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정치, 죽임의 정치
집권당의 성향과 자살·살인율 사이에 명백한 인과관계가 있다
근대국가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는 것이다. 이때 ‘폭력’은 국가가 공동체 구성원들로부터 법적 정당성을 획득한 물리적 수단을 말한다. 군대, 경찰, 사법체계, 행정의 강제성 등이 거기에 해당한다. 18세기 유럽의 시민혁명은 절대왕정과 신분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정(혹은 입헌군주제)과 대의민주주의를 세웠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이들도 생겨났다.
독일의 사상가 막스 베버는 직업정치인이 지녀야 할 덕목으로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을 꼽았다.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은 <소명(직업)으로서의 정치>(Politik als Beruf)에서다. ‘베루프’(Beruf)라는 독일어 낱말은 소환, 소명, 직업, 직무 등의 뜻을 갖고 있다. 단순히 밥벌이 수단이 아니라 ‘사명 의식을 지닌 천직’이다.
베버는 말한다.
“권력본능은 정치가에게는 정상적 자질의 하나다. 그러나 이런 권력 추구가 ‘대의’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객관성을 결여한 자기도취를 목표로 하는 순간, 그의 직업이 갖는 신성한 정신에 대한 죄악이 시작된다.”
정치가 끊임없는 긴장과 성찰, 고도의 윤리의식을 요구하는 이유도 “정치가는 모든 폭력/강권력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되”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가 국가 공권력을 공공선과 민의를 거슬러 비민주적으로 행사하는 순간, 그는 한낱 깡패나 독재자일 뿐이다.
최근 1년 새 반독재 시위대 6500여명을 학살한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은 그 최악의 전형을 보여준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자살과 살인에 관한 통계를 살펴보다 충격적인 발견을 했다.
보수 공화당이 집권한 시기에는 ‘폭력치사’(자살과 살인을 아우르는 개념)가 최고점을 향해 가파르게 치솟았다. 반면, 진보 성향의 민주당 집권 시기에는 급격히 줄었다. 이런 추세는 107년 동안 변함없이 뚜렷하게 되풀이됐다.
길리건은 그 통계적 의미를 다각도로 검증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집권 정당과 폭력치사율 사이에 명백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빈곤, 불평등, 실업이 증가하면 자살과 살인이 증가한다. 권위주의적 보수정당이 추구하는 사회·경제 정책은 불평등을 증가시키고, 사람들을 강력한 수치심과 모욕감에 노출시킨다.”(<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이런 현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 국가 중 자살률이 단연 최고인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된다.
최신 통계를 보면, 2010년(이명박 정부 집권 3년차) 한 해에만 1만556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3분에 1명꼴이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31.2명으로, 김영삼 정부 첫해인 1993년 9.4명보다 3.3배나 늘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나라 자살률은 1998~2000년(김대중 정부)과 2005~2006년(노무현 정부)에만 전년 대비 감소세를 보였을 뿐, 나머지 기간 내내 급증했다.
길리건은 단언한다.
“다른 정치인들보다 더 위험한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거나 좋은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이 죽음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다시 한번 중대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다음달 총선, 12월엔 대선이다.
세상의 어느 정치인도 “모든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 “소수 특권층을 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위 1%를 대변하는 정치세력과 나머지 99%를 위하는 정치세력이 같을 수는 없다. 인물과 정책, 그 정당의 집권 시절이 증언한다.
당신은 상위 1%에 속하는가? 그렇다면 ‘1% 정당’을 지지하는 게 당연하다. 반대로, 당신이 99%에 속한다면 그에 걸맞은 정당을 지지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조일준 국제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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