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휴대폰 검열 직권조사 거부한 인권위
국가인권위가 군의 이른바 ‘종북 앱’ 삭제 지시 및 제보자 색출작업과 관련한 직권조사 요청을 거부해 또다시 지탄의 대상이 됐다.
인권위는 6군단 6포병여단이 앱 삭제 지시를 외부에 유출한 제보자를 색출한다며 간부 800여명의 휴대전화를 무더기로 강제검열한 행위가 명백한 인권침해라며 ‘군인권센터’가 요청한 직권조사 요청을 거부했다. “직권조사란 진정이 없는 경우에 실시하는 것인데 이미 접수된 진정사건으로 조사할 수 있어 별도의 직권조사는 하지 않는다”는 게 거부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책임회피용 핑계에 불과하며 사실관계와도 어긋난다.
인권위법 30조 3항은 ‘별도 진정이 없더라도 인권침해가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그 내용이 중대하다고 인정할 때는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인권위가 비록 직권조사 요청을 받기 앞서 6포병여단의 앱 삭제 지시 사건에 대한 진정을 먼저 접수했다고 하더라도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얼마든지 직권조사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제까지 실시된 직권조사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진정 사건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결국 인권위의 설명은 뜨거운 감자를 피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한 셈이다. 게다가 인권위법에 직권조사라는 조항을 따로 두어 중대 사건을 조사하도록 한 입법취지에 비춰 봐도 인권위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인권위가 인권침해 사건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무관심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6포병여단이 제보자를 색출한다며 벌인 인권침해 행위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모든 간부들로부터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제출받은 것은 물론이고 스마트폰까지 수거해 삭제된 파일들을 복구해 들여다보았다.
형식상 검열에 동의하는 서명을 받았다고 하지만 위압적인 군의 분위기에 비춰 볼 때 이는 단순한 인권침해를 넘어 형법상의 강요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갓 결혼한 간부의 스마트폰에서 부부 사이에나 공유할 민망한 사진까지 나왔다는 이야기마저 나돌 정도이니 군의 인권침해 행위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인권위는 느긋하게 서면조사 타령이나 하면서 “신속하고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 과연 이처럼 인권에 무감각한 인권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의 횡포에 맞서 힘없는 사람들의 인권을 지켜주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의 눈치나 살피며 인권침해 행위에 면죄부나 주는 인권위라면 오히려 해체하는 게 낫다.
[ 2012. 3. 5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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