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양심선언’ 검사는 옷 벗고, ‘청탁전화’ 판사는 숨나

道雨 2012. 3. 3. 10:24

 

 

‘양심선언’ 검사는 옷 벗고, ‘청탁전화’ 판사는 숨나

 

 

 

나경원 전 한나라당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한테서 기소청탁을 받은 당사자로 알려진 박은정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가 어제 사의를 표명했다.

법무부는 일단 사표를 반려했으나 돌아가는 상황이 참으로 기묘하다. 진실을 추구한 검사는 옷을 벗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고, 청탁 의혹을 받고 있는 판사는 보호벽 속에 숨어 있으니 본말이 뒤집혀도 한참 뒤집혔다.

더구나 박 검사가 청탁전화 사실을 진술한 내용이 녹취돼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으니 검찰과 법원 모두 더이상 침묵만 지키고 있어선 안 된다.

 

엊그제 나 전 의원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당시 남편이 기소에서 재판 때까지 미국 유학 중이었고, 네티즌 주장이 허위임이 분명해 굳이 검사에게 기소를 청탁할 필요가 없었다는 등 5가지 이유를 들어 청탁 주장을 부인했다.

그러나 남편이 박 검사에게 전화한 것은 사실이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한 채 “청탁한 적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와 나 전 의원 쪽이 비공식적으로 설명하는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김 부장판사가 박 검사에게 전화를 건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는 고소장이 접수돼 수사가 진행되던 2005년부터 이듬해 2월까지 한국에 있었다.

또 “봉화 피워 소통하냐? 지금이 조선시대냐?”라는 트위터 사용자의 지적처럼 미국 유학 갔다고 전화를 못 하는 건 아니다.

박 검사가 공식 확인은 않고 있으나 검찰 주변에서도 통화는 기정사실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판사가 부인 사건으로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타인의 분쟁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한 법관윤리강령 위반에 해당한다.

그러나 서기호 전 판사의 말처럼 판사가 연수원 기수가 낮은 검사에게 전화를 했다면, 그런 행위 자체가 압력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같은 관할에 속한 판사와 검사 사이일 경우 단순한 윤리강령 위반 수준을 넘을 수도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미 박 검사가 ‘압력’에 가까운 것으로 진술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검찰과 법원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검찰은 사안의 본질인 청탁이나 압력 여부보다 <나는 꼼수다>에 박 검사 얘기가 흘러나간 경위를 캐는 데 더 골몰하는 모양새다.

법원 역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묵묵부답이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법이고, 이미 그런 시점도 지났다. 특히 그렇게 판사의 품위를 강조하던 대법원의 침묵은 이해하기 힘들다.

 

[ 2012. 3. 3  한겨레 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