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다시 보는 주민투표법 - 투표율 33.3%의 의미

道雨 2011. 8. 26. 18:57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다시 보는 주민투표법

   - 투표율 33.3%의 의미

(사회디자인연구소 / 김병준 / 2011-08-25)


투표기간 동안의 언짢음과 불편함

 

 

 

무상급식 주민투표 기간 내내 마음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우선 이런 문제로 주민투표까지 해야 하느냐에 대한 언짢음이 있었습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어린 아이들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감수성 강한 나이 때의 어려운 집 아이들 기죽지 않게 하고, 마음 상하지 않게 하자는 일이었습니다. 시민사회를 둘로, 셋으로 쪼갤 일은 아니었죠. 대통령선거나 시장직과 연계될 일도 아니었고요.

 

사람 많이 모이는 자리에 가기도 불편했습니다. 모여 앉으면 그 이야기인데, 여럿이 같이 있다 보면 누군가 한 명은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하게 되죠. ‘좌파’니 ‘빨갱이’니 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거지근성’ 어쩌고 하며 ‘있는 사람 자식들까지 왜 공짜 밥 먹이느냐’는 소리가 나오죠. 그때마다 어떻게 정색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가볍게 한 두 마디만 하지요. 그러나 그 한두 마디에도 분위기는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참으로 불편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보다 훨씬 더 불편하고 부담이 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투표결과 확정요건인 투표율 33.3% 문제였습니다. 참여정부 초기 주민투표법을 만들고, 이 확정요건을 정하는데 깊이 관여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검토에 검토를 거쳐 그렇게 정하긴 했습니다만, 마음 한구석에 늘 이런저런 걱정들이 남아 있었죠.


 

10년간의 입법부작위

 

조금 돌아가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주민투표법이 쉽게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이야기 드렸으면 합니다. 물론 취지 그 자체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비교적 넓은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지방자치라는 것이 뭐겠습니까? 지방정부의 ‘자기책임성’을 높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즉 중앙정부의 통제를 줄이고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높이되, 그만큼 지방정부에 대한 지역주민의 참여와 통제를 강화해서 지방정부의 책임성을 확보하는 것이죠.

 

주민투표는 바로 이러한 참여와 통제의 핵심적인 장치가 됩니다. 이견이 크게 있을 수 없죠. 그래서 우리도 1994년 3월,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서 이 제도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즉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결정사항’에 대해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죠.

 

그러나 각론에 가자 문제가 복잡해졌습니다. 도입 자체에 대해서는 합의를 했지만 어떤 범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또 어떤 절차로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입장이 다르고, 시민사회의 입장이 달랐습니다. 여당과 야당이 다른 것을 말할 필요도 없죠.

여기에 제도 도입 자체를 반대하면서도 명분상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도 이러한 각론과정에 끼어들어 도입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하자면 저렇게 하자고 하고, 저렇게 하자면 이렇게 하자고 하면서 말이죠.

이래저래 주민투표제도는 지방자치법상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실시될 수가 없었습니다. 발의자와 발의절차 그리고 투표절차 등을 규정하는 절차법인 주민투표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명백한 입법부작위, 즉 국회가 제정해야 할 법률을 제정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입법부작위가 계속되는 동안 별일이 다 있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등이 시위까지 하며 제정을 요구한 것은 물론이고요. 2001년에는 원자력발전소와 관련하여 주민투표 실시를 추진하던 울산광역시 울주군 주민들이 이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습니다. 국회의 입법 부작위가 주민의 참정권을 방해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서 말이죠. 비록 위헌판결을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나름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죠.

 

그런가 하면 법적효력과 관계없이 여기저기서 실질적인 주민투표가 이루어졌습니다. 주민투표법 제정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주민들이나 지방정부가 스스로 결정한 절차에 의해 주민투표를 실시한 것입니다. 쓰레기 매립장 문제를 놓고 실시된 울산광역시 북구의 주민투표, 케이블카 문제를 두고 실시된 경상남도 통영시의 주민투표, 방사선폐기물처리장 문제를 놓고 이루어진 전라북도 부안군의 주민투표 등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투표율 33.3%의 의미

 

2004년의 주민투표법 제정은 이런 배경, 즉 입법부작위가 더 이상 계속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방정부와 중앙정치권 모두 소극적인 입장인데다 발의요건과 투표절차 등 주요 사안에 대한 이견이 여전했습니다. 그나마 정부의 강한 분권 의지와 드라이브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법을 만드는 작업은 2003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행정자치부가 실무를 맡고 국정과제위원회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논의의 축이 되었죠. 추진과정과 내용은 국정과제 회의를 통해서, 또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인 저를 통해 대통령에게 비교적 자세히 보고되었습니다.

 

주민투표의 대상에서부터 발의요건 등, 많은 부분에 걸쳐 많은 고민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투표확정의 요건인 투표율 문제였습니다. 여러 가지 안이 있었죠. ‘규정할 필요가 없다’라는 의견에서부터 ‘2분의 1 이상’으로 하자는 안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너무 낮아도 문제이고, 너무 높아도 문제였습니다. 정치상황이나 정치환경이 다르니 다른 나라의 경우들도 큰 참고가 되지 않았습니다.

'4분의 1’ 안, 즉 25% 안과 ‘3분의 1’ 안,  즉 33.3% 안이 중점적으로 거론이 되다 결국 ‘3분의 1’ 안이 정부안으로 정해졌습니다. ‘4분의 1’이 되면 주민투표가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이제 시작이고, 또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니 일단 남용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여당과 국회도 정부안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다들 가장 괜찮은 안이라고 생각해서이겠죠. 저도 사실 그렇습니다. ‘3분의 1 이상’이 그 중 괜찮은 안이 안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여전히 걱정이 있고, 그런 점에서 ‘4분 1,’ 즉 ‘25% 이상’ 안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좀 더 완숙해지면 고려해 볼 수 있는 안으로 말이죠.

 

‘3분의 1,’ 즉 33.3%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투표율이 낮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면 60%를 넘기가 힘이 들고, 보궐선거인 경우 30%를 넘기가 힘이 들죠. 자연히 주민투표의 경우도 30%를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투표권자의 선호가 아니라 투표율 자체가 결과를 결정하게 되고, 지지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 투표참여 또는 투표불참을 승패의 전략으로 삼게 됩니다.

유권자 역시 그러한 경향을 보입니다. 이번의 주민투표가 바로 그러하죠.

 

 

 

자, 이게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아닙니다. 상당히 중요한 문제를 안게 됩니다.

 

첫째, 투표의 비밀성이 크게 훼손됩니다.

‘3분의 1 이상’ 안을 정할 때 가장 고민했던 사안 중의 하나입니다. 투표장에 가는 사람은 대체로 ‘오세훈 안’을 찬성하는 사람이 되고,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은 이를 반대하는 사람이 됩니다. 일종의 기립투표 내지는 거수투표의 형태가 되는 셈입니다.

 

비밀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비밀성이 보장될 때 유권자는 정치경제적 압력과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투표율이 승패를 결정짓는 상황에서, 또 비밀성이 훼손된 상황에서는 그렇지가 못하죠. 교회나 사찰을 비롯한 종교조직이나 직장, 그리고 여러 종류의 공식 또는 비공식 조직 등의 분위기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번의 경우는 그나마 익명성이 높은 서울의 경우라 이러한 폐해가 적은 편이죠. 지역공동체 의식이 강한 농촌형 지방정부이거나 익명성이 낮은 소규모 지방정부의 경우였다면 문제는 보다 심각해 질 겁니다.

 

둘째, 투표율 자체가 결과를 결정짓다 보니 찬반운동도 보다 격렬해 집니다.

한쪽에서는 더 많은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이끌어 내어야 하고, 그 반대쪽에서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를 막아야 합니다. 자연히 투표대상이 되는 의제가 지나치게 정치화되는 양상이 벌어집니다.

 

이번의 경우도 그렇죠. 오세훈 시장은 대통령 출마 포기에다 시장직을 걸었습니다. 여당과 야당 모두 당력을 모두 쏟아 붓는 모습을 보였고요. 국가를 위해서나 지역사회를 위해서나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물론 투표 확정요건이 낮아진다 해도 다들 나름대로 노력은 하겠죠. 자신들 안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투표율 자체를 높이거나 낮출 필요가 없는 만큼 투표가 지나치게 정치화되는 양상은 아무래도 덜할 겁니다.

 

셋째,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반대하는 안을 지지하게 되는 모순이 생깁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투표에는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는 일이죠. 아울러 별생각 없이 투표에 참여해서 찬/반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번에도 투표에 참여해서 ‘전면실시’ 쪽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으실 겁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분이 계십니다.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투표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생각하시는 분이죠. 이 경우 이 사람들은 본인의 의사와 반대되는 선택을 하신 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단계적 실시’안을 지지하는 결과가 되는 거죠. 투표확정 요건 33.3%가 가지는 일종의 ‘미필적 고의’입니다.

 

2005년 7월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주민투표가 있었습니다. 자치단체로 되어 있는 시와 군을 행정시와 행정군으로 만들어 시장·군수를 도지사가 임명하도록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도지사의 안은 ‘혁신안’으로, 현 체제 유지안은 ‘점진안’으로 명명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지 않음으로써 도지사의 안을 막고자 했습니다. 말하자면 투표불참을 전략으로 선택한 겁니다. 그러나 결과는 투표율 36.7%, 투표확정 요건을 넘겼죠. 도지사 쪽이 이겼고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도지사의 혁신안에 대한 지지도가 57%였다는 점입니다. 투표를 한 사람 중 상당수가 도지사의 안을 반대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도지사안의 손을 들어준 결과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들 중 일부만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도지사의 안은 통과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불참과 참여의 전략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발생한 ‘모순’이었습니다.

 

넷째, 민의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투표불참을 전략으로 삼는 쪽이 지역사회의 정치적 상황을 잘못 파악하여 실제 투표율이 33.3%를 넘어서게 되는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제주도의 시·군 자치제 폐지 주민투표 결과를 놓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해 봅니다. 만일 당시 이를 반대하던 단체들이나 인사들이 처음부터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더라면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 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합니다.


 

풀기 힘든 숙제

 

‘33.3%’가 만들어 내는 이 복잡한 게임을 이대로 둘 것인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형태로건 문제를 완화시킬 방안들을 찾아내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신뢰와 시민의 참여의식이 높아지고, 그래서 투표율도 높아져서 투표율이 결과를 결정하지 않는 상황이 되면 좋겠죠. 그러나 그런 상황이 쉽게 오겠습니까?

그렇다고 바로 투표결과 확정요건을 크게 낮추기도 힘이 듭니다. 이 또한 투표결과의 정당성 확보라는 점에서, 또 자칫 남용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 등과 같이 투표율을 확보하기 쉬운 선거와 동시에 실시하도록 해가며 좋은 방안들을 찾아보아야겠죠. 오세훈 시장의 무리함이 다시 상기시켜 준 풀기 힘든 숙제입니다.

 

김병준 / 前 참여정부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