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를 부정하는 인권위원들은 물러나야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역할을 제약한 코미디 같은 일이 여러차례 벌어졌지만, 며칠 전 전원회의에서 나온 일부 위원들의 발언만큼 한심하지는 않았다.
다수파인 이들은 법에 규정된 인권위의 기본적인 책무조차 모르거나, 알면서도 억지로 묵살하며 정권에 봉사하는 짓을 예사로이 저질렀다.
대한민국을 원고로 해 국가정보원이 박원순 변호사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해 법원에 의견을 낼지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였다.
한 인권위원은 “인권위보다 사법부가 인권 전문가”라며 의견을 제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고, 다른 위원들은 진행중인 사건에 대한 의견 제출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다.
결국 인권위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이들의 주장에 따라 결정은 유보됐다.
우리나라 최고의 인권전문기구는 사법부가 아니라 인권위다. 그렇지 않다면 인권위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법 28조 역시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재판이 계속중인 경우 법원의 담당재판부 또는 헌법재판소에 법률상의 사항에 관하여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은 “법원에 인권문제와 관련된 국내적 또는 국제적 인권기준을 알리는 것이 국가인권기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못박아 놓았다. 인권위는 그동안 여덟차례나 법원에 의견을 낸 바 있다.
위력을 가진 국가가 개인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분명히 국민의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중대한 인권사안이다. 이에 대해 의견을 내는 건 인권위의 책무다.
그러나 현병철 위원장 등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인권위원들은 의견 제출을 막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다. 인권 침해 여부보다 정권의 코드에 맞추는 게 더 중요했던 셈이다.
인권위는 이들이 있을 곳이 아니다. 스스로 무자격자임을 고백했으니 물러나는 게 맞다.
<한겨레신문, 2010. 4. 16 사설>
인권위 “국가는 명예훼손 주체 못돼”
- 인권위 보고서 전원위 제출
- 박원순 ‘피소’ 관련…공식의견 채택여부 12일 결정
인권위 관계자는 11일 “국정원의 소송 문제를 검토한 보고서에 ‘국가가 개인에게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의견과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국가를 손배소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해외 사례 등을 담아 전원위원회에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12일 현병철 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 비상임위원 7명으로 구성된 전원위원회를 열어 이 보고서를 공식 의견으로 채택할지와 재판을 진행중인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인권위 의견을 제출할지 여부 등을 결정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권위원은 “개인이 국가의 정책을 비판했다고 국가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개인은 정신적·금전적 부담과 비용을 치르고 국가의 잘못에 대한 비판의 자유도 제약을 받는다”며 “언론중재 신청도 가능한데 왜 개인을 위축시키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인권위원은 “유신시대 때나 ‘국가모독죄’가 있다가 폐지됐을 뿐, 명예훼손의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에 국가는 모욕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보수 성향의 인권위원 비율이 늘어 이 내부 보고서가 실제로 채택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인권위 관계자는 “현 위원장이 이번 사안에 대해 ‘충분히 심의할 시간을 달라’며 보수 성향 인사로 인적구성이 바뀐 뒤 심의하려고 했다”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보수 성향의 한 인권위원은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그 표현이 진실을 토대로 공익과 부합해야 한다”며 “법원이 판단할 문제이지 인권위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의견을 보였다.
앞서 국정원은 박원순 상임이사가 지난해 6월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시민단체를 무단 사찰했다”고 주장하자, 그해 9월 “허위 사실로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법원에 냈다.
<손준현 선임기자 dust@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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