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방통대군과 한명회

道雨 2012. 2. 2. 12:26

 

 

 

                    방통대군과 한명회 

 

 

조선시대 500년 동안 공신(功臣) 책봉은 태조 때의 개국공신부터 영조 때의 분무공신에 이르기까지 28차례에 이른다.

공신 책봉의 뒤안길에는 언제나 내란, 쿠데타, 반대파 축출 등과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가 있었다.

공신직은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진 전리품이었다.

반면에 외적과의 싸움에서 공을 세운 것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권율 장군 등을 선무공신에 책봉한 것이 고작이다.

조선시대 역대 공신 중 단연 으뜸은 한명회다.

그는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에 참여해 정난공신에 봉해진 것을 비롯해 좌익공신(단종을 폐하고 세조를 추대한 공), 익대공신(남이 장군을 역모로 몰아 죽인 공로), 좌리공신(성종 보필 공로) 등 무려 네 차례나 공신 책봉을 받았다. 그것도 모두 일등 공신이다.

신숙주도 계속해서 한명회와 똑같은 공신직을 받았으나 정난공신이 2등급이어서 한 수 뒤진다.

현 정권의 개국공신 중 한명회에 필적할 만한 사람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다.

야당으로부터 정권을 빼앗아오는 데 기여한 정탈공신,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쫓아낸 연주공신, 언론 탄압으로 정권을 지킨 언탄공신, 무리수를 무릅쓰고 종편을 출범시킨 종편공신 등 방통대군의 공적은 가히 한명회에 버금간다.

정권 보위를 위한 신묘한 책략과 반대편에 대한 무자비한 면모도 닮았다.

한명회는 권력에서 물러나면서 ‘젊어서는 종묘사직을 붙잡았고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네’(靑春扶社稷 白首臥江湖)라는 시를 지어 자신을 합리화했다. 최 전 위원장은 “소문이 진실보다 더 그럴듯하다”는 변명을 남겼다.

 

그러나 시를 남기면 뭐할 것인가.

매월당 김시습은 한명회의 시에서 글자를 하나씩 바꿔 이렇게 조롱했다.

‘젊어서는 종묘사직을 망하게 했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히네’(靑春亡社稷 白首汚江湖).

 

방통대군의 모습이 꼭 그러하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