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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의 부산 행보는 한진중공업 사태를 정부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영도의 한진중공업 조선소가 멀리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부산항의 랜드마크인 한진해운 빌딩에서 영도까지는 많이 걸려도 차로 10분이면 족한 거리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25일 한진해운 빌딩 꼭대기층에 올랐다. 그는 부산항 주변을 내려다본 뒤 근처의 북항 공사 현장을 둘러봤다.그러나 그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노동자 해고 없는 세상을 위해 200일 넘게 목숨 걸고 투쟁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쪽으로는 발길을 옮기지 않았다.
김 총리는 이날 허남식 부산시장과 노기태 부산항만공사 사장, 김형오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지역 유력인사 20여명 등을 두루 만났다. 이들로부터 북항 개발 등 ‘부산의 숙원사업’에 대한 민원을 듣고는 “정부 차원의 지원을 하겠다”는 선물을 줬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 수천명의 삶이 걸린 한진중공업 문제와 관련된 인물들은 한명도 만나지 않았다. 총리 일정은 물론 사전에 계획되고 조율된다. 하지만 김 총리의 부산 행보는 정부가 한진중공업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이른바 개별 기업의 ‘노사문제’나 ‘노동투사 김진숙’ 차원을 넘어섰다. 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85호 크레인 농성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희망버스를 세 번째 조직중이다.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자발적인 연대투쟁이다. 또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과 노회찬·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가 10여일째 단식을 하고 있으며, 지식인들의 릴레이 단식도 계속되고 있다. 이보다 더 큰 전국적인 ‘사회문제’가 있는가. 여야가 국회 청문회를 추진할 정도로 ‘정치문제’가 된 지도 오래다.
내용상으로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2월 초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해고 170명을 비롯해 모두 400명(전체의 20%)의 노동자를 내쫓았지만, 다음날 주주들에게 174억원을 배당하고, 임원들의 연봉은 2억원에서 3억원으로 50%를 인상했다. 더구나 이 회사는 지난 10년간 4000억원이 넘는 이익을 거뒀으며, 지난해에만도 그룹 전체적으로 201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의도적인 일자리 없애기로 보는 게 더 맞아 보인다.
실제로 한진그룹이 1989년 영도조선소를 인수한 뒤 이 회사 노동자는 3200명에서 현재 670여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회사는 때로는 명예퇴직, 때로는 강제 사직이나 정리해고의 칼을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2003년 김주익 노조지회장과 곽재규 조합원이 절망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이 회사가 2007년 필리핀에 세운 수비크조선소(세계 4위)는 잘나간다. 수비크조선소의 급속한 확장은 그동안 29명에 이르는 현지 노동자의 사망이 말해주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구조뿐 아니라 지난 2년간 영도조선소의 선박 수주를 제로로 만든 ‘내부 부당거래’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내 일자리 국외 빼돌리기, 시설 및 기술투자 외면, 국외에서의 부당 노동행위 등 악덕기업의 자질을 골고루 갖췄다.
기업의 부도덕한 행태로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노사 자율로 해결하라면서 정부가 손놓고 있다면 국가는 대체 왜 존재하는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쫓겨나지 않도록 지켜줘야 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그러나 정부는 당정, 국가정책조정회의, 국무회의 등 그 많은 회의에서 한 번도 한진중공업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 입으로는 상생과 공정사회를 외치면서 최소한의 중재는커녕 희망버스를 훼방버스라고 오히려 폄훼하고 있다.
천성산 터널 문제로 지율 스님이 2005년 100일간 단식투쟁을 벌였을 때, 직접 나서 문제를 풀었던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의 역할을 김황식 총리에게 알려주는 게 부질없는 짓일까.
< 김종철, 한겨레 정치부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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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 들어서 2008년 실시한 부자감세 조처로, 이 대통령 재임 5년간 총 96조원, 그리고 그 뒤에도 매년 25조원(이상 2008년 불변가격)의 감세 혜택이 부유층에게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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