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영방송 저널리즘이 위기에 빠졌다.
지난 1월 말, 공정한 방송을 하지 못한 부끄러운 자화상에 대한 자기반성으로 시작된 <문화방송>(MBC) 기자들의 제작거부는 문화방송 전체 구성원의 반성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반성은 <한국방송>(KBS) 구성원들의 뼈저린 반성과 <와이티엔>(YTN)의 파업까지 불러왔다. 사상 유례없는 방송계 대파업이 일어난 것이다.
이번 세 방송사의 공동파업은 정권에 빼앗긴 공영방송을 되찾아 공정한 방송을 복원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노사갈등이 주요 원인이었던 다른 일반 사업장의 파업과는 그 성격이 분명 다르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이 대통령은 자신의 특보 출신인 구본홍씨를 와이티엔 사장으로 임명하고, 한국방송 사장에 역시 자신의 특보 출신인 김인규씨를 앉혔다. 그리고 2010년에는 자신의 선거 캠프 출신인 김재철씨를 문화방송 사장에 임명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 들어 임명된 세 방송사 사장들은 모두 정권에 의해 투하된 낙하산 인사들로, 이들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려 노력하기보다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정권 편들기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들은 사장에 임명된 뒤 방송사 조직과 보도·제작 라인을 장악하고, 보도내용 통제를 통해 현 정권에 불리하거나 비판적인 내용의 방송 제작을 억압하고, 정권 홍보성 방송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는 조직원들은 가차없이 징계와 해임을 통해 처벌했다.
결국,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이 낙하산 사장들에 의해 감시와 견제의 대상인 정치권력을 홍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며 정치권력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된 것이다.
즉, 방송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구실 중 하나인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 그리고 비판 기능이 우리나라 공영방송에서 사라진 것이다.
실례로 최근 문화방송의 대표적인 시사프로그램인 <피디수첩> 제작진은 국외취재까지 마친 ‘한-미 에프티에이’ 편이 경영진의 압력에 의해 3주째 방송되지 못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담당 부장이 한-미 에프티에이가 정치적 이슈라는 이유로 담당 피디에게 취재 중단을 지시하고, 담당 피디가 이에 불복하고 취재를 마치자 방송 예정일이 3주나 지난 지금까지 방송을 내보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공영방송이라면 당연히 방송의 주인인 국민의 편에서 한국 사회 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낙하산 사장들이 장악한 방송사들은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정권에 비판적인 내용은 다루지 않는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방송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이들 방송사에서 진정한 방송 저널리즘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올바른 방송 저널리즘은 방송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여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할 수 있을 때 성취되는 것이다.
군부독재 시절을 지나 그나마 힘겹게 지켜왔던 공영방송의 저널리즘은 현 정부 들어 퇴보를 거듭하더니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기 희미할 정도로 왜곡됐다.
최근 방송 대파업은 이처럼 친정부 성향의 사장들에 의해 변질되고 찌그러진 방송 저널리즘을 바로잡기 위한 방송쟁이들의 양심선언이고 투쟁이다.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을 정권의 통제에서 다시 국민의 품으로 되돌려 올바른 방송 저널리즘을 회복하는 것이 이번 방송 대파업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이번 방송 대파업을 통해 왜곡된 방송 저널리즘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지지가 절실하다.
현 정권이 자신들을 자를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버티고 있는 방송사 사장들을 물러나게 할 수 있는 힘도 국민들로부터 나온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은 여론을 가장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거의 계절에는 그 영향력이 훨씬 커진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