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관련

민주주의가 국경을 넘으면 <패권주의>, FTA가 국경을 넘으면 <신자유주의>

道雨 2011. 11. 21. 16:57

 

 

 

 


민주주의가 국경을 넘으면 <패권주의>, FTA가 국경을 넘으면 <신자유주의>

[변상욱의 기자수첩] 이것이 미국의 ‘론스타’ - 나만 별이다

(CBS / 변상욱 / 2011-11-21)


◇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몰라?

 

미국의 정책 결정구조는 한국과 매우 다르다. 한국은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이고 청와대가 뜻을 굳히면 협정이건 조약이건 만들어내는(?) 구조이다.

그러나 미국은 다원적 민주주의 시스템이다. 연방헌법도 있지만 각 주의 헌법이 따로 있다. 연방정부가 있고 주정부가 있다. 연방정부도 대통령부가 있고 대통령에게 맞서고 따돌리기까지 하는 연방 관료집단이 있다. 의회는 상원이 있고 하원이 있다. 이익단체들의 의회 로비도 합법적이다.

 

미국 대통령과 의회의 갈등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고 격렬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지적대로 “미국 의회는 여야가 하나가 돼 자국의 이익이 된다니 합심해 비준처리 하잖냐, 우리 의회도 좀 그래 줬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미국에 이득이 크고 한국에 매우 불리하다는 방증일 뿐이다.

 

미국의 3권 분립 체제에서 대통령은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인 것은 맞다. 그러나 재정권, 조약비준권은 미 의회에게 권한이 주어져 의회가 좌우한다. 대통령의 결심과 의회의 결정은 다양한 이해 집단과 연방 관료집단의 판단과 조언을 거쳐 이뤄지지 자의적이고 독립적이지 않다.

따라서 미국의 정책은 철저하게 미국인들의 이익을 위해 준비되고 과정도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민주적 의견 수렴과정을 거친다. 미국인 입장에서는 이 민주적 의사결정이 훌륭하지만 다른 나라가 자국 이익을 위해 미국 정치권을 파고들 때는 몹시 힘든 장벽이 된다. 대통령, 대통령 비서실, 상하원, 연방정부 관료, 이익집단, 이익과 관련된 주의 상하원 의원…… 넘어야 할 벽이 다중으로 되어 있고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와 이익단체들이 전략적 이익에 대해 합의를 이뤄냈고 FTA 협정안 비준까지 모두 끝내 발효되었는데 우리 대통령과 여당이 울상이 되어 고쳐 달라 한다면 과연 개정 협상에 진지하게 임할까? 어림없는 일이다.

 

 


 

 

◇ 미국에겐 알아도 당하기 십상?

 

민주당에서 나왔다는 “두 나라 장관급 이상의 재협상 서면 합의서를 받아 오라”, “협정 발효와 동시에 ISD 폐기를 위한 협상을 시작하도록 실무협의를 시작한다”는 절충안 역시 무의미하다.

독소조항은 ISD 외에 수두룩하기 때문에 이것만 폐기해주면 비준한다는 태도도 역시 좁디좁은 생각이다.

뭐든 비준 후 개정협상 들어가자마자 “ISD 폐기는 거절한다, 더 이상 언급하지 말라”고 한마디 하면 끝나버린다.

 

개정협상 자리에 만나서 ISD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미국을 밀어붙일 카드는 무엇인가?

ISD의 폐기가 미국에게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증명하며 설득해야 한다. 못하면 다른 더 큰 것을 내주면서 협상해야 한다. 그 협정문이 다시 미 하원, 상원을 거치고 관료집단과 이익단체들에게도 통할 수 있을 만큼 내주려면 무엇을 내줘야 할까?

 

국민들은 그래도 대통령이 ‘비준만 해라 3개월 안에 협상 들어간다’고 자신 있게 얘기한 것에 기대를 갖는다.

그것은 한미공동위원회 산하에 서비스투자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회는 어떤 이슈라도 다룰 수 있도록 했고, 협정 발효 후 90일 이내에 첫 번째 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해 놓은 데 따른 것이다. 결코 이명박 대통령이 따로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 개정협상 자리를 만든다는 게 아니다.

협상 비준발효 후 뒷마무리용으로 당연히 만나기로 되어 있는 자리이다. 그걸 국회에 가서 ‘내가 책임지고 개정협상 이뤄내마’ 둘러댄 것뿐이다.

이것을 ‘대통령이 저리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 미국이 만나주겠다 한 모양이고, 만나자고 하는 건 ISD나 다른 독소조항을 어느 정도는 뜯어고쳐 주려고 만나자 한 것 아니겠나’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사실 서비스투자위원회에서 만나면 만날수록 한국은 오히려 불리해진다고 보는 게 옳다. 미국은 FTA를 그저 관세협정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 뒤의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을 워싱턴에서 만났다. 로버트 졸릭(미국 무역대표부인 USTR 대표·국무부 부장관을 역임했으며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부회장이고 한미 FTA를 기안한 인물이다.) 총재는 “한국도 의료, 보건, 교육 등 서비스 산업 및 전기, 통신 등 네트워크 산업 등에 대한 구조개혁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리고 “한미 FTA 등이 구조개혁을 촉진하는데 중요한 요소”임을 재차 강조했다.

 

졸릭이 말하는 구조개혁이 뭘까? 그것은 규제완화와 민영화이다. 그리고 충돌이 생겨 문제의 ISD 판정으로 가려야 한다면 그것을 담당한 국제중재기구는 세계은행 산하기관이다. 시쳇말로 한국은 말리게 되어 있다.

미국의 목표는 한국 서비스 산업의 규제완화, 민영화, 공공성 약화가 목표이고, 아직은 신자유주의를 늦추며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에 국제협약이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를 뿌리내리는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이다.


 

◇ 미국의 <론스타>는 ‘나만 별이다!’

 

멕시코도 농축산 부분을 재협상으로 바꾸겠다고 대통령과 장관이 약속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KBS가 과거에 제작한 심층보도 프로그램에서 멕시코 노동연구원 사무처장은 이렇게 말한다.

 

“멕시코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비극적인 것은 이런 함정을 미국 혼자서 판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과 멕시코 통치자가 함께 만든 함정이다”

 

멕시코가 몰라서 당한 건 아니다. 멕시코는 나라 땅 1/3을 미국에 빼앗긴 쓰라린 침탈의 경험이 있다.

 

19세기 중반, 미국 - 멕시코 전쟁 당시 미국 노예농장주들은 멕시코의 텍사스를 헐값에 빌려 쓰다 아예 자기네 땅으로 하겠다고 독립자치주를 세우고 이름을 <론스타>라고 했다. 멕시코는 말도 안 된다며 쫓아내려 했고 미국은 그걸 빌미로 멕시코를 침략해 멕시코 땅을 집어삼켰다.

 

그 아픔에도 불구하고 멕시코가 나프타 FTA에서 미국에게 당한 건 멕시코 대통령과 관료들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우리 역시 경험이 있다. 지난 2008년 퍼주기 협상으로 사실상 30개월 이상 쇠고기까지 완전 개방 했던 정부가 ‘주변국이 미국과 강화된 쇠고기 협상을 할 경우 재협상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미국의 민주주의는 경제적, 전략적 이익을 두고 절대 미국 국경을 넘어서지 않는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국익에 철저하기 위한 절차일 뿐 다른 나라의 평화와 생존은 아무 관련이 없다.

 

역사적으로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내건 명분은 “모든 나라는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였다. 윌슨 민족자결주의가 여기서 나왔다. 그러나 멕시코 침략 때는 “영토의 확장은 우리의 명백한 운명이다”라고 말을 바꿨다. 이어 미국이 아시아로 눈을 돌려 필리핀을 침략할 때는 “미개한 문명을 정벌해 문명을 전하는 것은 선진문명국으로서 짊어진 무거운 짐”이라고 했다.

 

오늘도 <론스타>라는 이름은 어려움에 처한 한국 금융을 먹이로 해 수조 원을 챙겨 튀었고 우리 금융당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그리고 ‘FTA’를 눈앞에 두고 있다.

 

<론스타>는 ‘외로운 별’이 아니다. 미국의 패권주의 전략에서 <론스타>는 미국 역사가 보여 주는 대로 ‘나만 별이다’라는 오만함이다.

이럴진대 ‘FTA’를 두고 한국이 미국을 점령하는 경제 영토의 확장이라며 국민을 설득하려 하다니 참으로 ‘괴담’이 아닌가 말이다.

 

변상욱 / CBS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