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노르웨이 테러와 ‘우리 안의 배타주의’

道雨 2011. 7. 27. 11:18

 

 

 

         노르웨이 테러와 ‘우리 안의 배타주의’
 

 

노르웨이에서 끔찍한 테러를 자행한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한국을 칭송했다고 한다.

브레이비크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한국과 일본을 문화적 보수주의와 민족주의를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로 꼽은 뒤, “이들 국가를 유럽의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살인광의 칭찬이라니, 섬뜩하고 불쾌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망상증에 시달린 인물의 궤변으로 무시하기엔 찜찜한 구석이 적지 않다. 어느샌가 우리도 외국인 거주자가 100만명을 훌쩍 넘어선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지만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처우는 그에 걸맞게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국인 거주자는 125만명가량으로 총인구의 2.6% 수준이다. 이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가 71만명 정도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4.3%를 차지한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이러다 보니 외국인 혐오로 부를 만한 차별과 갈등도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다.

국가인권위원회 자료를 보면, 인종과 종교, 출신 국가, 피부색 등의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며 제기된 진정이 2005년에 32건이었으나, 지난해엔 64건으로 증가했다. 5년 사이에 배로 늘어난 것이다. 다문화 반대 시민단체도 1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외국인 가운데 중국이나 동남아 출신이 많아지면서 ‘다문화’란 표현이 ‘우리보다 열등한 나라’를 가리킨다는 인식도 알게 모르게 뿌리내렸다.

 

물론 이번 테러 사건을 우리 사회와 직접 연계해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다.

우리는 아직 노르웨이나 서유럽처럼 이민자 비중이 높지 않고, 외국인을 극단적으로 적대시하는 문화도 팽배해 있지 않다.

그렇지만 다문화 사회가 우리 공동체의 불가피한 미래인 만큼 외국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은 무엇인지, 우리 안에 배타주의가 자리잡고 있다면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등을 성찰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일차적으론 외국인 노동자의 기본권과 법적 지위 보장 등 내국인과 동등한 대우가 중요하다.

외국인과의 공존을 지향하는 교육을 확대하는 등 사회적 포용성을 늘리는 일도 필요하다.

정부가 설치를 검토중인 이민청(가칭)도 외국인 인력 유치라는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를 위한 사회·문화적 정책을 중시해야 한다.

충격적인 사건을 “더 큰 관용과 더 큰 민주주의”로 승화시키려는 노르웨이인들의 노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겨레  2011. 7. 27  사설]

 

 

 

       스웨덴, 린네, 그리고 노르웨이 

 

종 다양성이 자연의 생존력이듯 다문화는 그 자체로 축복이라는 개념이 북유럽으로 퍼져나갔다

 

 

»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계산신경과학회 연례회의 참석차 스웨덴 스톡홀름에 왔다. 노벨상을 수여하는 나라이기에 변방 과학자에겐 각별한 국가여서 그런지, 비행기에 오르면서부터 다소 들떠 있었다.

그러나 여행자로서의 기쁨도 잠시, 스톡홀름에 도착한 첫날, 옆 나라 노르웨이에서 기독교 극우주의자의 테러로 100명 가까운 청소년들이 죽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평화와 화해의 상징인 이곳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우리에게 스웨덴은 아바나 볼보, 혹은 이케아 정도로 기억되는 나라지만,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균등하게 존중받으며, 다문화·다인종에 대한 평등주의가 보편화된 나라다.

 

그러나 이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스웨덴은 한때 유럽 제국주의의 정신적 메카였으며, 그 한복판에는 스웨덴이 낳은 가장 유명한 식물학자 칼 폰 린네가 있다.

그는 1730년대 스톡홀름 근교에 있는 웁살라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한 뒤, 동식물학 체계의 표본이 된 <자연의 체계>(1735)를 저술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린네가 사용한 종과 속의 이명법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분류하는 체계를 만든 린네는 유럽이 제국주의로 팽창하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린네의 자연체계법을 바탕으로 과학탐사대를 조직했고, 그들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가 동식물을 채집해 본국으로 보냈다.

또 그곳의 원주민들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18~19세기, 식민지에서 온 온갖 동식물과 원주민들을 전시했던 식물원과 동물원이 탄생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다.

 

린네의 체계 안에선 인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는 네발 달린 짐승 중 ‘호모’(Homo)라는 카테고리에 분류되었고, 백색 유럽인, 적색 아메리카인, 황색 아시아인, 검은색 아프리카인이라는 하위 카테고리 안에 나뉘고 분류되었다.

 

린네의 동식물 분류체계는 유럽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의 과학적 토대가 되었지만, 이에 대한 가장 깊은 반성이 이루어진 곳도 바로 이곳 스웨덴이다.

종의 다양성이 자연의 생존력이듯, 인간의 다문화는 그 자체로 축복이라는 개념이 스웨덴을 중심으로 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로 퍼져나갔다.

린네의 학문적 고향인 웁살라대학이 지금은 세계 평화와 분쟁을 연구하고 평등주의자들을 배출하는 데 가장 헌신적인 곳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스웨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웃나라 노르웨이에서 왜 불행한 테러가 발생했을까?

불행하게도 ‘관용의 반도’에도 극우주의자는 있는 법. 이교도를 배척하고 다문화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백인우월주의자가 노동당이 주최하는 청소년캠프에서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그가 꿈꾸는 낙원으로 ‘단일문화를 유지하고 가정중심주의가 남아 있는 곳’이라며 우리나라를 들먹였다고 하니 부끄럽고 가슴 아프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타 문화에 배타적인 우리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극우주의자가 꿈꾸는 지상낙원이었다니 말이다.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 여기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정신의 소유자다. 하지만 전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라고 성 빅토르 후고가 말했다 한다.

 

이방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임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과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한반도까지의 거리는 2만㎞.

어느 극우주의자가 꿈꾸는 천국까지의 거리이면서 동시에 어느 평등주의자가 꿈꾸는 이상향까지의 거리이기도 하다.

 

<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

 

 

 

      노르웨이 테러범 “이명박 만나고 싶다”
 

 

범행 전 인터넷에 자문자답 형식으로 글올려
푸틴 러시아 총리·교황 등 다른 인물도 꼽아

 

 

한국이 다문화주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모범국가로 꼽은 노르웨이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싶은 인물중 한명으로 꼽은 것으로 확인됐다.

브레이비크는 지난 22일 범행 2시간40분 전 인터넷에 올린 ‘2083 유럽 독립선언’이라는 글에서 자문자답 형식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만나고 싶은 생존 인물은?” (Q: Name one living person you would like to meet?) 이라고 물은 뒤 “교황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만나고 싶은 다른 인물은?”(Q: Other people you would want to meet?)이라고 다시 질문한 뒤 이명박 대통령과 안데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 헤르트 빌더스 네덜란드 자유당 당수, 라도반 카라지치 전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 등 5명을 거론했다.(Anders Fogh Rasmussen, GeertWilders, Radovan Karadzic, Lee Myung-bak and Taro Aso.)

 

브레이비크는 이들 가운데 푸틴 등에 대한 인물평을 실었다.

그는 푸틴을 “공정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진 존경할만한 지도자”로 평가한 뒤 “그가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지, 가장 나쁜 적이 될지 지금으로서는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푸틴과 적이 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브레이비크가 만나고 싶은 인물로 꼽은 인물들은 대체로 극우 정치인들이다.

네덜란드 자유당 당수인 빌더스는 반 이민, 반 이슬람의 기치를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 극우정치인이다.

카라지치는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당시 무슬림에 대한 인종청소를 자행한 주범이다.

아소 전 총리는 일본 자민당의 대표적인 보수 우익정치인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인물평은 쓰지 않았지만 극우 정치인들과 함께 만나고 싶은 인물 반열에 올려 눈길을 끈다.


< 허재현 기자cataluni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