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스크랩] 아줌마들의 답사

道雨 2008. 10. 18. 16:22

                                         밀양지역답사 : 2008. 9. 28

 

밀양을 대표하는 것들 : 영남루, 표충사, 얼음골, 밀양아리랑, 사명대사, 아랑 등

답사 코스 : 표충사 - 표충비 - 대법사 - 예림서원 - 연극촌 - 영남루(무봉사, 아랑각,  밀양읍성)

 

 

해운대도서관 주부독서회원들이 오랫만에 시간을 내서 밀양지역 답사를 나섰다.

정은숙씨가 운전을 해주셨고 답사 안내는 현숙이 아줌마가 했다.

부산-대구간 민간투자고속도로로 가니 밀양은 한시간 정도의 거리로 가까웠다.

재약산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스님들로 이루어진 승병들을 이끌었던 역사적인 인물인 사명대사와 인연이 있는 절이다. 원래 표충사는 사당으로서 사명대사의 고향인 무안에 세우고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진영을 모셨는데 표충사가 궁벽한 곳이어서 향사와 관리가 불편해지자 영정사로 옮길 것을 나라에 건의하였다고 한다. 표충사가 영정사로 옮긴 후 절 이름도 표충사로 바뀌었다.

 

표충사는 사당영역과 삼층석탑 영역으로 나뉘어진다.

표충사의 사당영역에는 표충사, 표충서원, 유물전시관이 있다. 매년 3,9월 첫번째 정자 들어가는 날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데 가을 제사는 10월 6일인가가 이 날에 해당된다. (달력 참고하시기를) 이날 스님과 유림,  대중들이 모여 전통 제향의식을 거행한다고 한다. 유물전시관도 있는데 사명대사와 관련된 유물과 불교 유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유물 중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국보75호로 지정된 청동함은향완이라는 향을 피우는 공양구가 있는데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라고 한다.

 

삼층석탑 영역에는 서래각이 있는데 서래각에 있는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님에게 배운 제자의 글씨로 명품 글씨라고 한다. 표충사는 고려시대 때에는 삼국유사를 지으신 일연스님이 머물던 곳이기도 하다. 서래각에서 효봉스님이 이곳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효봉스님은 일제시대 때 판사를 하다가 스님이 되신 분으로 토굴에서 공부를 할 때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다보니 살이 물러져서 구더기가 끓을 정도였지만 굴하지 않고 원하는 공부를 마쳤다고 한다. 그렇게 공부한 뒤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큰 스님이 되셨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으면 법정 스님이 젊었을 때 효봉스님을 모시고 계신 적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큰 정신들이 머물었던 공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표충사는 의미가 더해진다.

 

표충사는 대웅전, 관음전, 명부전, 팔상전, 범종루, 산신각, 독성각 등 절집에서 거느리는 각각의 신앙의 대상들을 모신 건물들이 즐비하다. 사실 이러한 신앙의 대상들로부터 나는 감동을 받지 못한다. 왜냐면 신앙의 대상인 그 보살과 부처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절집을 우리 문화재를 보러 가는 곳으로서만 접근했기 때문이다. 뭔가가 있을 텐데 나의 안목은 절의 겉모습만 보고 오는데 그친다.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지만 부족한 것이 절실하게 느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음 목적지는 표충비.

표충비는 표충사가 영정사로 옮겨가고 난 뒤에도 이곳에서 남아 있었다. 그런데 표충비는 나라의 위급한 상황이 있을 것 같으면 비석이 땀을 많이 흘린다고 한다. 돌에도 어떤 신령스런 힘이 있는 것처럼 신문이고 방송에서도 마구 보도한다. 믿거나 말거나 할 사항이지만 나라에 충성했던 사명당 스님과 연관해서 표충비도 충성스럽고 소중한 비석이다.

 

대법사는 사명당 스님이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라를 대표해서 일본으로 갈 때 지팡이를 꽂아놓고 갔는데 이 지팡이는 모과 나무가 되어서 지금도 잎과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모과열매를 매달고 있는 우람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서린 절이다. 표충비에서는 많이 떨어져 있어서 이곳이 옮겨가기 전의 표충사라는 말에는 수긍이 잘 안간다.

 

예림서원은 김종직을 모신 서원으로 사림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연산군  무오년 때 사림의 학자들이 화를 입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이미 죽어서 무덤에 묻힌 김종직도 관련이 되었다. 결국 무오사화는 조선을 건국한 공신들의 세력과 실력으로 무장한 유학자들이 관직에 등장하던 시기에 두 세력이 부딪친 사건인 것이다. 사림은 선비들이 숲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사림은 결국 조선 중기에 이르면 조선의 신권(신하의 권리)을 장악하게 된다. 그리고 사림은 분화하고 발전하는데 붕당정치는 조선을 규정짓는 특별한 정치조직이 되었다.

 

영남루는 밀양강 또는 남천강 또는 해천 강이라고 불리는 강 절벽에 세운 누각이다.

원래는 영남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인데 조선시대에는 출장 온 관리들의 숙소인 객사를 지었고 영남루도 객사의 부속 건물이라고 한다. 조선에서 대표되는 3대 누각이 있는데 평양의 부벽루,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가 그것이다. 원래의 영남루에다 양옆으로 건물을 한동씩 연결해서 지어놨는데 그러다 보니 영남루는 엄청나게 웅장하고 큰 건물이 되었다. 영남루 옆 산기슭에는 무봉사는 절이 있고 영남루 누각에서 강변으로 내려가면 아랑의 전설이 있는 아랑각이 있다. 무봉사 절 뒤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일부 복원된 밀양읍성 성벽이 있다. 조선시대 때 무봉대는 전망대이자 성을 방어하는 군사시설의 한 부분으로서  성벽이 복원됨에 따라 옛 밀양을 알게 해주는 좋은 유적이 될 것 같다.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느끼게 된다'고 읽은 것 같은데 맞게 인용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두번 세번 가서 보다 보니 머릿속에서는 정리가 쉬워진다.

마음맞는 아줌마 친구들과 다녀온 여행.

그저 알고 있는 사실들을 보고 또 보면서 내 안에 뭔가가 안겨져 왔으면 좋겠다.

이제는 그렇게 바라면서 알게 되고 느낄 수 있기를, 내 안의 나는 그렇게 바라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때가 되면 익어서 빛깔을 바꾸는 열매처럼,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처럼......

 

출처 : 해운대 부실이
글쓴이 : 부실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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