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강요하지 마세요, 우린 노예가 아니잖아요

道雨 2011. 1. 22. 15:47

 

 

 

   강요하지 마세요, 우린 노예가 아니잖아요
 
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군자는 세 가지 즐거운 일이 있다. 천하에 임금 노릇하는 것은 여기 들어가지 않는다.”

 

<맹자> ‘진심편 상(上)’에 나오는 말이래요. ‘군자삼락’(君子三樂)이라는 말의 유래입니다.

 

여러분은 가장 큰 즐거움 세 가지로 무엇을 꼽으시겠어요?

제 친구는 “아침밥·점심밥·저녁밥이야말로 군자의 세 즐거움”이라더군요.

아무튼 맹자는 “천하에 뛰어난 인재를 얻어 가르치는 일”을 세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지목합니다. 가르치는 일이 임금 노릇하기보다 즐겁다는 말씀.

 

 

그러나 때때로 가르치는 일은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죽거나 혹은 가르치거나”(아우트 모르투우스 에스트 아우트 도케트 리테라스, aut mortuus est aut docet litteras)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대요.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떤 사람이 몹시 큰 곤경에 처한 상황”을 뜻한다죠.

어떤 연구자는 이 격언을 “제법 울적한 말”이라고 평하더군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표현의 그레코로만 판이랄까요. 현장에서 애쓰시는 선생님들 힘 빼는 말이 아닐까 걱정도 되고요. 어쩌다 이런 섬뜩한 말이 나왔을까요?

 

 

에라스뮈스는 그 배경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옛날 옛적, 아테나이 사람들이 시켈리아(훗날의 시칠리아) 사람들과 싸우다가 크게 졌대요. 아테나이의 많은 시민들이 전사했고, 또 많은 이들이 포로로 잡혔지요.

포로를 노예로 부리는 것은 고대 전쟁의 규칙.

 

“많은 포로들이 시켈리아로 끌려가 그곳 어린이를 가르치는 일을 강제로 떠맡았다. 극소수만이 탈출에 성공하여 아테나이로 돌아왔는데, 같이 잡혀간 사람의 안부를 사람들이 물으면, ‘그는 죽었거나 아니면 가르치고 있으리라’ 대답했다”나 봐요.

» 만화가·<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지은이

 

 

맹자 말씀으로는, 군자는 가르치며 즐겁습니다.

반면 에라스뮈스에 따르면, 노예 신세에 놓이면 가르치는 일도 고달플 뿐.

 

 

“제가 당신 종입니까? … 그러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의 노예가 아닙니다.”

 

ㅈ대학의 시간강사였던 서정민 선생은 이렇게 유서를 남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난해 5월, 이 슬픈 뉴스를 접하고 여러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분명 노예가 아닌데, 우리를 노예처럼 비참하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일까요. 시간강사·기간제 교사 등 비정규직의 문제, 기초 학문의 위기 등 여러 말들이 머리에 스쳐갑니다.

 

최근 책장을 넘기다가 이런 글이 눈에 밟히더군요.

“교육을 포함한 모든 것을 생산성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로 가늠하는 시대에 풍요로운 인생이니 더 나은 시민이니 운운하는 것은 공격의 대상이 되겠지만 이 이유들이야말로 교육에 투자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사실 특별한 내용이 아닙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너무 평범한 이야기지요.

그러나 입시와 취직에 도움이 안 되는 모든 행동이 시간낭비라 비난받고 인문학 등 기초 학문조차 ‘얼마나 돈이 되는지’ 입증하라고 강요받는 시대에, 깜박깜박 묻히는 내용이기도 하네요.

 

어쩌면 모든 것을 경제 논리로 풀이하려는 헛된 강박이,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가장 큰 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화가·'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지은이 >


 

 

*** 군자삼락(君子三樂)

 

전국시대, 철인(哲人)으로 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맹자(孟子:B.C. 372?∼289?)는 진심편(盡心篇)〉에서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다.

 

父母具存 兄弟無故(부모구존 형제무고) : 첫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

仰不傀於天 俯不於人(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 둘째 즐거움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得天下英才 而敎育之(득천하영재 이교육지) : 셋째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