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뉴라이트의 오답

道雨 2011. 8. 27. 15:55

 

 

 

 

               뉴라이트의 오답 

 

 

 

 

다음 중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개념은?
① 민주주의 ② 자유민주주의 ③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④ 정답 없음

 

새삼스레 헌법을 뒤적인 까닭은, 지난 8월9일 교육과학기술부가 고시한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육과정’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사정은 이렇다.

교과부는 사회과 현대사 내용 요소에 ‘민주주의의 발전’ 대신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넣으라고 고시했다.

교과서 작성 지침인 교육과정의 연구·개발을 맡은 ‘역사 교육과정 개발정책 연구위원회’와 교과부 산하 상설기구이자 교육과정 개발 최종 심의기구인 ‘사회과 교육과정심의회’에서 확정한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개념을 일거에 뒤집은 것이다.

 

교육과정 개발 작업이 교과부의 엄격한 지침에 따라 이뤄진 사실을 고려하면, 교과부의 이런 제 얼굴에 침 뱉기식 뒤집기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탓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당장 ‘역사 교육과정 개발정책 연구위원회’ 위원 24명 중 21명과 오수창 위원장은 8월16일 기자회견을 열어 “참담한 심경을 금할 길 없다”며 “‘역사’ 교육과정의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사 관련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바뀐 건 사상 초유의 사태다.

 

 

이 논란은 중차대하다. 절차상의 하자를 넘어, 헌법 정신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제헌헌법(1948년 7월17일 제정)부터 현행 9차 개정헌법(1987년 10월29일 개정)까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지탱하는 주춧돌이자 대들보다.

‘자유민주주의’는 역대 어느 헌법에도 명시되지 않은, 헌법적 근거를 지니지 못한 표현이다.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한국현대사학회나 교과부 쪽은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있으므로, 추상적인(?) ‘민주주의’보다는 의미가 명확한(?)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담는 데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은 1972년 유신헌법에 처음 명시됐다. 제헌헌법의 “민주주의 諸 제도를 수립하여”에서 후퇴한 표현이다.

 

하지만 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조차 지금 교과부가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동의어는 아니다. 이 개념은 독일 헌법(본기본법, 1949)의 “자유로운 민주적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에 젖줄을 대고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이를 “인간의 존엄, 자유 및 평등을 거절하는 전체주의적 국가의 대립물”이라고 규정했다.

나치즘·스탈린주의 등 극우·극좌의 ‘거절’일 뿐, 특정 정치사상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법제처의 대한민국 헌법 영역본에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로 돼 있다. 자유민주주의(Liberal-democracy)와 다른 개념이다.

그러므로 교과부의 뒤집기는 헌법 정신의 부정이다.

 

교육은 백년의 대계이므로, 그 핵심 수단인 교과서는 최대한의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교과부는 ‘법과 정치’ ‘사회·문화’ 등 헌법을 다루는 과목의 교육과정 고시에서는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지 않았다. 유독 현대사 내용 요소만 바꿨다.

 

교과부의 이런 일관성 없는 행태는, 이명박 정권 출범 첫해인 2008년 8·15를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바꿔 부르려다 학계와 여론의 반발로 물러섰던 소동과 맞닿아 있다. 요컨대 중등교육과정의 한국사 교과서를 뉴라이트적 역사관으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뉴라이트들은 ‘반(反)대한민국 역사 교과서 척결’을 입에 달고 사는데, 그들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주의+시장자유주의’의 다른 말이다. 헌법의 ‘민주주의’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무관하다.

 

그들이 건국과 부국의 아버지로 숭배하는 이승만·박정희의 헌법 유린을 21세기에 되살리겠다는 건데, 터미네이터의 “I’ll be back”에 빚대자면 무덤 속 좀비들의 뉴라이트식 부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지금 “I’ll be back”을 외쳐야 할 주체는 좀비가 아니라 민주주의다.

 

 

한겨레21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