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거를 받아 벼슬아치가 되느니
조선 중종 때의 사림파 학자로, 개혁을 주도했던 정암 조광조에 얽힌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조광조는 평생 도를 행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행동이 도리에 맞았고, 늘 팔짱을 끼고 꿇어앉아, 말을 할 때도 꼭 해야 할 때만 하였다.
그의 학문과 덕이 알려지자, 이조판서 안당(安塘)이 그를 추천하여 사지(司紙 : 종이를 만드는 부서인 조지서(造紙署)의 우두머리로 종6품에 해당됨) 벼슬을 내렸다.
그러자 조광조는 스스로 탄식하여 말했다.
"내가 벼슬을 원하지 않았는데 나라에서 벼슬을 주는구나. 천거를 받아 벼슬아치가 되느니 차라리 과거에 급제하여 임금을 모시는 것이 나으리라."
그리하여 그는 과거를 보아 수석으로 급제한 후 조정에 들어갔다.
<'인생의 참스승, 선비'(이용범 지음)에서 발췌>
* 요즘 외교통상부에서 장관의 딸을 특채한 것에 대해 많은 논란이 되고 있고,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난 여론이 급등하며, 급기야는 특채된 딸은 물론이고, 아버지인 장관까지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쓰지 말고, 외밭에서는 신발끈을 다시 매지 말라고 하였다.
남의 의심을 살만한 일은 미리미리 주의하고 하지 말라는 뜻일 터인데, 이번의 경우는 갓을 고쳐쓰고 신발끈을 다시 맨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계획적으로 배를 따고 외를 훔친 격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일화로 든 정암 조광조의 경우와 비견하여 너무나 대조가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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