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벌거벗은 영주 부인

道雨 2012. 2. 16. 12:06

 

 

                 벌거벗은 영주 부인

 

영국 중부에 유서 깊은 도시 코번트리가 있다.

이 도시와 관련된 역사나 전설도 많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고다이바 부인이 나체로 저자 한 바퀴를 돌았다는 설화다.

 

코번트리 시민들은 영주의 가혹한 과세로 고통받았다. 아내인 고다이바 부인은 세금을 감면해주라고 여러 차례 간원했지만 남편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래도 이어지는 아내의 탄원에 지친 남편은 만일 아내가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의 큰길을 통과한다면 요청을 수락한다고 제안했다. 뜻이 그다지 고결하다면 원초의 순백한 상태로 나서보라는 것이었다.

 

설마 그 일을 할까 낸 꾀였지만, 고다이바 부인은 약속을 지킨다는 다짐을 남편에게 받아낸 뒤 포고령을 내렸다. 자신이 그 일을 행하는 동안 모두 창문에 셔터를 걸고 집안에 있으라는 것이었다.

톰이라는 이름의 재단사 하나만이 셔터에 구멍을 뚫고 훔쳐봤다. 그 순간 맹인이 되었다는 전설 속의 그 톰은 관음증 환자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남았다.

결국 남편은 아내와 약속을 지켜 과도한 세금을 금지시켰다 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 전설을 풍요제와 관련한 민간 신앙에 결부시킨다. 또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장 거리에서 이 일이 있었다거나,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참회하기 위해 거리를 걸었던 일이 미화된 것이라고 논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 논란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학자들의 버릇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기록으로는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이야기가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평민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지배자 부인의 따뜻한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레 전해오는 감동에 있을 것이다.

오늘날 나체 시위가 도처에서 비폭력적 저항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도 정신적으로 일맥상통한다.

 

대통령은 할 일이 너무도 많아 비판을 들을 시간이 없다고 옹호해주는 그 아내의 자세와는 너무도 다르기에 더욱 돋보이는 일화다.

 

옛 영어에서 ‘고다이바’는 ‘신이 주신 선물’을 뜻한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