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철수’와 ‘진숙’은 만나야 한다

道雨 2011. 9. 15. 11:22

 

 

 

 

         ‘철수’와 ‘진숙’은 만나야 한다

 

안철수 현상과 김진숙 현상이 만나 새로운 정치·경제·사회 패러다임과 체제를 만들어 낼 때 한국 사회의 진정한 진보는 시작될 것이다

 

 

»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왼쪽)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한겨레 자료사진
최근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적 중심인물이 김진숙에서 안철수로 급변했다.

선거를 앞두고 노동에서 정치로 관심이 바뀐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우월한 지지율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준 흔쾌하고도 담백한 양보는 큰 감동을 주었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기성 정치인들이 보여준 모습과는 다른 것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후 안 원장은 단박에 대선 유력주자가 될 정도로 그에 대한 기대는 크다.

이러한 ‘안철수 현상’은 편 가르기식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혐오가 안철수라는 새로운 ‘영웅’을 매개로 폭발한 것이다.

대중과 겸허히 만나 공감하기보다는 가르치고 끌고 가려 하는 기성 정치, 대의와 헌신보다는 정치공학적 셈법에 목을 매는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준엄한 경고이다.

 

 

또한 이 현상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쟁과 이에 기초한 성공을 희구하는 우리 사회 수많은 ‘을’들의 열망의 산물이다.

재벌에게 영역을 빼앗기고 하청단가 맞추느라 헉헉대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학점과 스펙 관리하느라 청춘을 보내고 대학을 졸업해도 좋은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정도로 어려운 젊은 ‘잉여’들의 울분이 그 뒤에 깔려 있다.

국가가 자신들의 꿈과 고통을 외면하는 상황에서 ‘을’들은 따스한 위로와 조언을 주는 성공한 벤처기업가 ‘멘토’를 만난 것이다.

 

 

사실 ‘합리적 중도’라 할 수 있는 안 원장이 중소기업이라는 ‘동물’을 가두어 죽이는 ‘동물원’이라고 재벌을 비판하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반한나라당’을 선언한 것은, 그가 ‘좌파’라서가 아니라, 재벌이나 한나라당 등 집권세력의 행태가 비합리와 불공정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철수에 대한 환호와 박수 속에서, 한가위 연휴에도 35m 높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사투는 묻히고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용접공 김진숙은 쉰살이 되어 왜 크레인에 올랐을까?

또 전국 각지에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달려갔을까?

 

한국 최저임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양과 질의 노동을 해도 비정규직의 임금은 반 토막이다.

오이시디 바닥 수준의 복지로 사회적 안전망이 찢어졌기에, 해고는 바로 몰락 또는 죽음을 뜻한다.

그러나 재벌은 사상 최고의 이익을 올리고도 비용 절감을 이유로 노동자를 시도 때도 없이 ‘정리’한다.

집권세력은 겉으로는 ‘공생발전’ 또는 ‘자본주의 4.0’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철두철미 ‘정글 자본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희망버스’에 몸이나 마음을 실은 사람들은 이러한 억압과 착취의 체제를 반대하기 위하여 나섰다.

자본의 논리에 맞서는 노동의 강화, ‘사회적 살인’을 막기 위한 약자와의 연대, 이것이 바로 김진숙 현상의 핵심이다!

 

 

안철수 현상의 긍정적 의미, 매우 소중하다.

안 원장이 사회적 활동을 넘어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김진숙은 사라지고 안철수만 부각되는 현실은 안타깝다.

김진숙이 250일 넘게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가 부끄럽다.


»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철수와 김진숙 사이에 간극은 분명 존재하며, 안철수 현상만으로는 김진숙의 절절한 요청이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사실 양자는 겹치는 면이 많다.

자본 중심의 세상에서 합리와 공정이 안착되려면 노동의 힘이 커져야 한다.

 

사실 ‘따뜻한 자본주의’가 되기 위해서도 노동이 중요하다.

노동자가 존엄을 유지하면서 살려면 합리와 공정이 세상의 기본규칙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얼마 전 김진숙은 크레인 위에서 가수 김원중의 노래 <직녀에게>를 불렀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이제 안철수 현상과 김진숙 현상은 만나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철수’와 ‘진숙’이 힘을 모아 새로운 정치·경제·사회 패러다임과 체제를 만들어 낼 때 한국 사회의 진정한 진보는 시작될 것이다.

 

<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