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스크랩]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15> -- 정몽주, 이렇게 죽다

道雨 2008. 9. 5. 10:19

앞서 정몽주는 이성계의 세력이 날로 커져 온 나라의 민심이 모두 그리로 쏠리는 것이 싫었는데,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 틈에 그를 제거하려고 대간(臺諫)을 사주했습니다.
  
  먼저 그의 날개인 조준 등을 잘라낸 뒤에 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이성계가 가까이 믿는 삼사 좌사 조준, 전 정당문학 정도전, 전 밀직사 부사 남은, 전 판서 윤소종, 전 판사 남재(南在), 청주목(淸州牧) 사(使) 조박(趙璞)을 탄핵했습니다. 공양왕은 그 글을 도당(都堂, 도평의사사)에 내렸습니다.
  
  정몽주는 조준 등 여섯 명을 모두 먼 곳으로 귀양보낸 뒤, 자신의 심복들을 조준, 정도전, 남은이 귀양간 곳으로 나누어 보내 그들을 국문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이들이 길을 떠날 즈음에 이방원은 어머니 한씨가 죽어 무덤 옆에서 여막(廬幕)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매부인 이제(李濟)가 차와 과일을 가지고 가니 이방원은 이제에게 정몽주 제거 의사를 내비쳤고, 이제도 옳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이성계가 벽란도(碧瀾渡)에 와 머물게 되자, 이방원이 달려가 말했습니다.
  “정몽주가 틀림없이 우리 집안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이성계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곳에 유숙하지 말고 바로 도성으로 들어가라고 해도 이성계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청한 뒤에야 이성계가 병을 무릅쓰고 밤길을 떠나니, 이방원은 이성계를 부축해 모시고 집으로 갔습니다.
  
  이 장면에서 실록은 일화 하나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방원이 대언으로 있을 때 이달충의 아우인 밀직사 제학 이성중(李誠中)이 아들을 시켜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오는 금으로 장식한 보검(寶劍)을 바친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방원은 부인 민씨와 함께 앉아서 이를 받았는데, 민씨가 웃으면서 보검은 왜 보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튿날 이방원이 이성중의 집에 가서 사례하며 유생(儒生)에게 보검은 왜 보냈느냐고 묻자 이성중이 대답했습니다.
  
  “보검은 소인이 쓸 게 아닙니다. 명공(明公)께서 쓰셔야 하겠기에 감히 바쳤습니다.”
  
  여하튼 정몽주는 대간을 사주해 연명으로 글을 올려 조준, 정도전 등을 목베자고 청했습니다. 이성계는 아들 이방과와 아우 이화, 사위 이제, 그리고 휘하의 황희석, 조규(趙珪) 등을 대궐로 보내 아뢰었습니다.
  
  “지금 대간은, 전하를 왕으로 세울 때에 조준이 다른 사람을 세우자고 주장했는데 신이 이를 막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조준은 누구를 세우자고 했고, 신이 이를 막는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청컨대 조준 등을 불러 대간과 더불어 조정에서 시비를 가리게 하소서.”
  
  두세 번을 이런 식으로 왔다갔다 했으나, 공양왕은 듣지 않았습니다.
  
  소인배들의 헐뜯는 말과 모함이 더욱 급박해지고 어떤 화(禍)가 닥칠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자고 청했습니다. 이성계는 허락지 않았습니다.
  
  이방원은 나가서 형 이방과와 숙부 이화, 매부 이제와 의논하고 다시 들어와 이성계에게 아뢰었습니다.
  
  “지금 정몽주 등이 사람을 보내 정도전 등을 국문하면서 진술서에 우리 집안에 끌어넣으려 합니다. 일이 벌써 급박해졌으니 장차 어쩌시렵니까?”
  
  이성계는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라며 그저 순순히 받아들일 뿐이라고 말하고는, 이방원에게 빨리 여막으로 돌아가 큰일이나 마치라고 말했습니다. 이방원은 남아서 병환을 시중들겠다고 두 번 세 번 청했으나 끝내 허락지 않았습니다.
  
  이방원은 어쩔 수 없이 나와 숭교리(崇敎里) 옛 집으로 가 사랑에 앉아 근심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급히 나가 보니 광흥창(廣興倉) 사(使) 정탁(鄭擢)이었습니다. 정탁이 극구 말했습니다.
  
  “백성의 이해(利害)가 걸린 시점에 소인배들이 저렇게 반란을 일으키는데, 공은 어딜 가신단 말입니까? 왕후(王侯)와 장상(將相)이 어찌 씨가 있겠습니까?”
  
  이방원은 즉시 이성계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방과, 이화, 이제와 함께 이두란을 불러다 정몽주를 치라고 하니, 이두란은 이성계가 모르는 일은 할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이방원이 말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내 말을 듣지 않으시지만, 정몽주는 죽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그 허물을 뒤집어쓰겠습니다.”
  
  그러고는 휘하 군사 조영규를 불러 말했습니다.
  
  “이씨가 왕실에 공로가 있는 것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 지금 소인의 모함을 당해 스스로 밝혀내지 못하고 손이 묶여 죽음을 당한다면 저 소인들은 틀림없이 이씨에게 더러운 이름을 뒤집어씌울 것이니, 후세에 누가 이를 알겠는가? 휘하에 군사가 많은데 누구 하나 이씨를 위해 힘을 쓰는 사람이 없는가?”
  
  조영규가 분개하며 지시를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방원은 조영규, 조영무(趙英茂), 고여, 이부(李敷) 등으로 하여금 도평의사사에 들어가 정몽주를 치게 했으나, 변중량이 그 계획을 정몽주에게 누설했습니다.
  
  정몽주가 이를 알고 이성계의 집으로 문병을 왔습니다. 실은 사태를 엿보기 위한 것이었지요. 이성계는 정몽주를 이전과 같이 대접했습니다.
  
  이화는 이방원에게 지금이 기회라고 말했으나, 계책을 정한 뒤에는 이성계가 화를 내면 어쩌나 걱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논이 정해지지 못하니, 이방원이 말했습니다.
  
  “기회는 잃어서는 안 됩니다. 아버님이 화내시면 제가 대의(大義)를 설명하고 위로해 풀겠습니다.”
  
  그러고는 길가에서 치기로 모의했습니다. 이방원이 다시 조영규에게, 이방과의 집에 가서 칼을 가지고 바로 정몽주의 집 동리 입구에 가 기다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고여, 이부 등 몇 사람이 따라갔습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집에 들어왔다가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나갔습니다. 이방원은 일이 잘못될까봐 직접 가서 지휘하려 했습니다.
  
  문 밖에 나오자 안장을 얹은 휘하 군사의 말이 서 있었습니다. 그것을 타고 달려 이방과의 집에 가서 정몽주가 지나갔는가 물으니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방원은 다시 방법과 계책을 지시하고 돌아왔습니다.
  
  정몽주는 마침 상가(喪家)에 들르느라고 조금 지체했고, 그 때문에 조영규 등이 무기를 준비하고 기다릴 시간을 벌었습니다. 정몽주가 오자 조영규가 달려가 쳤으나 맞지 않았습니다.
  
  정몽주가 그를 꾸짖고 말을 채찍질해 달아나니, 조영규가 쫓아가 말 머리를 쳤습니다. 말이 넘어지고 정몽주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일어나서 급히 달아났으나 고여 등이 쫓아가 죽였습니다. 그곳이 바로 선죽교(善竹橋)였습니다.

   
 
  이재황/실록연구가

출처 : 황소걸음
글쓴이 : 牛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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