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박희태 돈봉투, '맹탕수사' 황당하다

道雨 2012. 2. 22. 11:52

 

 

 

   ‘부러진 칼’로 시늉만 낸 돈봉투 사건 수사

 

지난 1월 초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을 때 언론과 정치권 등에서는 갖가지 관측과 분석이 쏟아졌다. 그동안 쉬쉬하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느니, 정치권 전체에 쓰나미가 덮칠지 모른다느니, 낡은 정치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등의 얘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어제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이런 기대와 전망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것은 고작 고승덕 의원이 자진신고한 300만원짜리 돈봉투 하나가 전부다. 정치권의 쓰나미는 고사하고 산들바람 수준도 되지 않는다.

낡은 정치 관행에 메스를 대기는커녕 혐의가 드러나도 우기고 버티면 빠져나갈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을 뿐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문을 보면 “노력했으나 확인할 수 없었다”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따위의 변명으로 도배가 돼 있다. 수사 발표문이라기보다는 검찰이 스스로 작성한 ‘무능 및 실력부족 고백서’라고 해야 옳다.

그런데도 검찰은 부끄러워하는 기색조차 없다. 이런 초라한 수사 결과를 내놓고서도 너무나 당당하고 자랑스럽다는 태도여서 검찰 발표를 접하는 사람이 오히려 당혹스럽다.

 

검찰 수사가 이렇다 보니 돈봉투를 받은 사람은 있는데 살포를 기획·지시한 사람은 증발해버렸다. 돈의 출처와 규모는 고사하고, 안병용 새누리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이 구의원들에게 금품살포를 지시하면서 건넨 2000만원의 출처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이 정도면 검찰의 고의적인 직무유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고승덕 의원이 증언한 ‘쇼핑백 크기의 가방에 가득 들어 있던 돈봉투’가 어디로 갔는지는 애초부터 검찰의 관심사항도 아니었던 것 같다.

 

이번 사건은 몸통은 놓아두고 깃털만 건드린 수사의 전형으로 길이 기록될 듯하다.

박희태 국회의장,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사건의 핵심 인물들은 모두 불구속 기소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끝났다.

“공직을 사퇴한 점 등을 고려한 결과”라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평소의 서슬 퍼런 원칙은 어디론가 실종돼 버리고 따스한 온정이 넘친다. 결국 말단 심부름꾼 노릇을 하다 구속된 안병용씨만 불쌍한 신세가 됐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은 언제나 야당한테는 날선 칼이지만 여당한테는 ‘부러진 칼’이었다.

이 명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또다시 증명됐다.

잇따라 터져나오는 현 정권의 각종 부정부패 의혹 수사를 이런 검찰에 계속 맡겨야 좋을지 참으로 회의가 들 뿐이다.

 

[ 2012. 2. 22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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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희태 돈봉투, '맹탕수사' 황당하다

 

돈봉투 수사 '봐주기 논란' ... 자금 출처도 오리무중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지역구 구의원들에게 돈 봉투를 돌리라고 지시한 혐의로 16일 밤 구속된 안병용 한나라당 서울 은평갑 당원협의회 위원장이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와 호송차에 타고 있다.
ⓒ 연합뉴스
돈봉투
 

'박희태 돈봉투'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안병용(54) 새누리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은 크게 억울해 하고 있다. 2008년 7월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자신의 지역구 구의원 5명에게 2000만 원을 나눠주면서 서울 지역 30개 당협의 사무국장들에게 50만 원씩 전달하라고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던 그는 20일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뒤 보석을 신청했다.

 

그의 보석신청 사유는 "다른 관련자와의 형평성 문제 등"이라고 한다. 그는 검찰이 2008년 전대 당시 후보였던 박희태 국회의장과 박 후보 캠프 상황실장이던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불구속기소할 움직임을 보이자, 이번 사건의 유일한 구속수감자로서 사법처리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실제로 이후 과정은 그의 우려대로 전개됐다.

 

검찰은 21일 박 의장과 김 전 수석을 정당법 50조(당대표경선등의 매수 및 이해유도죄) 위반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현직 국회의장 기소는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지만, '유력자 봐주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를 의식한듯 검찰은 박 의장과 김 전 수석을 불구속기소하면서 그 사유 중 하나로 '공직사퇴'를 제시했다.

 

'불구속수사'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이는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경우에 적용되어야 한다. 안병용 위원장은 구의원을 회유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안 위원장의 경우처럼, 박 의장과 김 전 수석도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흔적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고명진 "허위진술 강요받는 상황"이라 했는데, 증거인멸 우려 없다?

 

박 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씨의 '고백문'은 그 유력한 증거다. 그는 검찰 진술에서 "고승덕 의원에게 돌려받은 300만 원은 내가 썼고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고백문에서는 "김효재 상황실장에게 보고했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진실을 감추기 위해 시작된 거짓말이 하루하루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이로 인해 이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허위진술을 강요받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라고 썼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윗선'의 지시 또는 압력에 의해 허위진술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박희태 캠프'의 재정·조직 담당자였던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이 고씨에 대한 검찰수사가 시작된 시점에서 고명진씨를 접촉하고, 해외순방중이던 박 전 의장측과 여러 차례 국제통화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심지어 검찰이 이들에게 증거인멸의 시간을 줬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고 의원과 대화 한 번 나눈 적이 없다"며 관련 의혹을 전면부인해 온 김 전 수석을 고명진씨의 고백이 나온 7일 뒤에야 소환조사했기 때문이다.

 

안병용은 지시자라면서 박희태는 지시자 확정도 못 해

 

  
돈봉투 파문으로 물의를 일의킨 박희태 국회의장.
ⓒ 남소연
박희태

검찰의 실체규명 의지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도 여러 가지다.

 

고명진씨는 고백문에서 "검찰은 이미 진실을 감추기에는 너무나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이 조사과정에서 거짓말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결과는 이에 턱없이 못 미친다.

 

가령 '고승덕의 300만원 돈봉투'가 박 의장 돈이라는 사실은 밝혀냈지만 안병용이 구의원들에게 전달한 2천만원은 누구 돈인지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 검찰의 발표다. 또 박 의장과 김 전 수석을 지시자로 확정하지도 못했다. 결국 지시자에 비해 처벌이 가벼운 정당법 50조 2항을 두 사람에게 적용했다. 반면 안병용 위원장은 지시자 혐의(50조 1항)로 구속됐다.

 

이번 사건의 또다른 핵심 내용은 고승덕 의원 외에 '박희태 돈봉투'를 받은 다른 새누리당 의원들이 누구냐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에 대해 침묵했다.

 

이번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정점식 2차장은 이에 대한 질문에 "다른 의원들에게도 전달됐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고승덕 의원에게 돈봉투를 전달한) '뿔테남' 곽아무개씨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고, 박 의장 계좌에서도 뭉칫돈이 발견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고승덕 의원의 여비서 이아무개씨가 "노란색 봉투가 잔뜩 들어있는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고 지목한, 핵심인물인 곽씨에 대한 조사는 단 한 번 그것도 3시간에 그쳤다. 진술서를 확인하는 시간 등을 빼면 실제로는 2시간 남짓 조사한 셈이다.

 

사건의 또 다른 핵심인 '박희태 돈봉투'의 자금출처와 자금 조성 인물에 대해서도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방산업체 1억 원, 마이너스 통장 1억5천만 원, 라미드그룹 수임료라는 2억원 등이 드러났지만 실체가 밝혀진 것은 없다.

 

검찰 "환부를 도려내는 스마트한 수사로 신속처리했다" 자평

 

민주당 MB 정권 비리 및 불법비자금 진상조사특위의 백혜련 변호사(전 대구지검 수석검사)는 "모든 사건은 머리가 중요한데 머리는 불구속하고 손발만 구속했다는 점에서 공정성을 상실한 수사"라며 "수임료라는 등의 수상한 자금이 포착됐기 때문에 정당법뿐 아니라 정치자금법 수사로 확대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뿔테남' 곽아무개씨를 불과 한 번 조사했다는 것은 너무 허술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수사결과가 빈약한 이유에 대해 한상대 검찰총장-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이상호 공안1부장이 김 전 수석과 같은 고려대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검찰총장의 말씀처럼 환부를 도려내는 스마트한 수사, 국민적 관심사안을 신속히 종결 처리했다"(정점식 2차장)는 것이 검찰의 자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