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중학교 교과서 ‘친일파 청산’ 문구 삭제… 독재정권 표현도 빠져 (미디어오늘 / 류정민 / 2011-11-09)
‘친일파의 꿈’, 이명박 정부 시대에 이뤘다
“친일파 청산 관련 내용은 교과서에서 다뤄도 되고 다루지 않아도 된다.… 교과서에서까지 다룰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봤다.”
뉴라이트 계열의 ‘한국현대사학회’ 이명희 교과서위원장은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과 관련해 이렇게 밝혔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가 다수 역사학자의 우려를 외면한 채 ‘뉴라이트’ 사관을 새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담는 결정을 내렸다.
한겨레는 11월 8일자 3면 <‘친일파 청산’ 문구까지 삭제… 역사교육 퇴행한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무슨 얘기일까.
새로운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대한민국은 (유엔에서 합법정부로 승인된)이후 농지개혁을 추진하고 친일파 청산에 노력하였음을 서술한다’는 내용을 삭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
중학교 학생들은 역사교과서에서 독립운동과 친일파 문제에 대해 어떤 교육을 받게 될지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에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제 식민지 과정에서 민족을 지배하고 수탈한 이들을 도왔던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에도 역사의 단죄를 받기는커녕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부상했다.
결국 친일파 노릇을 했던 사람은 대대손손 잘 먹고 잘살고 독립운동가 가족들은 어려움 속에 힘겹게 살고 있다는 자조 섞인 평가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은 부유하게 살고, 출세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생활했다. ‘친일인명사전’ 출판 등 당시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자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숨죽였고,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조용히(?) 항변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뉴라이트’가 사회 전반을 쥐락펴락하는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이번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친일파 청산’ 문구가 삭제된 것은 숨죽이며 살았던 친일파들의 꿈이 이뤄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한겨레 11월 9일자 3면 |
식민지 근대화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뉴라이트 사관을 대한민국의 자라나는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시대가 현실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당시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의 행위는 무엇이며, 친일파들의 행동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어렵고 힘들게 살았지만 긍지를 잃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후손들 입장에서는 참담한 상황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명박 정부 시대에 벌어진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은 독도문제와 관련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의 문제점을 지적해왔지만, 비슷한 일이 국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한겨레는 <‘역사 농단’과 정권의 운명>이라는 사설에서 “친일파 청산의 의지와 과정, 결과에 대한 기술을 집필기준에서 없앴다. 역대 독재정권과 그 부역자들은 대부분 그 뿌리를 친일파에 내리고 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아마 가장 큰 수혜자는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 한국일보 11월 9일자 4면 |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독재정권’이라는 문구가 빠졌다. ‘이승만 독재’ ‘박정희 중심 5.16 군사정변’ ‘전두환 신군부 정권’이라는 문구도 빠졌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 등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해 나갔음을 서술한다”는 2007년 역사교과서 집필기준도 이번에는 빠졌다.
친일파와 독재를 감추고, 민주화 운동의 역사도 감추는 이러한 시도가 성공한 것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권의 성향에 따라 역사를 손질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이 문제의 지점이다.
한국일보는 11월 8일자 3면에 <학교 “교과부 의견수렴 시늉만… 뉴라이트 역사관 밀어붙이기”>라는 기사를 실었다.
▲ 경향신문 11월 9일자 사설 |
이명박 정부는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해 2008년 2월 탄생한 정부이다.
국민은 5년의 임기 동안 국민을 대표해서 나라를 책임져 달라는 권한을 위임했을 뿐,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라는 권한을 준 것은 아니다.
역사를 권력의 입맛에 따라 바꾸는 것은 조선시대 ‘왕’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행동인데, 이명박 정부에서 그 시도를 하는 것은 역사에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은 <개악된 역사교과서는 다시 바뀔 수밖에 없다>라는 사설에서 “정상적 절차도 안 거치고 학문적으로도 정의되지 않는 집필기준이라면 역사교과서의 왜곡은 불가피하다”면서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 부르지 못하고, 독재를 독재라고 가르치지 못하는 역사 수업으로 어떻게 대한민국의 빛나는 성취를 교육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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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교육과학기술부가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발표했다.
학계의 전면적인 반발과 간절한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정권은 자신과 이해를 같이하는 소수의 친일·수구 언론과 재계, 관변학자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했다.헌법적 가치인 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중립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교육을 권력 이데올로기의 홍보수단으로 만들려는 그 의지가 놀랍다.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겠다는 교과부 안은 사실상 원안 그대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바뀐 부분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불행하게도 역사학계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 자유민주주의는 학문적 근거가 부족하고, 우리 민주주의를 규정하는 데 혼란만 야기한다. 이 말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두 날개 가운데 하나를 없애버리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반공’을 앞세워 자행돼온 독재체제를 합리화하는 데 이용돼왔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반공을 앞세워 자유와 평등, 국민주권을 부정했던 정권에 대한 객관적 규정, 즉 ‘독재’도 삭제했다. 그저 ‘장기집권에 따른 독재화’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독재의 실체적 내용인 자유와 민주주의의 유린을 덮어버림으로써 학생들이 독재체제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없애버렸다.
게다가 친일파 청산의 의지와 과정, 결과에 대한 기술을 집필기준에서 없앴다. 역대 독재정권과 그 부역자들은 대부분 그 뿌리를 친일파에 내리고 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아마 가장 큰 수혜자는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일 것이다.
내용 왜곡 문제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교육의 중립성 훼손이다. 역대 독재정권이 가장 먼저 농단하려 한 것은 학교교육을 정권의 이데올로기 주입 수단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파시즘, 공산주의 등 모든 전체주의 정권에서 그러했다. 이명박 정권도 지금 그 대열에 발을 디밀고 있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교육의 중립성을 왜곡한 정권의 말로는 자명했다. 이 땅의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은 물론 다른 전체주의 정권의 종말은 예외없이 비참했다. 학계뿐 아니라 우리 국민이 불행을 막는 데 함께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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