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역 답사(2009. 5. 17)
- 냉수리 신라비, 법광사터, 칠포 암각화, 보경사
어제(2009. 5. 17) 독서모임 가족들과 오랫만에 답사나들이를 다녀왔다. 김경대 선생님의 강력한 추진의사 속에 이미 한 달 전에 일정을 잡았고, 장소는 내가 며칠 간 고심 끝에 포항지역으로 정했다.
거리가 멀고 답사처도 서로 떨어져 있어 네 군데만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토요일 밤 늦게까지 비교적 많은 비가 내려 내심 걱정했는데, 막상 일요일 아침에는 비가 개어 다행이다 싶었다.
일행은 어른이 모두 10명, 어린이가 2명으로 모두 12명이며, 승용차 3대로 움직이게 되었으며, 아예 경주 톨게이트에서 10시에 만나기로 하였으나, 공교롭게도 언양휴게소에서 모두 합류가 되었다.
* 냉수리 신라비(국보 제264호)
길을 잘 못드는 우여곡절 끝에 맨 먼저 당도한 곳은 포항시 북구 신광면사무소인데, 이곳에 국보 제264호인 냉수리 신라비가 있다.
냉수리 신라비는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의 비석으로 가장 오래 전에 세워진 것인데, 며칠 전(2009년 5월 11일)에 이보다 더 먼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가칭 포항 학성리비)이, 냉수리비가 발견된 지점에서 약 8km 떨어진 흥해읍 학성리에서 발견되었다.
냉수리 비석을 보면서 지금까지의 삼국시대 비석에 관한 설명을 덧붙이고, 바로 법광사터로 이동하였다.
* 석가불사리탑비 : 비석으로는 드물게 이수에 물고기와 국화꽃 문양이 있다.
법광사터는 내심 내가 오늘의 주 답사지로 정한 곳이다. 건물 한 동 남아있지 않은 그야말로 폐사지이다. 인근에 새로 들어선 자그마하고 아담한 절(법광사)이 있기는 하지만, 원래의 법광사와는 관련이 없는 절이다. 굳이 연관을 찾는다면, 법광사터(폐사지)에서 초석이나 배례석, 기타 석재를 사용하여 절을 짓고 장식하였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절의 위치는 참 아늑하고 조용한 곳이다.
* 법광사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는 배례석. 윗면의 연꽃무늬가 한쪽으로 치우쳐져 새겨져 있다.
법광사터는 최근까지 유적지의 가치에 비해 비교적 과소평가되어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로 되어있다가 2008년 1월 30일 자로 사적 제493호로 지정되었다.
진평왕 때 건립되어 불국사에 버금가는 규모와 대접을 받은 신라왕실의 원당사찰이었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사세가 기울어 지금은 건물 한 동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 법광사터에 남아있는 불상좌대.
그러나 돌로 된 탑과 비석, 귀부, 불상좌대, 주춧돌 및 고막이돌, 당간지주 등, 많은 석물들이 제자리에 또는 파헤쳐진 채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위의 석탑과 비석을 포함하여 석물들 중의 일부는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므로, 지금보다는 높게 재평가되고 관리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 법광사터의 쌍귀부. 두 마리의 거북이 비를 받치고 서 있었을 터인데, 많이 파손되어 안쓰럽게 느껴진다.
아직 완전히 익지는 않았지만 산딸기도 따고, 불두화로 꽃비를 날리는 아이들의 천진한 장난의 기억을 남긴 채, 칠포로 향하였다.
우리나라의 암각화 중 대표적인 것이 천전리 암각화(국보 제147호)와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이며, 고령의 양전동 암각화는 보물 제60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을 제외하고는 칠포암각화가 그 다음의 지위를 점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249호)로 지정되어 있다.
* 칠포 암각화 : 칼의 손잡이 같이 생긴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다.
칠포암각화는 바위와 고인돌 등에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새겨져 있다. 검파형이라고 하여, 돌칼의 손잡이와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 암각화로 가는 길가에 핀 하얀 민들레꽃. 민들레꽃은 대부분 노랑색이며, 흰꽃은 한반도 원산지인 토착종임에도 매우 드물다고 한다. '하얀 민들레'라는 노래도 있고, 시집도 있다. 민들레를 한방에서는 열독을 풀어내는 용도(청열해독)로 쓴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여러 곳의 고인돌이나 바위들을 찾아 암각화를 확인해 보고싶은 생각이 들지만, 점심시간도 많이 지난 탓에 서둘러 보경사로 향하였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길로 바다의 풍광을 즐기며 드라이브를 하다, 다시 내륙으로 접어들어 내연산 계곡으로 한참을 들어간다.
주차장 가까운 곳에서 산채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보경사로 들어갔다.
* 적광전 문 앞의 신방목. 한 쌍의 사자가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5층석탑의 자물쇠 조각, 적광전의 신방목, 원진국사부도비를 보고, 다시 원진국사부도를 보러 절 뒷쪽으로 돌아 산비탈을 올라가는 길이 호젓하고 분위기가 좋다.
*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
소나무 숲속의 비탈진 길을 약 200미터 정도 올라가니 몸돌이 유난히 긴 원진국사 부도가 우리를 내려다 본다.
절마당에 있던 5층석탑과 마찬가지로 원진국사 부도에도 몸돌의 앞뒤로 자물쇠가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어, 뭔가 공통점을 느끼게 한다. 혹시 동일한 인물이 조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운암에 보경사의 부도밭이 있는데, 새로 담장을 쌓고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써 놓아 발길을 돌려야만 되었다. 도난이나 훼손을 염려한 절의 처사도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보지도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해 서운한 맘이 드는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연산 계곡 안에는 12개의폭포가 있어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쌍생폭포나, 관음폭포, 연산폭포는 참으로 좋은 절경이다. 특히 관음폭포 주위는 폭포와 절벽, 동굴, 구름다리 등으로 찬탄이 절로 나오는 곳이다.
시간 제약으로 서홍이네만 다녀온다고 하고 나머지일행은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내려가기로 하였다.
보경사 주차장에서 김경대 선생님 일행과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져, 언양을 지나 새로 개통된 울산-해운대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귀가하였다.
내가 계획했던 것은 연산폭포까지 다녀오는 것이었는데, 다녀오지 못한 것이 약간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런대로 동반자들과 함께 한 오랫만의 답사가 하루를 즐겁게 하였다. 답사는 하루뿐이었지만 이 기억과 즐거움은 언제까지고 지니고 회상할 터이니, 마음 속의 앨범을 잘 갈무리해야겠다.
* 원진국사부도 앞에서 기념사진
** 아래에 답사자료 유인물을 올리니 참고하시고, 다음에 이어서 나머지 사진을 올리겠습니다.
*** 답사자료
법광사터
* 사적 제493호(2008. 1. 30 지정)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왕명에 의하여 건립된 원당사찰 법광사터이다.
법광사는 건물 규모가 525칸이나 되는 불국사에 필적하는 큰 규모와 수준의 사찰이었으며, 원효와 의상이 주지를 지낸 절이었다고도 하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본래의 절터 남쪽에 1952년에 건립한 법광사가 있고, 절터에는 석가불사리탑, 연화석불좌대, 쌍두귀부, 배례석, 석탑, 석등 부재, 금당터의 신방석과 고막이돌, 많은 주춧돌, 당간지주와 조선 영조시대에 세운 사리탑중수비가 남아 있다.
연화석불좌대는 소실된 대웅전 석가불의 좌대로 추측되는데, 높이 1.1m, 직경 2.2m, 원경 0.5m이다. 이중기단 위에 4층으로 된 석가불사리탑은 인도석가모니 진신사리 22립(粒)을 보관하고, 왕족의 혈통을 계승하여 삼국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이 탑을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탑의 높이는 4.2m이다. 쌍두귀부는 너비 1.4m, 높이 1.8m이다.
법광사 북쪽방향 150m 지점에는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위패를 모신 숭안전이 있다.
@ 금당터
법광사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곳으로, 넓은 밭 한가운데 네모진 흙단이 솟아있다. 18세기 중반까지 2층의 금당이 있었다고 전하며, 불상좌대, 고막이돌, 신방석, 주춧돌 등이 남아있고, 계단 자리도 일부 드러나 있다.
불상좌대는 비록 불완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크기나 조각솜씨에서 힘과 무게를 느끼게 하는 멋진 좌대이다.
좌대의 둘레에 고주를 세웠던 주춧돌이 남아있어 건물이 2층이었음을 추측하게 하며, 고막이돌이 남아있어 불상 뒤에도 후불벽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바깥두리와 안두리에 모두 벽이 설치되어 이중벽을 갖는 구조는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없으나, 이웃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이따금 대할 수 있는 고식의 건축수법이다.
이 경우 안두리와 바깥두리 사이는 회랑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이며, 안두리 내부의 불상이 모셔진 곳은 특히 신성히 여기는 공간으로서 정해진 몇 사람밖에 드나들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금당의 옛모습은 사방으로 계단이 난 높직한 기단 위에, 역시 4면에 출입문이 가지런한 정면 5칸, 측면 5칸의 2층 건물이 화려하고 장중하게 자리잡았을 것이다.
금당터 주변에는 녹색 유약이 발린 녹유전 파편이 흔하게 나뒹군다.
@ 석탑과 석가불사리탑비
1968년 현재의 탑이 도굴되었는데, 뒤늦게 탑지석(塔誌石) 2매가 수습되었다.
하나에는 828년 향조, 원적 두 스님이 재물을 시주하여 탑을 세웠으며, 당시의 절 신도로 성덕대왕(여기에서 말하는 성덕대왕은 신무왕의 아버지인 김균정이다)이 있었고, 846년 탑을 옮겨 보수하면서 그 안에 사리 22과를 봉안했다고 새겨져 있다.
다른 하나에는 1747년 명옥, 담학 두 스님의 주관으로 탑을 중수했으며, 그보다 앞서 1698년에도 절에서 탑을 중수한 바 있음이 적혀 있다.
석가불사리탑비는 예술적인 가치를 떠나, 현재 단편적이나마 법광사의 역사를 더듬어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비의 지붕돌에는 국화꽃과 물고기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흔히볼 수 없는 예이다. 건륭 15년(1750)에 비를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
@ 배례석, 쌍귀부, 당간지주
배례석은 현재의 법광사 마당 새로 만든 탑 앞에 놓여져 있다. 옆면에는 안상, 윗면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쌍귀부는 두 마리의 거북이 등을 붙이고 나란히 엎드린 모양이다. 쌍귀부는 경주의 창림사터, 무장사터에서도 볼 수 있는데 한결같이 신라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던 절들이다.
당간지주는 아랫부분이 땅 속에 묻혀있고 윗부분만 땅 위로 노출되어 있어 전체의 모습을 알 수가 없다.
@ 숭안전
진평왕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인데 초라하여 볼 품이 없다. 여기에 사용한 석재는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 대부분이다.
냉수리신라비[冷水里新羅碑, 영일냉수리신라비]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냉수2리에서 발견된 신라시대의 비(碑).
* 국보 제264호.
* 가로 65~73㎝, 세로 47~69㎝, 두께 30㎝. 밑부분이 넓고 윗부분은 약간 좁은 모양으로 되어 있는 화강암의 자연석 앞면·뒷면·윗면에 모두 231자가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절거리(節居利)라는 사람의 재산소유 인정과 죽은 뒤의 재산상속 문제를 해결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계미년(癸未年)에 지도로갈문왕(至都盧葛文王:지증왕) 등 6부 출신의 유력자 7명이 전대(前代)의 두 왕이 재산소유를 인정한 결정사항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한편, 절거리가 죽은 뒤 아우 아사노(또는 아우의 아들 사노)에게 재산을 상속하고, 다른 사람은 그 재산에 대해 문제를 일으키지 말 것을 결정했다는 내용이다.
또한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 7명이 결정사항을 집행하고, 촌주 2명이 비 세우는 일을 담당했다고 밝히고 있다.
계미(癸未)라는 간지와 지도로갈문왕이라는 칭호로 볼 때, 이 비는 503년(지증왕 4)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비는 개인의 재산소유와 상속에 따른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5~6세기 신라의 정치·경제제도를 살피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삼국시대의 비석들
비석 |
국가지정 |
국가 및 건립 연대 |
건립 사유 또는 비문 내용 |
중원 고구려비 |
국보 제205호 |
고구려, 장수왕?(5세기 후반) |
영토개척 기념 |
냉수리 신라비 |
국보 제264호 |
신라, 지증왕 4년(503) |
사유재산 인정 |
봉평 신라비 |
국보 제242호 |
신라, 법흥왕 11년(524) |
주민의 잘못을 처벌, 경계 |
영천 청제비 |
보물 제517호 |
신라, 법흥왕 23년(536), |
청못(저수지) 축조, 중수 기념 |
단양 적성비 |
국보 제198호 |
신라, 진흥왕 6~11년(545~550) |
영토개척 기념 |
창녕 척경비 |
국보 제33호 |
신라, 진흥왕 22년(561) |
영토개척 기념 |
북한산순수비 |
국보 제3호 |
신라, 진흥왕 22~29년(561~568) |
영토확장 순수 기념. |
* 흥해 학성리 신라비 : 신라, 지증왕 2년?(501?), 비문 내용은 판독 중.
- 2009년 5월 11일 발견. 5월 15일 문화재청 발표.
칠포 암각화
* 암각화의 발견
- 1970. 12. 25 : 천전리 암각화(국보 제147호)
- 1971. 2 : 고령 양전동 암각화(보물 제605호)
- 1971. 12. 25 :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 1989. 11 : 칠포 암각화(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9호)
* 칠포암각화
1989년 11월, 고인돌에 새겨진 바위그림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뒤, 여러 차례의 조사에서 많은 암각화가 발견됨.
칠포해수욕장 뒤편의 곤륜산 자락과 농발재의 바위들, 그 사이의 구릉지대에 분포하는 고인돌 등에 남아있는 칠포바위그림은 돌칼, 돌화살촉, 흔히 성혈(성혈)이라고 부르는 둥글게 움푹 파인 크고 작은 바위구멍들, 해석이 분분한 기하학적인 무늬 등 종류가 다양한데, 이 가운데 칠포바위그림의 특색이자 주류를 이루는 것이 기하학적인 그림이다.
* 칠포바위그림의 여러 가지 해석
- 추상화된 가면 혹은 사람 얼굴
- 철기시대의 방패를 상징하는 ‘방패문 암각화’
- 돌칼의 손잡이에서 유래된 ‘검파형 암각화’
칠포바위그림의 출발점은 돌칼이라고 본다. 돌칼은 실용적인 무기로서의 칼이 아니라 일종의 의례용이며 남성을 상징하는 것인데, 여기서 칼날이 분리되어 떨어져나가고, 바위구멍으로 표현된 여성 상징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칠포바위그림은 지모신(지모신)이며, 양전동바위그림을 포함하여 칠포바위그림과 유사한 바위그림들을 ‘검파형 암각화’로 불러야하며, 이런 바위그림들은 다른데서 발견되지 않는 우리나라 독자적인 것으로써 ‘한국식 바위그림’이다.
포항 흥해에서 신라시대 명문 비석 발견
문화재청(청장 이건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학성리에서 발견되어, 국가에 발견문화재로 신고된,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비(碑)를 보관하고 있다.
이 ‘포항 학성리비’(가칭)는 2009년 5월 11일, 주민생활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던 도로개설 공사현장(흥해읍 학성리 중앙교회 앞)의 한쪽에 치우쳐 있던 편평한 돌을, 주민(김모씨, 47세)이 집으로 옮겨 사용하려고 세척하던 중, 글자가 있음을 확인한 후, 5월 14일 포항시에 신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포항시에서 문화재청에 보고하였으며, 문화재청에서는 이 비의 안전한 관리와 보존처리 등을 위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를 현장에 파견하여 실사한 후 연구소로 이관토록 조치하였다.
‘포항 학성리비’는 부정형의 자연석(화강암, 최대길이 104㎝, 최대너비 49㎝, 두께 12~13㎝, 무게 115kg)으로 한 면에만 음각을 하였다.
이 비가 발견된 지점은, 1989년에 발견된, ‘영일 냉수리비’(국보 제264호)가 발견된 지점에서 동쪽으로 약 8㎞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확인되는 글자는 모두 12행으로, 한 행에는 많을 경우 20자 내외이며, 모두 200자 정도가 확인되고 있다. 비의 하단부에 약 20㎝정도 여백이 있을 뿐, 상단부까지 글자가 가득 새겨져 있다. 비의 맨 위쪽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대부분 판독 가능한 상태로 양호하다.
내용 중 ‘敎’, ‘沙喙部’, ‘古利村’, ‘道使’, ‘使人’, ‘阿干支’(신라 제17관등 중 6관등), ‘干支’ 등의 글자가 확인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특히 비문 맨 앞에 나오는 ‘辛巳’는 이 비가 건립된 시기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데 비의 내용으로 보아 6세기(辛巳年은 501년, 561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561년에 건립된 ‘창녕 진흥왕척경비’ 등에 ‘阿尺干’, ‘沙尺干’ 등으로 표기되고 있는 관등명이 이 비에서는 ‘阿干支’, ‘沙干支’ 등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보다 이른 시기인 501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포항 학성리비’의 현재 상태는 일부 그을음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이동한 상태로 발견되었고, 주변이 도로 개설로 변형되어 원위치를 찾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포항 학성리비’에 대해 응급 보존처리 작업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향후 관련 절차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또한 관계 전문가들과의 검토를 거쳐 비의 상세한 내용을 정리하여 자료집 등 으로 발간하고, 학술심포지엄 등을 개최하여 논의를 확대시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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