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학교급식이 자아낼 일곱 빛깔 무지개

道雨 2011. 1. 22. 15:25

 

 

 

    학교급식이 자아낼 일곱 빛깔 무지개
운동장을 채소밭으로 일궈 자연식을 권장하고 나선 필리핀 초등학교의 사례를 오 시장이 보고 배우길 바란다

 

약 50년간 미국의 식민지였던 탓에, 필리핀에는 요즘 미국 현지보다 다국적 기업의 즉석식품 매장이 더 많다. 꽤 유명한 자국 즉석식품 상표 체인도 여럿 있다.

 

밥이 주식이지만 요즘은 대부분 기름에 볶아 접시에 담아 먹는다.

필리핀 사람들, 특히 20~40대에서 고혈압당뇨 등 성인병이 크게 증가했다. 이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돈벌이로 연결되고 있다.

2009년 통계에 따르면, 필리핀 성인 27%가 과체중이고 25%는 고혈압을 앓고 있다. 건강검진제도가 취약한 점을 고려하면, 이 수치조차 과소평가됐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견해다.

 

 

필리핀 사람들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국민건강 악화 등의 주범인 즉석식품 퇴치를 위해, 몇몇 초등학교 운동장을 채소밭으로 일궈 자연식을 권장하고 나선 것.

마닐라 소재 파라나크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이 계획에 따라 몇몇 학교에선 선생님과 학생들이 가용한 공간만 있으면 채소를 심어 기르고 있다.

채소는 전교생의 대부분인 가난한 학생들에게 무료급식용으로 제공된다. 함께 식생활을 바꿔야 하는 학생들의 가족에게까지 제공된다.

즉석식품(Fast food) 같은 저급 음식(Junk food)이 생활화된 저소득층 가족 전체의 식생활을 변화시키려는 계획이다. 당연히 학부모를 포함한 가족 전체가 참여하는 것이다.

흙이 없는 곳에선 수경재배 방식으로 채소를 가꾼다. 이 과정에서 폐기된 플라스틱 병이 훌륭히 한몫 거든다.

 

계획이 실행된 지 1년이 지난 뒤 평가해 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이 학교 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진 것.

지난해 전교생 3000명 중 가장 영양상태가 안 좋은 100명을 선발해 자경농작물 급식 계획에 참여시켰는데, 이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건강해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학교 교장인 에디타는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한 작은 혁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줬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의 한 초등학교에서 불어온 따스한 초록색 바람은 경제와 사회, 환경과 지배구조가 두루 얽혀 인간의 삶을 선순환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식생활은 그 자체로 생명과 지속 가능한 인간문명의 근간이다. 학교교육도 당연히 ‘먹거리 교육’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소위 ‘무상급식’을 막기 위해 정치생명을 걸었다는 소식은 두 가지 점에서 안타깝다.

먼저 법조인 출신인 오 시장은 2005년 학교용지부담금의 위헌결정 당시 그 취지인 “교육은 국가의 의무이므로,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적용돼선 안 된다”는 점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국가가 의무적으로 책임져야 할 교육이라는 점은 굳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할 문제도 아니다. 따라서 의무교육에 필요한 학교급식 예산으로부터 단순히 어린 학생들의 한 끼 허기를 채워주는 것 정도의 효용만 기대한다면 큰 정치를 보지 못함이다.

오 시장이 필리핀 초등학교의 사례가 보여주는 ‘종합적 접근’과 ‘긍정의 힘’을 보지 못한 채, 학교급식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스펙트럼만 보고 ‘정치생명’ 운운한 가벼움이 두번째 안타까운 점이다.

무릇 골치 아픈 문제는 절대 지엽적이지 않고, 행복은 으레 전염된다.

 

상상력을 발휘하라.

 

조잡하고 혼탁한 색채의 정치적 스펙트럼 대신 필리핀 작은 초등학교를 비춘 희망의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자아낸 ‘일곱 색깔 무지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시장의 단호한 결단은 외려 그 자신을 지속가능한 정치의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다.


 

< 이상현 지속가능발전 커뮤니티 서스틴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