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무상의료, ‘이념 색안경’ 벗고 진지하게 검토해야

道雨 2011. 1. 10. 12:41

 

 

         무상의료는 가능한가? 
한겨레
» 신영전 한양대 교수·사회의학
지난주 민주당이 ‘무상의료’를 당론으로 결정했다. 의료정책사의 역사적인 사건이다. 예상했던 대로 여당과 보수신문은 이를 포퓰리즘이라 규정하고 반대의견을 내고 있다.

 

민주당은 왜 갑자기 무상의료를 들고 나왔을까?

당연히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지지를 받은 ‘무상급식’과 최근 힘을 얻는 ‘복지국가론’의 연장선이다.

여전히 국민이 보기에 ‘박근혜식 복지국가와 진보의 복지국가’는 구별이 안 된다.

민주당 등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이 따라할 수 없는 내용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무상의료다. 진보진영의 연대가 실속 없이 논의만 무성한 상황에서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함께할 수 있는 구호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무상의료는 그 하나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번 민주당의 무상의료 당론 결정은 더 큰 정치적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핵심적인 질문은 “과연 무상의료는 가능한가?”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현재대로는 불가능하다”.

전적으로 ‘사유화된’ 의료체계와 의료공급자, 제약산업, 민간보험회사 등 강력한 이해집단, 이미 의료를 상품으로 여기는 국민정서, 더욱이 오히려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정부 등 무상의료가 어려운 이유를 꼽으면 손가락이 열이라도 모자란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다음의 두 가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무상의료는 가능하다.

첫째, 무상의료를 핵심 과제로 선언한 정치세력의 ‘장기집권’이다.

둘째, 무상의료체계로 가는 데 가장 어려운 장애물인 돈 문제 극복이다.

최근 5년간 국민의료비 증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4배에 달한다. 작년 한해 국민건강보험은 1조3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국민의료비가 이렇게 빨리 오르는 것은 진료비 증가에 대한 위험부담을 전적으로 국민이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도 의료공급자도 대책에 소극적이다. 오히려 대다수 집단은 진료비의 증가를 즐기고 있다. 이 구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100만원 진료비 상한제를 약속하는 대통령을 뽑고 그 약속을 지키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면 된다. 진료비 증가의 책임을 국민에서 정부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면 각 부처들은 매일 밤을 지새우며 각종 대책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렇게 해야 불필요한 의료비 상승과 낭비를 확실히 잡을 수 있다. 비로소 재원의 추가적 투입도 가능해진다.

북유럽 국가의 국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조세율에도 불구하고 조세저항이 가장 작은 것은 이런 투명하고 낭비 없는 예산집행 때문이다. 그 시기가 되면 우리 국민도 기꺼이 주머니를 열 것이다. 더욱이 그때쯤엔 무상의료 덕분에 비싼 민간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무상의료는 모두에게 좋다. 국민은 병원비로 파산할 걱정을 안 해도 되니 당연히 좋다. 진료비의 낭비가 줄면 기업도 부담이 줄어 좋다.

무상의료는 따뜻한 환자-의사 관계를 꿈꾸는 의사들에게도 좋다. 합리적인 보수라면 적어도 교육과 건강 문제에 관한 한 모든 이의 출발선을 맞추어주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상교육·의료는 좌파의 논리가 아니다. 더욱이 의료체계의 전환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이는 두고두고 보수진영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집권하더라도 고령화의 높은 파도를 넘을 수 없다.

 

또 한 가지 설득 과제가 있다.

많은 국민이 ‘무상의료=낮은 질의 서비스’를 연상한다고 한다. 하지만 북유럽의 의료서비스 질과 환자만족도가 한국보다 낮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무상의료가 여전히 낯선 이들에게는 이것을 실현한 나라들이 많이 있음을 알려야 한다.

 

얼마 전 약값이 없어 끝내 동반자살을 선택한 노부부의 신문 기사를 보고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아 죽는 국민이 있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라고 말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우리가 ‘나라다운 나라’에 살고 싶다면 무상의료는 선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목표가 돼야 한다.

 

 

 

 

 

 

 

무상의료, ‘이념 색안경’ 벗고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겨레

 

의료·복지운동단체나 진보정당들이 꾸준히 주장해온 ‘무상의료’가 중요 쟁점으로 떠오를 조짐이다.

 

민주당이 지난 6일 의원총회에서 무상의료 요구를 수용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당론으로 확정한 게 계기다.

이 안은 5년 동안 입원 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을 10%까지 낮추는 걸 뼈대로 하고 있다. 이 안대로라면 건강보험으로 충당되는 입원 진료비 비중은 현재 61.7%에서 90%로 늘어난다.

외래진료비의 본인부담률도 현재보다 최대 10%포인트 줄고, 병원비 본인부담 상한액도 40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낮아진다.

완전 무상의료는 아니지만 꽤 근접한 방안이다.

 

 

민주당이 안을 내놓자마자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언론은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딱지 붙이기에 바쁘다.

복지 확대 주장만 나오면 이념공세로 대응하는 것은 여당의 무능과 복지 거부감을 폭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대응은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면서 쟁점을 엉뚱한 데로 돌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건강보험 강화는 무상급식 등에 비해서도 이른바 ‘포퓰리즘적 요소’가 적다. 건강보험은 기본적으로 가입자들의 보험료를 근간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방안이든, 진보진영의 방안이든, 이 근간을 유지한 채 보장 확대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건강보험료와 진료비 본인부담금이 유지되는 한 ‘무임승차식 과잉의료’ 같은 부작용은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관건은 보험료를 모두 조금씩 늘리고 징수체계를 개선하는 걸 전제로 한 사회적 합의다.

복지 요구가 계속 커지고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재 상황은 어느 때보다 사회적 합의 도출 가능성을 높여준다.

게다가 직장과 지역 가입자 간 형평성 개선을 위한 보험료 체계 개편 논의도 진행되는 등 의료개혁 여건이 한참 무르익은 상태다.

 

 

무상의료가 실질적으로 이뤄지려면 공적 지원 확충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꼭 무상의료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시급한 문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공공부문의 의료비 부담 비율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해서는 의료 수준 하락이 불가피하다. 빈곤층 확대와 양극화 심화로 의료 사각지대가 계속 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념적 편견을 버리고 진지하게 의료체계 개혁을 논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