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전설, 설화

누가 생모이고, 누가 참어머니인가?

道雨 2011. 7. 7. 12:29

 

 

 

    양어머니 손 들어준 20세기 솔로몬 재판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
잇단 자녀 학대 사건으로 본 ‘부모의 자격’
양어머니 손 들어준 20세기 솔로몬 재판

 



 

그림 ① 솔로몬의 재판(1649), 니콜라 푸생(1594~1665) 작, 캔버스에 유채, 101 x 150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친부모의 자녀 학대 사건이 종종 보도되는 가운데 부모 자격 국가 고시(考試)를 도입해 합격자만 아이를 낳게 하자는 씁쓸한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주에는 아동복지법과 입양특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자는 아동 학대 부모의 친권(親權) 상실 청구를 더 수월하게 하고, 후자는 입양 조건을 더 까다롭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친부모든 양부모든 자격을 더 엄격히 하겠다는 이야기다.

 

부모의 자격이란 무엇일까?

솔로몬(Solomon) 왕의 재판 이야기, 명판관 포청천(包靑天)의 '석회 동그라미 재판' 이야기, 그리고 그 중국 이야기를 비틀어 새롭게 쓴 서사극 『코카서스의 백묵원(Der Kaukasische Kreidekreis)』(1948)은 이 질문에 대해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답을 알려준다.

먼저 17세기 프랑스의 최대 화가인 니콜라 푸생이 묘사한 (그림 ①) 구약성서 '열왕기'의 솔로몬 재판 이야기를 보자.

격정적인 바로크 미술이 지배하던 시대에 예외적으로 차분하고 단정한 고전주의 미술을 추구했던 푸생은 재판 장면을 권위 있고 안정적인 대칭 구도로 표현했다.

오른쪽 여인은 한 팔에 축 늘어진 죽은 아기를 안고 있다. 그녀가 데리고 자다가 실수로 짓눌러 죽인 자기 자식이다. 하지만 그녀는 죽은 아기가 왼쪽 여인의 자식이고 왼쪽 여인의 살아 있는 아기가 자기 자식이라고 우겨댄다.

그들은 한집에 살며 비슷한 때 아기를 낳았던 것이다. 이 두 여인만이 진실을 알 뿐 다른 증인은 없는 상황이다.

 현대의 유전자 검사 같은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솔로몬은 끔찍한 판결을 내린다. 그냥 아이를 반으로 갈라 두 여인에게 나눠주라는 것이다. 그림 왼쪽의 한 병사가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아기를 거꾸로 들어올리며 칼을 뽑고 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아연실색한다. 오른쪽의 여인들은 고개를 돌린다. 오른쪽 여인은 광기에 서린 얼굴로 뭐라고 외친다.

'열왕기'에 따르면 그녀가 외친 말은 "어차피 내 아이도 네 아이도 아니니 나누어 갖자"였다. 그러나 왼쪽 여인은 왕을 향해 울부짖는다. "임금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시고 아이를 죽이지만은 마십시오."

 

 

그림 ② 솔로몬의 재판(1842), 프레데리크 앙리 쇼팽(1804~1880) 작, 캔버스에 유채, 280.4 x 341.6cm, 개인 소장



 

 

 

그림 ③ 명나라 때 『원곡선(元曲选)』에 나오는 '회란기(灰闌記)' 삽화

 그러자 솔로몬은 말한다. "산 아이를 죽이지 말고 처음 여자에게 내주어라. 그가 참어머니다."

이것이 사실 솔로몬의 의도한 바였다. 진정한 모친이라면 자식에 대한 소유권보다 자식의 목숨과 행복을 우선할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이 간결한 진리를 효과적으로 적용한 판결에 감명을 받아 수많은 화가가 이 장면을 그렸다.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프레데리크 앙리 쇼팽도 그중 하나다(그림 ②).

 중국에도 이와 놀랍게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원(元)나라 때 이행도(李行道)가 썼다는 희곡 '회란기(灰闌記)' 말이다. 서양에 명판관 솔로몬이 있다면 동양에는 송나라 때 명판관으로 이름을 날린 포청천이 있는데, 바로 그가 등장하는 희곡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씨 집안의 첩(妾)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를 질투한 정실부인이 남편을 독살하고 첩에게 뒤집어씌웠다. 또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첩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며 동네 산파와 이웃을 매수해 거짓 증언을 하도록 했다.

첩과 그 오라비가 억울함을 호소하자 포청천은 땅바닥에 석회로 동그라미를 하나 그린 다음 아이를 그 안에 세웠다.

 

명나라 때 원나라 희곡을 모은 『원곡선(元曲选)』 삽화에 이 장면이 나온다(그림 ③). 그러고는 첩과 정실부인에게 아이의 양팔을 각각 잡게 하고 원(圓) 밖으로 끌어내는 쪽이 친모일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실부인은 사력을 다해 아이를 잡아당겼으나 첩은 아이가 아파하는 것을 보고 아이를 놓아 버렸다. 그러자 포청천은 첩이 진짜 어머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솔로몬의 이야기나 포청천의 이야기나 '참어머니'라는 말에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자식을 사랑해 그 안위를 최우선으로 두는 어머니다운 어머니라는 뜻인 동시에 생물학적인 친모라는 뜻이다.

 

이 고대와 중세의 이야기에서는 그 두 가지가 일치하는 것이 당연했다. 즉 생모(生母)는 당연히 자식의 안위를 자신의 소유욕보다 앞세울 것이고, 그러는 쪽이 당연히 생모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20세기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1898~1956)는 이 생각에 반기를 든다.

 그의 서사극(epic theater)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중국의 '회란기'를 중세 러시아의 코카서스(캅카스) 지방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옮겨놓은 것이다.

 

반란이 일어나 총독이 살해당하고 총독 부인은 피란 가는 와중에도 비싼 옷을 챙기는 데 골몰하다가 그만 어린 아들을 놔둔 채 도망간다. 젊은 하녀 그루쉐가 아이를 구해 온갖 위험과 고생을 겪으며 피란길에 오른다.

 그녀도 처음에는 아이를 계속 돌볼 생각이 아니었지만 결국 아기에게 호수의 찬물로 세례를 주고 자신의 아들로 삼는다. 그때 그녀는 이렇게 노래한다.

 

"아무도 너를 데려가려 하지 않기에 내가 너를 데려가게 되는구나. (중략) 상처난 발을 힘겹게 끌며 너를 데리고 다녀야 했기에, 우유가 너무 비쌌기에, 네가 더욱 사랑스럽구나."

 반란이 진압된 뒤 총독 부인이 아이를 찾으러 온다. 아이가 있어야 총독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루쉐는 이제 아이를 돌려줄 생각이 없고, 그래서 재판이 벌어진다.

총독 부인의 변호사들은 총독 부인이 생모임을 강조하며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감정에 호소한다.

이에 대해 그루쉐는 미사여구를 쓰지 못하지만 자신이 아이를 부양하고 교육하는 의무를 다했음을 명확히 말한다. 특히 그녀가 "아이에게 누구에게나 친절하라고 가르치고 아주 어려서부터 그 애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곧이어 '회란기'와 같은 백묵 동그라미 재판이 벌어진다. 여기서 아이의 손을 놓아 버리는 쪽은 그루쉐다. 그러자 재판관 아츠닥은 그루쉐가 진짜 어머니라고 선언한다. 생모가 아닌 양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것이 『코카서스의 백묵원』이 솔로몬과 포청천의 재판 이야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그러나 아이의 안위를 위해 아이를 포기한 쪽이 참어머니라는 것은 앞서의 두 이야기와 동일하다. 즉 아이를 길러야 하는 쪽이 생모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무너지지만 어머니다운 어머니여야 한다는 점은 변함없는 것이다.

이것이 부모의 자격을 새삼 논하는 현대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진리다.

문소영 기자 < symoonjoongang.co.kr >

 

셰익스피어와는 정반대였던 브레히트

"연극은 현실 아니다" 강조

 

 

 

 

브레히트(사진)는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포함한 자신의 연극을 '서사극'이라고 불렀다.

셰익스피어 등 종래의 극작가들이 관객의 몰입을 최대한 유도해, 적어도 연극이 상연되는 동안은 그것이 현실인 것처럼 느끼게 하려고 애쓴 것에 반해, 브레히트는 오히려 연극이 현실이 아닌 연극임을 관객이 계속 인식하도록 한다.

예를 들면 가수가 한 명 등장해 계속 극에 대해 설명을 하는 식이다.

 

이것은 브레히트가 마르크스주의(Marxism)를 작품에 적용한 결과다.

관객이 연극에서 벌어지는 일을 과거의 일로 인식하며 보게 함으로써, 인간 성정이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마르크스 이론을 떠받치면서, 연극을 일종의 교육 도구로 활용하기 위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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