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금지곡

道雨 2011. 8. 27. 12:16

 

 

 

                          금지곡 

                                       

 

유신시절의 독재자도 국민을 방종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착한 생각이 가득했을 것이다

 

 

»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박정희의 유신독재는 온갖 것을 감시하고 규제하였다.

머리칼이 귀를 덮는 남자들은 파출소로 끌려갔고,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은 거리에서 잣대질과 가위질의 수모를 당했다.

음반에는 이른바 건전가요를 한 곡 이상 넣게 했고, 많은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금지된 노래 중의 하나가 송창식씨의 <왜 불러>인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 노래가 왜 거기 끼었는지 알지 못한다.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 이런 가사의 어느 대목이 독재자의 비위를 거슬렀을까.

 

떠돌아다니던 이야기가 있다.

 

전국의 모든 대학생이 교련을 받던 시절인데, 어느 대학에서 사열을 하던 대학생들이 대오를 지어 검열단 앞을 지나갈 때 ‘우로 봐’ 구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송창식씨의 저 노래를 불렀다.

그것도 가사를 변조하여 “왜 불러 왜 불러 공부하러 가는 사람을 왜 불러”라고 불렀다. 사복경찰들이 덮쳐들어 학생들을 잡아갔고, 노래는 그 이튿날 금지곡이 되었다는 설이다. 물론 그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다.

 

유신 막바지에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났고, 독재자는 제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다.

나는 박정희가 죽은 다음해인 1980년 3월 마산의 한 대학에 정식교원으로 임명되었다. 학교에는 부마항쟁의 주동자로 잡혀가 감옥생활을 하다 돌아온 학생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몸집이 단단한 여학생이 하나 있었다.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 학생이 내 수업시간에 한 말을 나는 지금까지 잊어버리지 않았다. 정확하게 이런 말이었다.

“군사독재가 없었더라면 팝송이 발달해도 얼마나 발달했겠어요.”

 

최근에 <나는 가수다>를 시청하던 내 눈자위가 조금 붉어진 것도 노래에 감동해서라기보다는 그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십줄에 들어섰을 테고, 당시의 저보다 더 나이 많은 자녀를 두었을 그 여학생과 그의 친구들이 그때 감옥살이를 하지 않았더라면 저 가수가 저렇게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을까, 제 자유와 사랑을 저렇게 당당하게 펼쳐낼 수 있을까.

 

여성가족부가 노랫말에 ‘술’이나 ‘담배’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많은 노래들을 금지곡으로 지정했다는 말이 들린다.

나는 이 조처가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착한 마음에서 비롯하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저 환상적으로 엄혹했던 유신시절의 독재자도 국민들을 나태와 방종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착한 생각이 마음속에 가득했을 것이다.

그는 인간이 저마다 스스로 성장하고 스스로 다스릴 만한 판단력이 있다고 믿지 않았을뿐더러 그런 능력 자체가 위험하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이 먹고 입는 것을 간섭했고,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정했으며, 부르는 노래를 감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불러야 할 노래를 스스로 만들어 가르쳤다.

그는 우리가 저마다 살아야 할 삶의 목표까지 정해 주었지만, 사람들은 날마다 불안했고 나날이 주눅이 들어갔다.

 

지금 우리의 젊은이들은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춘다. 글도 잘 쓰고 멋도 잘 낸다.

그것은 이들이 누가 미리 지정해준 삶을 곱게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자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으며, 제가 저 자신을 자유롭게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긍지를 지녔기 때문이다.

 

김수영 시인이 ‘사랑의 변주곡’에서 말했던 것처럼 제 마음속의 복숭아씨와 살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 그 힘을 창조력의 밑받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판단하고 선택하기 전에 모든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가려 놓은 채, 생명에 삽질을 하고 시멘트를 발라 둑을 쌓아 둔다면, 거기 고이는 것은 창조하는 자의 사랑이 아니라 굴종하는 자의 증오일 것이다.


 

 

 

                    금지곡(曲)

 

                                            - 아침이슬, 거짓말이야, 동백아가씨,...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타오르고...

 

대중가요 아침이슬의 한 대목이다.

 

이 노래가 1970년대 금지곡이 됐던 것은 가사 때문이었다. ‘묘지’는 남쪽 군사정부를, ‘태양’은 북쪽의 지도자 김일성을 가리킨다고 해서 못 부르게 했다.

이 노래는 1987년 6.29선언 몇 달 뒤에 해금됐다. 꼬박 15년 만이었다.

 

1969년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로 가요계에 등장한 김추자는 당시 파격적인 섹시함을 선보이며 ‘님은 먼 곳에’로 가요계 정상에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이야’를 부를 때 흔드는 손동작이 북한 공작원에게 보내는 수신호라는 소문 때문에 1975년 정부에 의해 금지곡이 됐다.

 

이보다 앞서 1963년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여인의 깊은 한과 애상을 간절히 드러낸 노래였지만 일본풍이라는 이유 때문에 금지곡이 됐다.

이밖에도 송창식의 ‘왜불러’, ‘고래사냥’은 1975년 개봉된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경찰의 두발단속을 피해 도망치는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썼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금지곡 리스트에 올렸다.

 

우리 가요계는 1965년 이후 금지곡으로 묶인 노래는 837곡에 이른다. 대부분 유신의 상징이었던 1975년 대통령 긴급조치 9호로 인해 취해진 조치다. 서슬 퍼런 독재시대에 가요계로선 구속을 피해 금지곡이 된 것에 감지덕지해야 했던 때였다.

그런 아픈 기억을 가진 가요계가 최근 노래가사 탓에 금지곡(?) 수준의 청소년유해매체물로 판정돼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술·담배란 말이 들어간 곡에 대해 잇따라 ‘19세 미만 청취 불가’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런 조치는 노랫말에 유해한 약물이 포함돼 청소년에게 불건전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다.

이달 들어서만 총 24곡이 유해매체로 고시됐다. 올해 들어 169곡을 ‘19금(禁)’ 판정을 내렸다.

 

이 중 대중에게 잘 알려진 CM송 ‘아메리카노’는 ‘이쁜 여자와 담배 피고’란 가사 때문에 19금 딱지가 붙었다.

 

여성가족부는 “선정성. 폭력성이 강한 노랫말은 줄어들고 있는데 술.담배가 들어간 노랫말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요계는 “국가가 표현의 자유를 너무 침해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문제는 심의 잣대가 되는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는 데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라는 것이다.

 

대중음악 전문가들은 자율규제 방식으로 전환할 것으로 부르짖고 있다. 부모가 퇴근길 술 한 잔 마시고 귀가하는 것도 청소년이 있는 자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곽상훈 충북취재본부 차장 kshoon@daejonilbo.com


 

 

                            금지곡

  • 조선 시대 사대부들은 고려 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고려 가요를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로 분류해 배척했다. 남녀 간의 사랑을 노골적이고 대담하게 그렸다는 것이다. 쌍화점(雙花店), 이상곡(履霜曲), 만전춘(滿殿春) 등이 대표적이다.
  • 이상곡은 임을 향한 애절함을 표현한 서정시에 가깝다. 만전춘은 성 표현이 노골적이기는 하나 절절한 연가(戀歌)라고 할 수 있다.
  • 조선 개국 세력이 정권의 정통성과 사대부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려시대의 민중 문학을 ‘금지곡’으로 낙인찍었다.

    박정희의 유신체제 아래에서 금지곡이 쏟아졌다.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고 문화공보부가 ‘공연활동의 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금지곡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국가안보국민총화에 악영향을 주거나 외래풍조를 무분별하게 도입 또는 모방한 것, 패배·자학·비관적인 내용, 선정·퇴폐적인 것이라는 딱지가 붙은 노래들이었다.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출범하고서도 금지곡 지정은 계속됐다.

    지금 생각해도 얼토당토않은 이유들이었다. 대표적인 운동권 노래였던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그렇다 치더라도, 송창식에게 10대 가수상을 안긴 ‘왜불러’ ‘고래사냥’까지 한동안 방송을 타지 못했다. 양희은의 ‘작은 연못’은 가사가 불온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된 뒤 오히려 운동권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때를 아십니까’ ‘대한 늬우스’에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2011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대중 음악 심의를 맡은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마구잡이 가위질로 도마에 올랐다. 가수들의 노래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는 일이 빈번하다.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는 내용이나 욕설, 비속어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골면 코걸이 식이다.

    가사에 술이나 담배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어김없이 19금 판정을 받는다. 폭력성과 사행심을 조장했다 해서 19금이다. 폭력성으로 따지자면 국회를 따라갈 곳 없고, 사행심 책임을 묻자면 로또와 연금복권 발행으로 온 국민을 일확천금의 헛된 꿈에 기대게 한 정부만 한 곳이 없다. 청소년들이 기막혀 한다. 여성가족부가 도대체 뭐하는 곳이냐?

    김기홍 논설위원

 

 

김여진-이외수, "술 들어가면 금지곡?" 여성가족부 비판
 
 
[이미영기자]

 

소설가 이외수와 배우 김여진 등이 여성가족부의 대중가요 유해판정에 쓴소리를 했다.

21일 여성가족부는 지난 16일 열린 본심의에서 십센치(10cm)의 '아메리카노' 등에 대해 유해 여부를 검토한 결과 청소년유해물로 판정했다.



여성가족부는 "이쁜 여자와 담배 피고 차 마실 때" "다른 여자와 키스하고 담배 필 때"라는 가사를 지적하며 담배를 '이쁜 여자'와 핀다고 미화하고, '다른 여자'와 핀다고 노래해 건전한 교제와 만남을 왜곡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과 사회 인사들은 술, 담배 등 특정 단어 때문에 유해물로 지정하는 것은 과도한 것 아니냐는 비판 글이 쏟아지고 있다.

배우 김여진은 22일 자신의 트위터에 "십대들 편의점 음식점 다 출입금지 시켜야겠다. 노래에서 '술' 단어 듣는 걸로 자극받는데 버젓이 진열된 실물 보는 것은 큰 일 나는 거 아닌가? 취한 어른들 이마에 19금 스티커 다 붙이고 걸어 다니라고 하고"라는 글을 남겨 청소년 유해물 판정에 대해 비판했다.



이외수 역시 트위터를 통해 "모 방송국. 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대중가요는 청소년들에게 유해하므로 금지곡으로 판정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청소년들에 대한 애정의 쓰나미에 찬탄을 금치 못할 지경이다. 앞으로 교육방송을 제외한 모든 방송을 폐지시키는 건 어떨까"라는 글을 남겼다.

한편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되면 청소년 시청 보호시간대인 오전 7시~오후 10시 방송이 금지되고 인터넷에서 곡을 다운로드받을 때는 성인 인증을 받아야 한다. 또 음반을 팔 때는 '19세 미만 청소년 판매금지' 표시를 해야 한다.

이미영기자 mycuzmy@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