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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천하(나합)

道雨 2008. 10. 7. 15:44

 

 

 

여인천하(나합)

조선의 여걸, 나합의 권세


에 에헴! 지가 누구냐 허면, 긍께 안동 김씨가 세도를 부리던 철종 때에 여걸, 나합(羅閤)이랑께라우, 잉. 고것이 먼 말씸이냐허면 지 서방이 당시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영의정 김좌근(金左根, 1797~1869) 대감이란 야그라면 쪼께 이해하시겠제 잉.

으치께 저의 세도가 막강허던지 시상에서는 정일품의 벼슬아치에만 붙이는 ‘합하(閤下)’라는 존칭을 지에게 붙여썼고, 저의 고향이 나주인 제라 ‘나주에서 올라 온 합하’를 사정없이 줄여부려 ‘나합(羅閤)’이라 불렀제라우.

그라면 어치께 허여서 그러코롬 호강을 하게 되었나 하면, 요염한 교태, 풍만한 육체, 뛰어난 슬기, 불같은 정렬로 대감의 마음을 사정없이 잡았뿌려 영감은 저 말이라면 사즉을 못 쓰고 들어주었제라우.

저의 성은 양(楊)이고 나주의 기생이었으나 귀허신 김 대감의 소실이 되어 시상 부귀영화는 모조리 누렸다 이 야그제라우. 대감의 누이는 순조 비 순원왕후(純元王后)인제라 대감은 육조판서를 고루 거치면서 3번씩이나 영의정에 임명되어 모두들 ‘하옥대감’이라 불렀제라우. 참말이니 지가 을매나 신이 났것소.

그란디 철종 임금은 강화도에서 나무나 하며 자란 도령인제라 으째께 권력의 요상시런 속내를 알았겠소. 그져 봉녀만 생각 허며 사니께 국정은 안동 김씨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고, 임금은 허수아비에 불과했제라우. 그러자 대감이 국정뿐만이 아니라 관리의 등용과 인사도 마음대로 하시고 그 세도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제라우.

저 또한 영감의 권력과 그 아들 김병기의 힘을 빌리면서 조정과 지방관의 인사권을 쥐고 흔들었당게라우. 그라자 고로쿠롬 뻣뻣허던 현감이나 목사는 말할 것도 없고 육조 판서도 지 말 한마디에 등용되거나 파직되어 평양 감사도 저의 버선 코에 이마를 조아려야만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이 말씸이라, 잉. 그라자 교동에 있던 저의 집에는 벼슬을 얻으려는 선비들이 뇌물을 가지고 와 장사진을 이루니, 곳간에는 쌀이며 금은 보화가 가득 쌓였제라우. 저가 을매나 머리가 좋은가허면 저는 벼슬을 팔면서 지위가 높고 낮음에 따라 뇌물의 액수도 달리하였다 이 말씸인거라.

어느 날이었제라. 저는 나주에 살 때면 늘 산을 보고 살았는데, 교동에 살자니 을매나 답답하겠소. 특히 사랑채의 용마루가 높아 남산을 보고 싶어도 불 수가 읎는 지라 속이 터져 환장을 하겠게라우. 그래서 저는 영감에게 투정을 부렸제라우.

“영감, 택리지(擇里志)에 따르면 ‘산수가 좋은 곳을 가려 마음내키는 대로 가서 시름을 풀고 돌아오는 것이 좋다’라 했당께라우. 그란디 여자인 저가 으치께 유람을 할 수 있겠소. 그러니 남산이라도 바라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시면 쓰겄네요. 예?”

저는 그 동안 배운 한양 말씨로 눈물까지 뿌리며 영감의 목에 매달렸더니, 효과가 즉방에서 났제라우.

 “허, 자네가 이제 택리지까지 훤히 꿰고 있구만. 참으로 기특한지고.” 영감은 즉시 청지기를 시켜 고래등같은 사랑채의 기둥을 자르고 용마루를 낮춘게라우. 호호, 저의 권세에 사람뿐만 아니라 집까지도 요절이 나 부렸으니 시상에서 저를 보고 입방아를 찧어댔제라우.

또 저는 키워 준 친정 집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착한 딸이었는디, 저의 권세를 믿고 일가친척이 어지간히 목에 힘을 주었나 봅니다요. 한번은 싸가지 읎는 나주 목사가 피붙이의 따귀를 때려 눈퉁이가 밤팅이가 되어 한양으로 올라왔제라우.

 “합하 나리, 호로 새끼가 지들을 요로코롬 절단을 내 놓았으니께 하루빨리 혼구녕을 내주셔야 쓰겄소.”

“오메, 머가 어쩌고 어째, 그 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헜지 이 무슨 지랄이여.” 저는 그 소식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목사를 갈아 치웠뿌렸지라우. 소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놈이 으째 목사라고 해 먹을 수 있겄소. 영감은 저의 기분을 돌려놓으려고 무슨 요구든 들어주었으니 저가 요로코롬 이쁜데 국법이며 올바른 치도가 무슨 소용이 있겄소, 잉.

저는 또 백중 날이면 한강의 물고기에 밥을 뿌려 주는 마음씨 좋은 여자인게라요. 그란디 비렁뱅이같은 백성들이 혹시 남은 밥이라도 먹을 수 있을까 싶어 구름처럼 몰려 들었는게라우. 저는 재수 옴 붙을까 봐 한 톨도 주지 않고, 쌀 밥을 사과 크기로 뭉쳐 강물에 던져버렸제라우. 참말로 기분이 좋았제라우. 이 행사는 물고기한테 자비를 베풀어서 사해용왕에게 복을 비는 저의 연중행사이고 대략 10 여 척의 배가 한강에 떠 대단한 구경거리였제라우. 누가 감히 저의 권세를 따라오겠는게라, 잉. 호 호 호.

 

* 윗 글은 '고제희의 역사나들이'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