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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에서 끔찍한 테러를 자행한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한국을 칭송했다고 한다.
브레이비크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한국과 일본을 문화적 보수주의와 민족주의를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로 꼽은 뒤, “이들 국가를 유럽의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살인광의 칭찬이라니, 섬뜩하고 불쾌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망상증에 시달린 인물의 궤변으로 무시하기엔 찜찜한 구석이 적지 않다. 어느샌가 우리도 외국인 거주자가 100만명을 훌쩍 넘어선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지만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처우는 그에 걸맞게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국인 거주자는 125만명가량으로 총인구의 2.6% 수준이다. 이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가 71만명 정도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4.3%를 차지한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이러다 보니 외국인 혐오로 부를 만한 차별과 갈등도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다. 국가인권위원회 자료를 보면, 인종과 종교, 출신 국가, 피부색 등의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며 제기된 진정이 2005년에 32건이었으나, 지난해엔 64건으로 증가했다. 5년 사이에 배로 늘어난 것이다. 다문화 반대 시민단체도 1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외국인 가운데 중국이나 동남아 출신이 많아지면서 ‘다문화’란 표현이 ‘우리보다 열등한 나라’를 가리킨다는 인식도 알게 모르게 뿌리내렸다.
물론 이번 테러 사건을 우리 사회와 직접 연계해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다. 우리는 아직 노르웨이나 서유럽처럼 이민자 비중이 높지 않고, 외국인을 극단적으로 적대시하는 문화도 팽배해 있지 않다. 그렇지만 다문화 사회가 우리 공동체의 불가피한 미래인 만큼 외국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은 무엇인지, 우리 안에 배타주의가 자리잡고 있다면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등을 성찰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일차적으론 외국인 노동자의 기본권과 법적 지위 보장 등 내국인과 동등한 대우가 중요하다. 외국인과의 공존을 지향하는 교육을 확대하는 등 사회적 포용성을 늘리는 일도 필요하다. 정부가 설치를 검토중인 이민청(가칭)도 외국인 인력 유치라는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를 위한 사회·문화적 정책을 중시해야 한다. 충격적인 사건을 “더 큰 관용과 더 큰 민주주의”로 승화시키려는 노르웨이인들의 노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겨레 2011. 7. 27 사설]
<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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