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수녀와 가수

道雨 2010. 7. 13. 15:23

 

 

 

                    수녀와 가수 
» 함석진 기자
 
 
이집트 카이로 외곽에는 100년 된 쓰레기장이 있다.
주변 판자촌 주민들은 이곳에서 생계를 잇는다. 버려진 개들이 쓰레기를 뒤지고 파리가 들끓는다.
아이들은 폐지와 병을 줍다가 땅에 있는 뭔가를 주워 먹는다. 그 옆엔 병원에서 나온 주사기가 널려 있다. 에마뉘엘 수녀에게 비친 1971년 카이로의 모습이다.
 
수녀는 이미 수십년을 가난한 나라를 돌며 보냈다. 예순을 넘겨 은퇴할 나이임에도 이곳에 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부자 나라들을 돌며 기금을 모았고, 그 돈으로 마을 주변 농토를 일구고 사료공장도 세웠다.
수녀는 그렇게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쓰레기장 마을에서 여든다섯까지 23년을 살았고 기적을 일궜다.
2008년 100살 생일을 한 달 남겨두고 세상을 떠날 때 “미치도록 사랑하세요. 사랑하기엔 100년도 짧아요”라고 했다.(<아듀>, 2009년)

 

 

가수 김장훈은 무대에서 미친듯이 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약을 달고 살지만 “죽어라 뛰어도 죽지 않더라”며 웃는다. 그가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도 선수들이 미친듯이 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랑도 미친듯이 하는지 모르겠다. 10년 넘게 100억 가까운 돈, 그가 번 돈 거의 전부를 그 사랑에 썼다. 가난하고 힘없는 세상과의 사랑이다. 그러고도 “난 잘 먹고 잘 산다”고 말한다.

 

 

주위엔 먹고살 만해도 “그렇다”고 말하는 이가 드물다. 머릿속은 여전히 빚내서 산 부동산 시세, 좋은 학교 가야 할 자식 걱정이 가득하다. 3만원짜리 월세방에서도 “나랏돈 받고 산 게 미안하다”며 전재산 1100만원을 어려운 이웃에게 남긴 의정부 노인 이야기에 가슴은 먹먹해도 발은 늘 제자리다.

 

경쟁의 세상을 견뎌야 하는 많은 이들에게 수녀와 가수의 ‘미친 사랑’은 너무 멀다. 하물며 뒷방에서 힘자랑하고 권세를 나눌 생각뿐이었던 이들에게는.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