달아 너는 본성이 변덕스러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는 항상(恒常)하지 못함을 알았도다. 하지만 비록 구름에 가리고, 태양에 눈 멀고, 스스로 모습을 감춘다 해도 너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만은 빼앗지 못하리라. 너는 실체가 아닌 허상(虛象)이기 때문이다. 달아, 너는 한 평생 시흥(詩興)을 돋을 나의 좋은 벗이니라.
사랑하는 운초야, 너 또한 달이거라.


(사진: 천안 태화산에 있는 운초 김부용의 묘비-소설가 정비석 선생이 찬함)

 

 

* 윗 글은 '고제희의 역사나들이'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