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뿌리박은 ‘아주 오래된 농담’ 아닌 상식이다. 한국 문학사 최초의 군대소설 90년대 초에 등장한 <쫄병시대>(김신)가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이때 비로소 병사도 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당시 세차게 불던 민주화의 물결에 힘입어 ‘장군의 시대’를 벗어났다는 상징적 선언이었다.
과거지사는 그렇다손 치고 21세기도 한참 내달린 현재 이 나라의 군인은 어떤가?
장군은 몰라도, 장교와 졸병 모두 반쪽짜리 국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국방의 의무가 있다.”
엄숙한 헌법 조문이 대한민국의 모든 사내를 체포하고 있다.
군인은 여느 사람이 아니다.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한 기본권이지만 군인은 제대로 누릴 수 없다.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는 당연히 제약받고, 생명권조차도 국가가 담보로 잡고 있다.
말할 자유는 물론 생각할 자유조차 없다.
군인의 양심은 국가가 심사한다. 군사재판도 권리의 보장이기보다는 제한이다.
물론 군대는 특수한 조직이다.
군인의 권리에 어떤 한계를 설정할 것인가, 간단치 않은 문제다.
한 군법무관이 상관의 허가 없이 헌법소원을 제출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했다. 강제 전역으로 인해 변호사 자격마저 거부당했다. 10년 군복무가 아미타불이 되었다. 게다가 5년 동안 법무법인의 사무직원으로도 일할 수 없다. 함께 문제를 제기한 동료들에게도 징계가 내려졌다. 이 정부가 출범한 직후의 일이었다.
2008년 7월, 국방부는 ‘이적단체’가 병영 교란 작전을 편다는 ‘첩보’를 바탕으로 ‘불온도서 반입차단대책’을 실시했다. ‘반미, 반정부, 반자본주의 친북 성향’으로 금지된 23종의 도서 중에는 많은 공무원이 애독한 베스트셀러 경제서도 들어 있었다.
이 조치가 위헌이고 부당하므로 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따랐다.
법무관들은 인권위의 판단에다 종전의 관행과 상식을 더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참여정부 시절에 전향적으로 나서 각종 인권개선 정책을 실시한 모범적인 국방부였다. 그러니 법률전문가들이 국방의 조치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요청한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다. 그들은 군의 정치적 중립과 정책의 일관성이라는 상식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군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군인복무규율이 헌법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예의 ‘국방과 안보의 중요성’을 감안한 판단이다.
그나마 행정법원은 파면은 과했다고 판단했지만 남은 여러 법적 쟁점은 고등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상급법원은 좀더 성숙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의 핵심은 좀더 근원적인 곳에 있다.
군대와 사회는 어느 정도 격리될 수 있는가, ‘군인’과 ‘사람’ 사이에 어떤 동질성이 보장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군인도 엄연한 국민이다.
국민적 상식이 군인의 양식과 합치되는 나라라야 민주국가이다. 그래야만 군대가 값진 청춘을 ‘썩히는’ 곳이 아니라, 개인의 발전과 나라에 대한 봉사를 결합하는 곳이라는 확신이 공유될 수 있다. 그래야만 보온병과 포탄의 혼동도 일시 웃음거리로 넘길 수 있다.
여태까지는 의무로 입영한 사병의 인권에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만 실은 준사관, 초급장교 등 직업군인의 상식과 인권이 더욱 문제다.
언제까지 군인을 소외되고 격리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반쪽짜리 국민으로 내팽개쳐둘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 안경환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군인은 반쪽짜리 국민인가?
» 안경환 서울대 법한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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