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카터’ 둘러싼 주류 언론의 이상한 셈법

道雨 2011. 5. 7. 11:59

 

 

 

    ‘카터’ 둘러싼 주류 언론의 이상한 셈법
 

» 한승동의 동서횡단

 

한승동의 동서횡단 /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일행의 최근 방북을 두고 이상한 셈법이 한국 주류 언론을 도배질했다.

 

1979년 방한 때 현역 미국 대통령 카터가 들이대던 인권 잣대를 왜 지금의 북에는 들이대지 않느냐, 왜 김정일 대변인 노릇을 하느냐고 힐난하는 그들한테선 적의까지 묻어났다.

 

그들은 1979년 방한 때 한국내 인권탄압 비판과 주한미군 부분철수 결정 등으로 인한 카터와 박정희 유신체제 간의 불화를 떠올렸다.

 

1994년 미군의 독단적 북한공격 계획을, 전격적인 평양 방문으로 가로막았던 카터를 그들은 그때도 싫어했고 이번에도 그 묵은 감정을 다시 토로했다.

 

 

기묘한 동일시, ‘우리’라는 단어를 쓰거나 그런 의식에 사로잡힌 유력 언론 논자들의 권력과의 자기동일시는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유신체제 아래 신음하던 다수 국민이 아니라 군사정권 소수 수혜자들을 ‘우리’라고 느낄까.

 

권력자들과의 자기동일시는 언론엔 금물이다.

그렇게 되면 권력이 북에 적대적 자세를 취하면 그들도 덩달아 평양을 토벌하라고 외친다. 그게 아니야! 하며 끼어드는 카터가 그들에겐 한없이 밉살스러운 것이다.

 

당장 굶주리는 이들을 먹이고, 전쟁을 막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인권이 있나.

 

돈 오버도퍼의 <두 개의 코리아 The Two Koreas>(1997년)에 나오는 긴박했던 19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상황 일부를 다시 발췌한다.

 

 

“게리 럭 주한미군 사령관은 워싱턴으로 날아가 한반도 전쟁을 준비하는 이례적인 군사회의에 참석했다.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존 샬리카슈빌리 대장은 미군 현역 대장급 장군과 제독을 모두 소집했다. 5월18일 세계 각지의 (미군기지) 사령부에서 몇명씩 불려온 참석자들이 국방부 회의실에 얼굴을 나타냈다.

 

… 게리 럭이 전개할 한반도 전투계획에 병력과 물자, 병참 등을 어떻게 지원할 것이냐가 의제였다. …

회의는 도상연습이 아니라 ‘전쟁 진행방식을 결정하는 진짜 전투원들의 진짜 회의’ … ‘무섭도록 진지한’ 회의였다….

 

그 다음날 … 대통령은 … 공식보고를 받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처음 90일간 미군 사상자가 5만2000명, 한국군 사상자는 49만…. 재정지출도 61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됐다.

 

럭 사령관은 …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재발할 경우 사망자는 100만에 이를 것이며, 미국인도 8만에서 10만명이 죽는다. 또 미국이 자체 부담해야 할 비용은 1000억달러를 넘는다. 전쟁 당사국과 인근 나라들 재산 파괴와 경제활동 중단에 따른 손실은 1조달러를 넘을 것이다.

 

 

17년 전 카터의 방북은 이 일촉즉발의 상황을 진정시켰다.

지금 한반도 안보상황은 그때보다 나아진 게 없다. 한국의 연간 군사비만 300억달러가 넘고 북이 핵무기까지 개발한 지금 전쟁이 일어날 경우 파괴력은 그때의 몇배 몇십배가 될 수 있다.

전쟁비용은 몇조달러대가 되고 사망자는 수백만에 이를 것이다.

원전이 파괴되기라도 하면 피해는 예측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카터 방북의 기본 목적은 이런 위기상황을 해소하고 북 주민들을 굶주림에서 구하는데 일조하겠다는 것이었다.

 

카터가 ‘우리’의 적인가?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 한승동 : 한겨레 논설위원 sdh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