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조선의 독서광(신숙주와 김수온)

道雨 2008. 8. 25. 14:28

 

 

 

책 벌레(김수온)


조선의 독서광들, 신숙주와 김수온


반갑습니다. 저는 조선이 낳은 천재, 신숙주(申叔舟)입니다. 두뇌까지 명석하여 어떠한 글이나 시도 한번 보고는 곧 기억한 저가 아닙니까? 뜻도 매우 커서 속된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음은 세상이 아는 일이라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조선 시대를 통털어 문신으로 무(武)까지 겸비한 진짜 대장부라는 사실은 아셨으면 좋겠어요.

자기 자랑을 하려고 하냐고요. 아닙니다. 천성이 고명(高明)하고 마음이 관대한 접니다. 하지만 어찌나 열불이 나는지 참을 수가 없어 나왔습니다. 제가 누굽니까? 유언으로 무덤 속에 책을 넣어달라고 부탁할 만큼 책을 아끼고 좋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 책을 그것도 임금이 하사한 귀한 책을 누가 빌려가서 도배지로 썼다면 성질이 안 나겠어요.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김수온(金守溫.1410~1481)이란 사람으로 저보다는 7살이 많은 선배지요.

1997년 6월 7일, 인천에 있는 인하 대학교에서는 ‘97 여름 책벌레 선발대회’를 연다고 하네요. ‘컴퓨터와 PC통신에 빠져 책읽기에 소흘한 신세대 학생들에게 독서 습관을 길러주기 위한 행사’라 합니다. 이 행사는 1학년은 ‘삼국지’와 ‘카마로조프의 형제들’, 2학년은 ‘토지’와 ‘사기’, 3~4학년은 ‘아리랑’과 ‘유토피아’등의 교양도서를 지정하여 내용이나 소감에 대한 문제를 내고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는 유럽과 미국을 다녀올 수 있는 왕복항공권을 선물로 준답니다.

정말로 답답하네요. 우리 선조들은 책만 있으면 밤을 낮삼아 읽었어요. 책이 있는데 어떻게 잠을 자요? 세상은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기술 혁신과 국제화를 서두르고 또 개혁에 박차를 가하지만, 그럴수록 인간의 삶의 질은 점점 퇴색하는 것 같아요. 어느 한 분야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고 그 처리 능력을 갖춘 전문가를 사회는 우대하지만, 전문가라고 모두 교양인은 아닙니다. 오히려 전문적인 지식만으로는 교양인이 될 수가 없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교양은 어떤 책이나 매스컴, 그리고 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 성찰을 통한 고독 속에서 자라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올바른 지침을 주고, 성찰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선현의 글들이 젊은이의 마음에서 힘써 읽힐 때, 우리의 삶은 좀더 풍요롭고 알차지지는 않을까 싶습니다.

충북 영동에서 태어난 김 선배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부지런히 한 사람으로 하루는 소변을 보러 마당에 내려서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벌써 가을이 깊었구나.”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글을 읽은 지독한 책 벌레지요. 저 또한 어려서 절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한 사람으로 책 읽기에서는 추호도 김 선배에게 뒤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김 선배에게는 못된 버릇이 하나 있었어요.

옛 말에 책에는 삼불가론(三不可論)이 있다고 했어요. 책을 빌리지도 말 것이며, 빌려 주지도 말 것이며, 빌린 후 되돌려 주지도 말라.

김 선배는 비록 벼슬은 높았지만 집은 찢어지게 가난해 항상 땔거리를 걱정했어요. 겨울이 되어 방 바닥에 차면 상 위에 책을 깔고 잠을 잤으며, 한 번은 뜰에 선 회화나무를 잘라 군불을 땠다고 해요. 사람들이 왜 그토록 아름다운 나무를 베었느냐고 묻었어요.

“땔 나무가 없어 밥을 지으려고 하네.” 그런 위인입니다. 또 있어요. 말을 타고 다녔으나 먹거리를 제 때에 주지 못해 죽기가 여러 번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사람들이 혀를 차며 충고를 했어요. “말을 키우는 사람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주라고 하세요. 이를 어기면 엄하게 매질을 하고요.” 김 선배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어찌 짐승 때문에 사람이 혼날 수 있지요?” 김 선배가 성균관의 유생으로 있었을 때입니다. 가난하여 책을 사 볼 수가 없는지라 곧 잘 남의 책을 빌려 보았는데, 주인의 허락도 없이 하루에 한 장씩 뜯어서 외우는 겁니다. 행여 잊은 것이 있으면 소매에서 종이를 꺼내 다시 외웠다 합니다.

좋아요. 모두 좋다고요. 그런데 내가 당한 일은 해도 너무한 일이라고요. 저에게는 임금이 하사한 고문선(古文選)이란 책이 있었는데, 저는 가보나 마찬가지도 귀하게 여겼어요. 그런데 하루는 김 선배가 찾아와 갓은 떼를 쓰며 하루만 빌려다라고 졸랐어요. 전혀 마음이 내키지 않아 거절을 했지만 막무간으로 성화를 부렸어요. 평소의 친분을 생각하면 거절할 수가 없지만, 책 도둑인 그를 생각하면 겁이 덜컥 났습니다. 단단히 다짐을 받은 뒤에 책을 빌러 주었어요.

그런데 날자가 지나도 책을 반납하지 않는 거여요. 몇 번이고 독촉하며 어느 때는 화도 내보았으나 마찬가지였어요. 하루는 책을 직접 받으려고 김 선배의 집을 찾아 갔는데, 방문을 여는 순간 그 자리에서 기절초풍을 했어요. 그토록 아끼던 책이 갈기 갈기 찢겨져 벽에 발려졌고, 파리 똥이 덕지덕지 묻어 글자인지 파리똥인지 분간할 수가 없는 겁니다. 망연자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어요. “김 선배,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분명히 읽는다고 해 빌려 준 것이지, 벽지로 쓴다고 해 빌려준 것은 아니잖아요?”맞아요. 벽에 붙여 놓고 누워서 외우면 참 좋지요.”

김 선배는 사색이 된 저를 보고 능청을 떨었어요. 저는 곧장 대궐로 달려가 임금에게 사실을 알리려 했으나 김 선배의 인생이 불쌍하여 참았어요. 거문고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던 김 선배는 그후 문장으로 일대를 풍미하더니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지자, 자식에게 책을 많이 읽을 것을 역설적으로 당부를 했습니다. “너희들은 부디 중용, 대학을 많이 읽지를 말거라. 정신이 혼미한 중에도 그 글들이 눈에 선하구나.”

 

* 윗 글은 '고제희의 역사나들이'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