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장한 엠비가 남은 엠비에게 | |
1925년 2월3일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은 3286년 만에 다시 세상 빛을 봤다. 발굴자 하워드 카터가 그의 석관 뚜껑을 열 때, 세계인은 긴장 속에 침묵했다. 삼베 뭉치가 하나둘 치워지고 황금인형 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긴장과 침묵은 일시에 탄성으로 변했다.
하지만 카터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화려한 황금마스크나 부장품이 아니었다. 황금관 머리 옆에 놓인 작은 꽃다발 하나였다. “그것은 남편을 잃은 어린 왕비가 젊은 남편에게 바친 마지막 선물이었을 것이다. 황금빛 찬란한 제왕의 부장품들 속에서도, 여전히 색조를 간직한 작은 꽃다발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그것은 3286년이라는 긴 세월조차, 극히 짧은 어제와 오늘의 경계에 불과함을 웅변하고 있었다. 그로 말미암아 고대와 현대 문명은 가까운 이웃이 되었다.”(<투탕카멘 발굴기>)
수레국화 꽃다발이었다. 남색, 붉은색, 흰색의 겹꽃이 여름부터 가을까지 피는 이 야생화는 한때 독일제국의 국화였을 정도로, 동서고금을 떠나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왕비 앙케세나멘은 그 질박한 야생의 꽃다발로 18살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신의 애절한 사랑을 전했다. 3000여년의 세월은 꽃을 바스러질 듯이 탄화시켰지만, 거기에 담긴 어린 아내의 사랑과 슬픔까지 탄화시키지는 못했다.
신과 동격이었던 파라오였지만 절대권력은 투탕카멘을 보호하지 못했다. 오히려 뒤쪽이 함몰된 두개골은 그의 비극적 죽음을 넌지시 일러준다. 황금인형 관에 양각된 왕권의 상징 헤카(왕홀)와 네카카(도리깨)는 물론, 불멸의 신 이시스와 네프티스도 그저 장식에 불과했다. 파라오의 두 강역을 지키던 코브라와 독수리도 그의 주검이 후손의 돈벌이에 이용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주검 곁에서 태어나 주검과 함께 살다가 주검으로 돌아간다는 이집트인들. 그런 이집트의 아들 무바라크는 왜 그걸 몰랐을까.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작은 꽃다발이 상징하는 인간적 진정성이었음을 왜 외면했을까. 황금이란 도굴꾼의 먹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했다면, 그래도 국가의 이권을 팔아 돈을 긁어모으고, 국민을 가난의 수렁에 빠뜨리고, 친위경찰을 동원해 양심을 짓밟고, 명예와 형제애를 존중하는 신의 뜻을 걷어찼을까. 무바라크가 쌓아올린 권력과 황금은 이제 그를 생매장하는 돌무덤이 되고 있다.
그의 약칭은 ‘HM’(호스니 무바라크)이 아니라 ‘MB’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같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독재자 무바라크의 퇴출을 상기하며 이 대통령을 언급했다. 독재의 길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는 신중한 표현이었다. 이튿날 민주당 의총 결의문은 ‘이 대통령의 독재적 본색’을 통박했다.
독재란 말에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파르르 떨었다. 적반하장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세간에선 더 심한 이야기가 나돈다. 사실 그의 행적을 보면, 독재란 특별하지 않다.
경찰이 용산참사를 저질렀을 때, 멋대로 국토를 유린하고 이를 위해 국회를 통법부로 만들었을 때, 국민의 생각까지도 옥죄고 쥐 그림까지 사법처리할 때, 이를 위해 검경을 정권의 시녀로 전락시키고 방송을 정권 나팔수로 부려먹을 때, 약속한 국책사업을 멋대로 뒤집을 때, 공직자는 물론 민간인까지 사찰할 때, 기업과 금융의 팔을 비틀어 관치경제·관치금융을 자행할 때, 혈세를 제 고향에 퍼부을 때, 정권 안위를 위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기로 몰아넣을 때, 그것은 이미 독재다. 얼치기냐 꾼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분노할 게 아니라 돌아보고 고쳐야 할 일이다.
카이로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투탕카멘 유물 일부가 최근 털렸다. 절도범의 무도함이 개탄스럽지만, 그보다 절대권력의 상징들이 결국 장물로 전전하게 됐다는 생각에 허망함이 앞선다.
도둑들이야 줘도 버릴, 작은 꽃다발처럼 영원한 감동으로 남을 것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곽병찬, 한겨레 편집인 chankb@hani.co.kr > |
'시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것이야말로 ‘망국적 복지’다 (0) | 2011.02.18 |
---|---|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이명박 정권 인권퇴행’ (0) | 2011.02.17 |
이집트혁명 이끈 ‘소셜미디어’의 교훈 (0) | 2011.02.16 |
보이지 않는 약탈자, 고환율 (0) | 2011.02.15 |
기계는 괴물을 양산한다 (0) | 2011.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