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유! 참여연대가…
그걸 보고 웃게 되는 건 절망이가 말하는 현실이, 그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견딜 만하며 실제로 우리가 견디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러니까 절망이의 절망은 근거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어딘가 조금 과장돼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현실성과 과장의 미세한 줄타기가 주는 긴장이 이 코너의 재미였다.
한번은 희망이가 어른 되면 취직해 돈 모아 어머니에게 아파트 사드리겠다는 꿈을 말한다. 절망이가 등장한다. “너 샐러리맨 월급 저축해 아파트 사려면 몇 년 걸리는지 알아? 그 사이 어머니 백살 넘어. 어머니가 백오십년, 이백년 사는 십장생이야? 거북이·학 같은 십장생 아니면 넌 아파트 못 사드려. 인생, 어두워!”
십장생까지 등장하는 대목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웃다보니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웃게 만듦과 아울러 웃을수록 현실의 추한 모습이 더 선명해지게 하는 것. 잘 만든 코미디가 얻을 수 있는 미학적 성취일 거다.
그쯤 되면 한없이 웃고만 있을 수도 없다. 일그러진 현실을 두고 비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울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수도 있지만, 희극은 웃으면서도 현실의 왜곡된 단면을 더 또렷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그래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희극은 비극보다 정치적이다.
한국방송의 <개그스타>라는 프로에 ‘뉴스유!’라는 코너가 있다. 두 남자가 충청도 사투리로 뉴스를 진행한다.
남자 한 명이 말한다.
“뉴스유! 여고생들을 태운 수학여행 버스가 절벽 길을 달리다가…, 운전사가 버스 세우고 화장실에 갔슈.” 옆의 남자가 짜증을 낸다.
“그게 뭐여? 그게 무슨 뉴스여?”
뉴스를 읽던 남자가 되받아친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거여? 알았어, 인마! 니가 원하는 대로 해줄껴. 뉴스유! 여고생들을 태운 수학여행 버스가 절벽 길을 달리다가 추락해서 피바다가 됐슈. 이제 됐어, 인마? 속이 시원혀?”
일상적인 것, 순리대로 되는 것은 뉴스거리가 잘 안 된다. 뉴스의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가 뉴스에서 새로움, 신선함, 나아가 놀라움, 충격 같은 걸 원한다.
우리는 뉴스를 보며 암암리에 남의 비극을, 그것도 ‘피바다’를 이룰 만큼 강도 높은 재난이나 사고를 바라지는 않는가?
‘뉴스유!’라는 코너는 그 심리를 잘 꼬집어 풍자한다. 암암리에 비극을 바라던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에게 들키는 순간 십중팔구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고 말 거다.
이 코너는 그것도 잘 반영한다. 뉴스 읽던 남자가 속이 시원하냐고 하자, 옆의 남자는 ‘잘못했다’며 바로 사과한다.
어쨌건 맘 편히 웃을 수 있는 건, 그 사고가 진짜 사고가 아니기 때문일 거다. 절벽 길 버스추락처럼 이 코너에 등장하는 사고는 일어날 법한 개연성은 있지만 실제 벌어진 현실은 아니다.
실제 벌어진 현실을 이 코너에 등장시키면 어떨까.
“뉴스유!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에 의견서를 낸 것에 대해 국무총리가 이렇게 말했디야. … 정부와 다른 소릴 해서 기분은 나쁘지만 어쩌겄냐. 민주주의니까 표현의 자유가 있는 거고, 또 비정부기구가 유엔에 의견을 내는 것이 다반사라는디.”
“그게 뭐여? 그게 무슨 뉴스여?”
"그럼 뭘 원하는거여? 알았어, 인마! 니가 원하는대로 해줄겨, 뉴스유!...... 국무총리가 그 사람들 어느 나라국민들인가 모르겠다고 그러고, 우익단체가 가스통 들고 몰려가고, 검찰이 수사한다고 나셨슈. 이제 됐어, 인마? 속이 시원혀?"
'시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다림의 소중함 (0) | 2010.06.29 |
---|---|
군사주권은 포기하고 FTA는 내주고 (0) | 2010.06.28 |
군사주권에서도 시대착오 ‘삽질’ (0) | 2010.06.25 |
MB 사진은 왜 내걸었나 (0) | 2010.06.25 |
언제까지 ‘영리병원’ 타령을 할 건가 (0) | 2010.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