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배워야 할 것
유럽 위기 뒤엔 무역불균형이 있다. 그리고 그 뒤엔 자유무역이 있다. 한국은 그 길을 가지 못해 안달이다
외신에서 전해지는 아테네 거리의 시위 양상은 웬만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살기 힘들어 벌어지는 참상이다.
그리스 경제는 말 그대로 참혹하다. 부모들은 양육할 돈이 없어 아이들을 버린다. 자살률도 높아지고 있다. 전체 기업의 25%가 문을 닫았으니 실업률은 말할 필요가 없다.
대체 왜 이 지경이 된 걸까.
대부분은 그리스의 무분별한 씀씀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혹자는 그리스인의 천성적 낙관주의를 꼽기도 한다.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나 정답은 아니다. 현재 유럽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나라가 그리스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 전에는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가, 또 그 전엔 동유럽의 여러 나라가 문제가 되었다. 이들 나라 모두가 씀씀이가 헤펐다거나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국민성을 가졌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사실 유럽은 독일 등 몇 나라를 빼곤 거의 대부분 경제적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동유럽·남유럽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른바 선진 경제대국인 영국·프랑스·이탈리아 사정도 그리 밝지만은 않다.
이유는 뭘까.
흔히 몇몇 나라의 재정적자나 국가부채가 유럽 위기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이것은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징후일 뿐이다.
원인은 바로 무역불균형에 있다. 지속적 무역불균형으로 적자국의 채무는 늘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례해 흑자국의 대외채권은 늘었다. 무역불균형이 자본불균형을 부른 것이다. 작금의 유럽 위기는 이런 불균형이 임계치에 달했기에 발생하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균형이 생긴 이유는 뭘까. 그것은 바로 자유무역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지구촌에서 자유무역이 가장 선진적으로 구체화된 곳이다. 이제 그 치명적인 부작용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자유무역은 달콤하게 들리지만 독을 품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강자가 약자를 합법적으로 유린하는 ‘승자 독식의 장’이란 사실이다.
자유무역은 장하준 교수가 말했듯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사다리 걷어차기’ 수단에 불과하다.
개인 간,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자유경쟁이 양극화를 만들듯 국가 간의 자유경쟁 역시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톰슨 로이터’사의 최근 자료를 보면, 유럽 주요국의 산업생산 불균형 상태가 2000년 이후에 얼마나 심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비교 국가 중 산업생산이 2000년 기준을 넘은 나라는 독일이 유일하다. 프랑스·영국·이탈리아·스페인 모두 산업생산이 2000년보다 오히려 줄었다.
이게 바로 자유무역의 현주소이다.
자유무역은 허약한 상대국의 부를 쓸어 모아 한 곳에 집중시킨다. 바로 최강자의 곳간이다.
당연히 약한 나라의 부는 파괴된다. 산업기반마저 붕괴된다.
유럽 위기 뒤엔 무역불균형이 있다. 그리고 그 뒤엔 자유무역이 있다. 자유무역은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강자를 더욱 강자로, 약자를 더욱 약자로 만드는 불균형의 원천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 길을 가지 못해 안달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에 이어 한-중 자유무역이 추진되고 있다. 모두 최강자들과 협정이다.
정말 이들과의 자유 대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건가.
한국이 정말 자유무역의 승자가 되려면 산업 경쟁력이 탁월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의 경쟁력은 소수 대기업에 편중되어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정부의 일방적 지원이 끊기면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건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짓이다.
우리가 그리스와 유럽에서 배워야 할 게 있다면 바로 자유무역의 폐해를 똑바로 인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유무역을 누가 무엇을 위해 주도하고 강제하는지를 살펴야 할 때다.
자유무역은 강자의 무기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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