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의 전원 중단은 중대 사고로서 안전조처를 하고 곧바로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김종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은 사고 한달이 넘은 지난 11일 새로 부임한 발전소장에게서 처음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한수원은 사고 당시의 발전소장이 원전 안전을 둘러싼 논란이 확대될 것을 우려해 보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사고가 지난달 9일 밤에 일어났는데, 그날 마침 지식경제부와 한수원이 원전에 절대 사고가 있어서는 안 되며 문제가 발생하면 작업자는 물론 책임자까지 엄벌하겠다는 안전대책을 발표한 까닭이라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1주년을 맞아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데다 핵안보정상회의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무턱대고 ‘고장 제로’를 만들라고 몰아붙인 무리수가 당일 현장에서 사고를 지켜본 직원이 수십명 됐지만 한달 넘게 비밀에 부쳐지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낳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본부장과 소장이 정기인사라고는 하지만 우연찮게도 동시에 바뀌었다. 관련자 모두가 한통속이 돼 사고를 은폐·축소하는 일에 가담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사고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끝끝내 원전 안전에는 문제가 없는 상태였다고 강변했다.
바로 이런 태도 때문에 국민들이 원전 안전에 대한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사고 현장에서 규정대로 대처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관리 책임이 있는 한수원의 경직된 조직문화와 원전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고 든 감독당국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원전 확대와 원전 수출 등 이른바 원자력 르네상스 정책을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에 원전 사고 발생은 큰 걸림돌이다. 그러므로 사고가 발생해도 쉬쉬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안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며 만든 원자력안전위원회마저 친원전 인사에게 위원장을 맡기지 않았던가.
따라서 이번 사건의 책임소재를 파헤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하는 것은 물론이고, 원전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묻지마 정책목표, 그리고 특정 세력의 이해와 비밀주의의 고리를 끊어야 최소한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게 자명해졌다.
특히 고리 1호기는 설계수명이 2007년에 끝나고 2017년까지 재가동에 들어간 노후 원전이다. 부산권 주민 수백만명의 안전을 위해서도 원전 재가동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