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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를 타야 할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건희 삼성 회장·조양호 한진 회장이다
2002년 부산 한진중공업에서는 회사가 임금을 동결하고 노동자 650명을 해고하면서 파업이 시작됐다.
회사는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노조 간부들을 사법당국에 고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했다.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김주익 지회장은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 회사 쪽에 대화를 촉구하다가 129일째 목을 맸다. 2주 뒤 또 한 목숨이 희생된 뒤 노조활동으로 해고된 사람들은 복직했다. 김진숙만 제외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반대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2011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200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폭염에 달궈진 35m 높이의 크레인은 가마솥 안 같고 피부가 닿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다.
배 수주를 못 했다며 한진중공업이 400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하자, 50대 여성 해고노동자는 지난 1월6일 혹한의 새벽에 다시 크레인에 올랐다. 김진숙 자신도 제3자가 아니라 복직 대상자다. 물론 그는 자신이 아니라 동료들을 위해 몸을 던지고 있다.
‘아침 조회 시간에 나래비를 쭉 서 있으면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꽃이 피어 있고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 소금꽃나무 같곤 했습니다. 그게 참 서러웠습니다. 내 뒤에 서 있는 누군가는 내 등짝에 피어난 소금꽃을 또 그렇게 보고 있겠지요.’
등짝에 땀으로 소금꽃을 피우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아침 출근 때면 저녁에 퇴근할 수 있을까 두려웠고, 저녁 퇴근 때면 오늘도 살아냈구나 했다.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배치받은 현장은 지옥이 이러랴 싶었다. 여기저기 철판들이 괴물처럼 솟아 있고,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용접 불똥과 쇳가루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덮쳐오고, 가용접해 놓은 철판이 옆에서 텅텅 쓰러지고, 수십 킬로그램짜리 철판이 코앞으로 미끄러지는 일은 예사였다. 한 해에도 수십명의 노동자가 죽어갔지만 세상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래서 김진숙은 노조활동에 뛰어들었고 해고됐다.
그는 “자본이 주인인 나라, 자본이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인가”라면서도 “난 아직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인간이 돈에 왕따당하는 이 지리멸렬한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백척간두에 선 그는 영도조선소를 넘어 더 갈 곳이 없는 이들의 저항의 상징이 됐다. 그의 곁에는 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의 임금을 받으면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삶을 연명하는 900만명의 비정규직이 있다. 그는 큰 울림으로 사회적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희망버스를 타야 할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 이건희 삼성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다. 겨울올림픽 유치전의 주역이기도 한 세 사람은 체제의 정점에 있는 책임자들이다. 또한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며 올림픽 유치에 힘을 쏟았는데, 새로운 지평을 열고 국격을 높이는 데 김진숙이 내민 손길만한 게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민생과 공정사회를 말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이 생존권을 부당하게 위협받는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이건희 회장은 올림픽 유치의 일등공신이지만 그것으로 편법의 허물이 지워지지 않는다. 경쟁력과 혁신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이 회장이 그 그늘을 좀 돌아보면 올림픽 유치보다 더한 영예를 얻을 것이다. 이 회장은 양극화에도 관심이 깊다고 하며 사재 일부를 공익사업에 쓰겠다고 밝힌 터이다.
지구 16바퀴를 도는 열정으로 올림픽 유치에 힘을 쏟은 조양호 회장은 내친김에 조직위원장 뜻이 있다는데 형제 회사가 저래서는 곤란하다. 사이가 틀어졌다지만 한때 한진중공업 회장을 지냈으니 책임질 만하다. 먹고사는 게 올림픽보다 덜 중요하지 않다면 말이다.
< 정영무, 한겨레 논설위원, young@hani.co.kr >
*** 이명박 정부 들어서 2008년 실시한 부자감세 조처로, 이 대통령 재임 5년간 총 96조원, 그리고 그 뒤에도 매년 25조원(이상 2008년 불변가격)의 감세 혜택이 부유층에게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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