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과 포숙의 우정’을 뜻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는 초등학생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한 고사성어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우정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관포지교’는 포숙의 양보와 관중의 배려를 축으로 하여 이들의 양보와 배려가 당시 제나라의 지도자였던 환공을 춘추시대 최초의 패주로 만들고 나아가 제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두 사람은 젊은 날 함께 장사를 했는데 매번 관중이 이익을 더 챙겼다. 주위 사람들이 관중의 욕심을 지적하자 포숙은 집에 늙으신 노모와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관중을 두둔했다.
제나라에 정변이 발생하자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공자를 모시며 경쟁 아닌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중은 포숙이 모시는 공자 소백(훗날 환공)을 암살하려고 했다. 소백은 자신을 죽이려 한 관중을 갈기갈기 찢어 포를 떠서 젓갈을 담그겠다며 이를 갈았다.
소백이 끝내 제나라 국군 자리에 올랐고, 관중이 모셨던 공자 규는 죽고, 관중은 죄수를 싣는 수레에 실려 본국으로 압송되었다.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던 관중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포숙이었고, 더 놀라운 사실은 자신을 찢어 죽이겠노라 호언장담했던 환공이 관중을 재상으로 기용한 것이다. 포숙이 환공을 설득하여 관중을 살린 것은 물론 자신에게 돌아올 재상 자리를 기꺼이 관중에게 양보한 것이다.
환공은 관중의 탁월한 식견과 개혁 의지에 힘입어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군사를 전면적으로 개혁했고, 제나라는 수백년 동안 강대국으로서 행세할 수 있었다.
관중의 뛰어난 능력도 능력이지만 무엇보다 포숙의 담대한 양보가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이 불가능했다.
<김영수 중국 전문 저술가 >
‘관포지교’는 포숙의 양보와 관중의 배려가 주제다.
포숙은 자신에게 돌아올 재상 자리를 관중에게 양보하여 제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잘 살펴보면 관중의 깊은 배려가 감지된다.
관중은 소백(환공)을 암살하려 했다. 관중이 날린 화살이 천만다행으로 소백의 허리띠를 맞혔고, 소백은 기민하게 화살에 맞은 척 말에서 떨어졌다.
관중은 돌아와 공자 규에게 암살에 성공했다고 보고했고, 규와 일행들은 며칠 동안 축하 파티를 벌였다. 그 틈에 포숙과 소백은 제나라 수도 임치로 입성하여 국군 자리에 올랐다.
애초 포숙은 공자 소백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관중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있는 소백이 장차 국군 자리에 오를 것으로 확신하고 포숙에게 소백을 모시게 하고, 자신은 총명하긴 하지만 음흉한 규를 모셨다. 군자의 성품을 가진 포숙이 규를 모시게 되면 무사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늘 자신에게 양보만 하는 포숙에게 관중이 베푼 첫번째 배려였다.
관중은 자신의 화살에 맞은 소백의 생사를 확인하지 않고 돌아올 정도로 엉성한 성격이 아니었다. 또 소백이 죽었다 해도 그렇게 며칠 동안 술판을 벌일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포숙이 모시는 소백이 무탈하게 국군 자리에 오르게 관중이 배려한 결과였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포숙을 배려한 것이다. 관중의 두번째 배려였다.
관중의 이런 배려를 알았기에 포숙은 소백을 설득하여 관중을 재상에 임명하게 한 것이다.
관중은 “날 낳아주신 것은 부모지만 날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포숙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양보와 배려는 둘이 아니다.
<김영수 중국 전문 저술가 >
‘관포지교’의 주인공 관중은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혜안의 소유자였다. 포숙이 자신에게 돌아올 재상 자리를 관중에게 기꺼이 양보한 것도 관중의 이런 ‘식인’(識人) 내지 ‘품인’(品人)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관중은 이런 식견을 바탕으로 엄격하게 공사를 구분하며 일했다. 공사 구분의 원칙은 죽는 순간까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약 40년 동안 환공을 보필하며 제나라를 당시 최강국으로 키운 관중이 중병이 들었다. 환공이 병문안을 와서 후계자 문제를 상의했다.
환공은 관중이 당연히 포숙을 추천할 줄 알았다. 자신의 자리를 관중에게 양보한 훌륭한 인품에다 관중과는 둘도 없는 친구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뜻밖에 관중은 포숙이 아닌 습붕을 추천했다.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환공이었다.
환공은 ‘포숙은?’을 반복했다. 이에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포숙의 재능이야 재상 자리를 감당하고도 남지요. 하지만 성격이 너무 강직하고 고상하여 변통을 잘 모릅니다. 한 나라의 재상은 도량이 넓어 원만해야 합니다. 포숙의 강직한 성품으로는 감당하기 힘듭니다.”
이를 들은 간신배 하나가 쪼르르 포숙에게 달려가 관중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두 사람을 이간질했다.
그러자 포숙은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보았다. 바로 그렇게 하라고 내가 관중을 추천한 것이야”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정의 최고 경지를 ‘지음’(知音)이라 한다. 친구가 연주하는 악기 소리만 듣고도 친구의 심경을 헤아릴 수 있다는 뜻이다. 두 사람은 정말이지 ‘지음’의 경지를 공유했다.
관중이 ‘날 낳아주신 것은 부모지만 날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라고 한 것도 같은 뜻이다.
<김영수 중국 전문 저술가 >
관중의 사람 보는 혜안은 소인배들을 가려내는 일에서 더욱 빛났다.
관중이 자신의 후임으로 추천한 습붕은 나이가 많아 오래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애초 이 점을 걱정한 환공은 자신을 극진히 보살피는 역아·수비·개방 이 세 사람은 어떠냐며 관중의 의견을 물었다.
관중은 가볍게 믿어서도 안 되는 자들이거늘 재상은 당치도 않다며 일언지하에 잘라버렸다.
역아란 자는 환공이 사람 고기는 먹어보지 못했다고 하자 세살 난 자기 자식을 삶아 갖다 바쳤다. 환공이 이는 자식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관중은 자기 자식조차 아끼지 않는 자가 어찌 임금을 아끼겠냐고 지적했다.
환공이 이번에는 자신을 곁에서 모시려고 스스로 생식기를 자르고 궁에 들어온 수비야말로 신체까지 훼손해가며 나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가 아니냐고 물었다. 관중은 자신의 몸도 아끼지 않는 자가 어찌 남의 몸을 아끼겠냐고 반문했다.
환공이 부모가 죽었는데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나를 보살핀 개방이야말로 정말 나를 따르는 자가 아니겠냐고 물었다. 관중은 자기 나라까지 열흘 거리가 채 안 되는데도 15년 동안 부모를 찾아가지 않은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위배일 뿐만 아니라 자기 부모도 아낄 줄 모르는 자인데 어찌 임금을 진심으로 아끼겠냐고 했다.
관중은 그런 행동을 서슴지 않는 자들은 마음에 무언가 다른 꿍꿍이를 감추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 이런 자들을 높은 자리에 기용했다간 나라에 화가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공은 그 자리에서는 관중의 지적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마 뒤 이들을 가까이하다가 결국은 비참하게 굶어 죽었다.
소인배를 물리치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김영수 중국 전문 저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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