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학의 기초를 놓은 정부인貞夫人. 안동 장씨 | ||||||||||
“녹두 껍질을 벗기고 뉘 없이 되게 갈아서 기름을 잠기지 않을 만큼 붓고 끓여라. 간 녹두를 조금 떠놓고, 껍질 벗긴 팥을 꿀에 반죽하여 소를 넣어라. 그 위에 녹두 간 것을 덮어 기름종이 빛처럼 구워야 맛이 좋다.” 이 글은 정부인 안동 장씨張氏가 <음식디미방>이라는 책에서 빈대떡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이 책에는 146가지의 조선시대 음식조리법이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을 지은 장씨 부인은 어떤 사람인가. 가족과 이웃에 미친 자애로움 정부인 안동 장씨 실기’에는 그녀의 인품을 보여 주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왜놈이 일으킨 임진왜란 병화로 백성들의 기근이 참혹할 때, 가마솥을 마당에 내걸어 놓고 굶주린 사람들을 구휼하니 원근에 의탁 없는 가련한 인생들이 부지기수로 모여들어 조석에 이백여 권구眷口가 가득했다고 한다. 이 때 행랑에 있는 한 양반이 향사 모임에 가려 하나 도포가 없어서 가지 못하자 이시명이 입었던 옷을 벗어 주려 하였다. 장씨 부인이 가로대 “남을 주면 새 옷을 주어야지 어찌 입던 헌 옷을 주리오” 하면서 갈무려 두었던 새 옷을 주면서, “이 옷을 다시는 찾지 아니할 것이오”라 하였다. 집안의 비복들이 부인의 어진 마음씨에 저절로 감화되어 마음으로 복종하니 동네의 다른 집 하인들이 “우리 몸이 이렇게 세상에 나서 저 댁의 노복이 되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하였다. 늙고 의탁 없는 이와 어린 고아를 구제하여 평생 유덕함이 이러하니 사람들이 왕왕이 지성으로 축수하는 말이, “이 아기씨님, 수복 무강하옵소서. 우리 몸이 죽어 귀신이 되어도 이 은덕을 한 번 갚기 소원이라” 하였다. 내로라하는 문학과 예술적 재능 鶴髮臥病 行者萬里 흰머리 늙은이 병들어 누웠는데 멀리 간 자식은 만 리 밖에 있구나. 行者萬里 曷月歸矣 멀리 가 만 리 밖에 있으니 달이 차도 어찌 돌아오리. 鶴髮抱病 西山日迫 흰머리 늙은이 병을 안고 있으니 저무는 인생의 해는 서산으로 달려가네. 祝手于天 天何漠漠 하늘에 축수하여 빌어 보건만 하늘은 어찌 아득하기만 한고. 鶴髮扶病 或起或? 흰머리 늙은이 병든 몸을 붙들고 일어나다가 또 넘어지는구나. 今尙如斯 絶?何苦 지금 오히려 이와 같으니 헤어져 사는 것이 어찌 괴롭지 않으리. 군대 간 아들의 무사 귀향을 기다리는 백발 노파의 안타까운 모습이 열다섯 살 처녀의 눈에 애틋하게 비쳐져 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러했으니 이웃에 대한 부인의 자애로운 마음은 천성이었던가 보다. 이 자애로운 천품이 팔십 평생 동안 가족과 이웃에게 두루 미쳤으니 그 훈화의 넓고 깊음이 어떠하였겠는가. 시구에 녹아 있는 연민과 애정은 부인의 익숙한 붓놀림으로 더욱 깊은 맛을 느끼게 한다. 부인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학발시의 글씨가 예사롭지 아니하다. 빼어난 기품에 유연한 부드러움이 획을 따라 미끄러지듯 흐른다. 한국 음식학의 기초를 놓다 - <음식디미방> 저술 “이 책을 이렇게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 가되, 이 책을 가져 갈 생각일랑 절대로 내지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빨리 떨어져 버리게 하지 말라.” 노년의 어두운 눈으로 간신히 이 책을 썼으니 그 뜻을 잘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책은 본댁에 간수하여 오래 전하라고 당부한 내용이다. 이 당부가 후손들에 의해 그대로 실천되어서 오늘날까지 온전한 모습 그대로 경북대학교 고서실에 보존되어 있고, 그 영인본이 여러 번 간행되어 한국 음식학의 고전이 되었다. 부인의 멀리 내다보는 생각과 선조가 남긴 가르침을 받들어 이 책을 지켜 온 후손들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서로 감응한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 글_ 백두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사진_ 백두현, 경북영양군청 문화관광과 | ||||||||||
게시일 2008-07-29 09:40:00.0 |
출처 : 문화탐방단
글쓴이 : 청산거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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