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위헌이 표현을 자유케 하리라

道雨 2012. 1. 9. 15:58

 

 

 

      위헌이 표현을 자유케 하리라 
인터넷 정치적 표현에 대해 ‘자유를 원칙으로, 금지를 예외로’ 한다는 시대정신 담은 헌재 결정…1958년 제정된 법에 뿌리를 둔 규제 위주의 선거법 업그레이드 시동을 걸다
         

 

  

 

 

 

 

 

» 2011년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투표인증샷’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방송인 김제동씨, 개그맨 김경진씨, 가수 김창렬씨, 방송인 주영훈·이윤미씨 부부,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위로부터). 한 시민이 김제동씨의 투표인증샷을 ‘불법 선거운동’이라며 검찰에 고발장을 냈다. ‘민주주의 꽃은 선거’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표어가 무색하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판결문이나 결정문을 읽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사실과 법리의 건조한 나열로 이뤄진 법원 판결문에는 팩트로 전달되는 굵고 진중한 힘이 있다. 반면 헌법전에 숨어 있는 정신을 녹여내고 가치를 추출해낸 헌법재판소(헌재) 결정문에선 시대를 성큼 선취하거나 따라가려는 뜨거운 힘이 느껴진다. 가령 이런 대목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헌법상 지위, 선거운동의 자유의 성격과 중요성에 비추어볼 때, 정치적 표현 및 선거운동에 대하여는 ‘자유를 원칙으로, 금지를 예외로’ 하여야 하고, ‘금지를 원칙으로, 허용을 예외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자명하다.” 이건 또 어떤가. “정당의 정보제공 및 홍보는 계속되는 가운데, 정당의 정강·정책 등에 대한 지지, 반대 등 의사표현을 금지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정당이나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여 정당정치나 책임정치의 구현이라는 대의제도의 이념적 기반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투표율이 급속히 떨어진 한 원인”

헌재가 인터넷을 통한 일반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선거 6개월 전부터 꽁꽁 묶어놓았던 공직선거법 조항을 무력화시켰다.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 역시 ‘180일 전’이라는 족쇄에서 사실상 풀려났다. 헌재는 2011년 12월29일 재판관 6(한정위헌) 대 2(합헌) 의견으로 공직선거법 제93조 1항의 규제 대상에 트위터·블로그·사용자제작콘텐츠(UCC)·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대화방 등에 올라오는 글·사진·동영상·음악 등을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모든 콘텐츠가 제93조 1항의 ‘주술’에서 풀려나게 된 것이다. 제93조 1항은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검찰, 경찰은 이 조항의 끝단에 붙은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에 트위터 등 인터넷 콘텐츠를 포함시켜 단속해왔다. 헌재의 결정으로 인터넷 콘텐츠를 포함시켜 규제하면 이 조항은 위헌이 된다.

‘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을 금지하는 이 조항은 반세기 전인 1958년 제정된 민의원의원선거법 제58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터넷·스마트폰은 개념조차 없고, 유선전화도 귀한 전보의 시대였다. 고무신이나 막걸리 한 사발을 받아들고 표와 맞바꾸던 시대가 배경이다. 돈 있는 자의 금권선거를 막겠다는 취지가 깔렸다. ‘180일 전’이라는 단서는 1994년 만들어진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서부터 도입됐다. 당시 입법 취지를 보면 이렇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많은 선거를 치러오면서 우리가 바라는 깨끗한 선거 풍토를 조성하지 못하고 과열과 타락, 금권지배, 그리고 불법·탈법이 횡행하는,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선거법 경시 풍조가 많았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이 때문일까.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선거법의 대원칙은 온데간데없고 한국에는 강력한 규제 일변도의 선거관리가 똬리를 틀었다. 그 결과는? 정치학자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칼럼에서 “과도한 정치활동 규제와 대중 참여를 불온시한 결과는 투표율의 급락으로 나타났다.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30% 가까이 떨어졌는데,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이처럼 빠른 시간에 이처럼 빨리 투표율이 떨어진 사례는 찾기 힘들다”고 했다.

헌재가 인터넷을 ‘해방’시킨 출발점도 이 지점이다. 앞에 인용한 헌재의 ‘뜨거운 문장’ 말고도 결정문 곳곳에는 인터넷을 통한 정치적 의사표현을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넘쳐난다. “국민의 정치적 표현 욕구가 증대하고 인터넷 매체의 급속한 발전·보급 및 휴대전화 단말기로 인터넷에 접속… 기존 오프라인 시대에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을 규제하기 위해 도입됐던 이 법률 조항이 인터넷 공간에 그대로 적용되면서 발생한 문제”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이 법률 조항이 최초로 도입될 당시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매체” “인터넷은 개방성 등을 기본으로 하는 사상의 자유시장에 가장 근접한 매체…”.


인터넷에 대한 모순적 태도 수정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대한 합리적 이해는 ‘선거 혼탁’을 막아야 한다는 막연한 의지를 훌쩍 넘어선다. “인터넷은 저렴한 비용으로 누구나 손쉽게 접근이 가능” “가장 참여적인 매체” “표현의 쌍방향성 보장” “경제력 차이에 따른 선거 공정성 훼손이라는 폐해 가능성 현저히 낮아”. 특히 “매체 자체에서 잘못된 정보에 대한 반론과 토론, 교정이 이뤄질 수 있다”며 일부의 우려와 달리 자기교정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래서 “인터넷은 국민주권의 실현 및 민주주의의 강화에 유용한 수단인 동시에 ‘기회의 균형성, 투명성, 저비용성의 제고’라는 공직선거법의 목적에 부합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인신공격·비방·흑색선전·허위사실 등의 ‘신속한 유포’는 한국 사회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이 트위터의 폐해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최근 몇 차례 선거에서 젊은 층을 투표소로 이끈 트위터의 강력한 흡인력에 대한 두려움도 깔렸다.

헌재는 인터넷의 자기교정 능력과 함께 제93조 1항을 위반할 때보다 법정형이 높은 공직선거법의 다른 조항이나 형법 등으로 허위사실 유포 등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선거가 코앞인 선거운동 기간에도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을 법으로 허용하면서, 오히려 선거까지 몇 개월이나 남은 시점에서 인터넷을 통해 퍼지는 흑색선전을 걱정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논리다. 선거 조기 과열 우려에 대해서도 “국정수행 대표자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관심과 열정의 표출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헌재는 불과 2년5개월 전인 2009년 7월30일, 같은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다. 당시에는 재판관 8명 가운데 5명이 위헌 의견을 냈으나 위헌 결정 정족수(6명)에 1명이 모자랐다. 그사이 일부 재판관이 퇴임하고 새로 임명되는 변동이 있기는 했지만 현 4기 재판부가 자신들의 임기 안에 동일한 사안의 판단을 뒤집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2009년 합헌 의견을 냈다가 이번에 위헌으로 돌아선 이강국 헌재 소장은 자신의 ‘생각 변화’에 대해 별도의 보충 의견을 달지 않았다. 이번에도 합헌 의견을 낸 이동흡 재판관이나 검찰 출신의 박한철 재판관은 “불과 2년 전에 헌재가 스스로 합헌이라고 판단한 결정을 변경할 만한 사유가 없다”고 했다.

헌재의 결정문 곳곳에는 인터넷을 통한 정치적 의사표현을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넘쳐난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이 법률 조항이 최초로 도입될 당시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매체” “인터넷은 개방성 등을 기본으로 하는 사상의 자유시장에 가장 근접한 매체…”.

“시대정신 반영한 헌법 재판의 진수”

그럴까? ‘사정 변경’은 있었다. 헌재는 꼭 1년 전인 2010년 12월28일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 사건에서 ‘인터넷·스마트폰 시대의 긴급조치’로 불리던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에 대해 위헌 결정했다. 이 조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인터넷 등 전기통신설비를 이용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이를 처벌하는 근거가 됐다. 당시 헌재는 인터넷을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 촉진적인 매체”로 규정한 바 있다. “인터넷에서는 특정 표현에 대한 반론·반박도 실시간으로 가능하다. 허위사실을 표현하더라도 국민의 올바른 정보 획득이 침해되거나 범죄 선동, 국가 질서 교란 등이 발생할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헌법학계 인사는 “헌재 재판부는 과거에도 임기 말년으로 갈수록 ‘눈치’를 보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내놓고는 했다”며 “헌법 제정자들이 당시에 인식하지 못했던 측면을 지금의 시대정신을 반영해 전향적으로 허용한 결정으로 헌법 재판의 진수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여야 정치권은 이번 헌재 결정을 두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대차대조표를 그리며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빡빡한 계산은 그들의 일. 19살 이상의 유권자들과 투표권은 없지만 정치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과 정치에 관심 없지만 그냥 모든 게 불만인 사람들의 손가락이 스마트폰 위에서 바빠졌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 헌법재판소는 불과 2년5개월 전에 합헌 결정했던 동일한 공직선거법 조항(제93조 1항)에 대해 2011년 12월29일 한정위헌 결정을 했다. 인터넷을 통한 정치적 의사표현의 족쇄가 풀렸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유사한 공직선거법 제254조 2항은?

“이번 위헌 결정의 취지를 따라야”

아쉬운 대목도 있다. 사전 선거운동을 처벌하는 공직선거법 제254조 2항에는 선거운동 기간 전에 정보통신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매길 수 있도록 했다. 제93조 1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제254조 2항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나의 범죄를 저질러도 동시에 두 개의 처벌 조항에 걸리는 ‘상상적 경합’이 생기는 데는 공직선거법이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뜯어고친 ‘누더기법’인 탓도 크다.

두 조항의 법정형은 동일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수사기관은 ‘편의’에 따라 한쪽을 택해왔다. 예를 들어 ‘선거 180일 전’이면 제93조 1항을 거는 식이다. 제254조 2항은 ‘선거운동’을 규제하지만 제93조 1항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려는 행위’를 규제한다. 둘의 차이는 사실상 거의 없다. 선관위 기준도, 대법원이나 헌재의 판례도 애매모호하다. 이러다 보니 당사자가 선거운동을 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며 제254조 2항이 아닌 제93조 1항을 적용하는 식이다. 헌재 안팎에서는 “제93조 1항에 대한 한정위헌 취지와 충돌하는 제254조 2항에 대한 판단도 헌재가 함께 해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제254조 2항을 근거로 여전히 인터넷을 통한 정치적 의사표현을 규제하는 것이 유효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이는 모든 국가기관에 기속력을 가지는 헌재 결정의 취지를 뒤트는 행위다. 헌재 관계자는 “규제 일변도의 틀을 바꾸고 유권자들의 알권리를 확대해 대의민주주의에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의 길을 열어주자는 헌재 취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당장 4월 총선을 앞두고 헌재 결정의 취지를 억지로 비껴가는 단속 행위도 결국 ‘위헌’의 연장선에 있다는 얘기다.

선관위는 2003년부터 인터넷상의 선거운동을 상시적으로 허용하자는 취지의 의견을 국회에 내왔다. 선관위 쪽은 헌재 결정이 나온 뒤 “제254조와 상충하기 때문에 국회에서 헌재의 취지를 존중해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상시 허용하는 방안의 입법으로 명확히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은 기득권을 가진 기존 정당과 국회의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했던 공직선거법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명심해야 할 금언이 있다. 선거의 기본 틀은 ‘자유가 원칙, 금지가 예외’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