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제주 4.3’ 사건은 국가권력이 자행한 민간인 ‘제노사이드’

道雨 2012. 4. 3. 12:13

 

‘제주 4.3’ 사건은 국가권력이 자행한 민간인 ‘제노사이드’

                                                                                          (서프라이즈 / 耽讀 / 2012-04-03)

 


사실을 기록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학자와 개별 사건, 역사관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한 사건을 두고 이토록 첨예한 인식이 있는지 의아하다. 올해 4월 3일은 제주 4·3사건(이하 4·3사건) 64주년이다. 조금씩 4·3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있는 이때 몇 년 전 뉴라이트가 만든 대안 교과서는 이 사건을 남로당이 일으킨 무장반란이라고 기술했다. 4·3사건을 바라보는 두 인식을 먼저 살펴보자.

 

“이 법은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1조(목적))

“제주 4·3 사건은 남로당이 일으킨 무장반란, 북한 김일성의 국토 완정론 노선에 따라 일어난 것” (대안교과서 4·3사건에 관한 서술 중 일부분)

대한민국 국회가 특별법을 제정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공포한 법과 뉴라이트가 펴낸 대안교과서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 만약 뉴라이트가 4·3사건을 서술한 부분이 정말 맞는다면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는 공산혁명을 주도한 반란자들을 명예 회복시키는 것이며, 스스로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게 된다.


4·3은 제노사이드

과연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는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고, 반란자들을 명예회복시키고자 했을까? ‘제주 4·3 사건 진상보고서’로 발표된 4·3 진상규명 과정에서 밝혀진 사건 전개 과정을 살피면 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4·3 사건 진상보고서는 1948년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국제협약에 근거하여 4·3 사건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1948년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국제협약에서, 제노사이드는 유엔의 정신과 목적에 위배되고, 문명세계에 의해서 단죄되어야 하는 국제법상 범죄임을 명시했다. 1949년 제네바 협정은 전시(戰時)에서도 민간인에 대해서 △고의적인 살인 △고문 등 비인간적 행위 △고의적인 괴롭힘이나 신체 상해 △군사적 목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대량 파괴와 약탈 등을 금하도록 규정했다. 더 나아가 모든 재판상의 보장을 부여하는 재판에 의하지 않은 판결 및 형의 집행을 인정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1948년 제주섬에는 이런 국제법이 요구하는, 문명사회의 기본원칙이 무시되었다. 특히 법을 지켜야 할 국가공권력이 법을 어기면서 민간인들을 살상하기도 했다. (제주 4·3 사건 진상보고서)

4·3 사건이 단순히 공산반란, 공산폭동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민간인을 집단학살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국가공권력이 인민을 보호하고 지켜야 했지만 1948년 제주섬에서는 국가권력이 오히려 인민을 학살했다. 제주섬에서 문명사회 기본원칙이 무시되었다는 보고서에 포함된 희생자 숫자를 보면 이 사건이 얼마나 잔인한지 판단할 수 있다.

▲ 제주4.3사건 당시 군인 수십 명이 총살당해 암매장된 장소로 알려진 제주시 화북동 별도봉 일본군 진지동굴 일대에서 발굴돼 2007년 3월 21일 공개된 4.3 희생자 유해 <뉴시스>

4·3사건에 의한 사망, 실종 등 희생자 숫자는 정확하게 조사되지 않았다. 4·3사건 진상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 숫자는 14,028명이지만 25,000~30,0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10세 이하 어린이(5.8%·814명)와 61세 이상 노인(6.1%·860명)이 전체 희생자의 11.9%를 차지하고 있고, 여성 희생자도(21.3%·2,985명) 많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진압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참히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4·3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한 것이 단순한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4·3, 어린이 희생자 11.9% 어린이가 빨갱인가?

1948년 제주 4·3 사건에는 인간이 없었다. 오로지 학살과 증오만 존재했다. 죄 없이 그들은 학살당했다. 인간에 대한 존중, 생명에 대한 경외감은 어디에도 없었다. ‘빨갱이 사냥’이란 이름하에 희생된 제주인민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었다. 아니다. 이 시대는 동물도 기본권을 인정받는 시대이므로 오로지 사냥감에 불과했다.

▲ EBS <지식e채널>

만약 4·3 사건을 진압했던 이들이 존엄한 인간에 대한 예의와 성찰, 민족 공동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졌더라면 이런 제노사이드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또다시 제주 4·3 사건은 좌파와 공산반란으로 규정되어 사냥감이 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폭력에 희생된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위령제에 참여했지만 이명박 정부들어 무장반란으로 규정된 교과서가 대한민국 정체성을 회복한다는 논리로 부활하고 있다.

“공의와 진실만이 강물처럼”은 아닐지라도 “증오와 사상 사냥이 강물처럼” 흐르는 시대가 도래해서는 안 된다. 이념과 사상은 절대진리가 아니다. 하지만, 인간 존엄성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 64년 전 국가 권력이 무자비하게 인간 존엄성을 해한 일을 회개는커녕 또다시 이념과 사상으로 정죄하는 일은 제노사이드다. 제노사이드에는 총칼만으로 행하는 학살이 아니라 이념과 사상도 포함된다.

제주 4·3 사건 64주년에 즈음하여 우리는 또다시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제노사이드를 다시 부활하는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제주 4·3 사건의 제노사이드는 과거형으로 끝나야 하며, 현재진행형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진행형은 오직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희생자에 대한 배상에만 적용되어야 한다.

한국 지식인 사회가 제주 4.3 사건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밝힌 것은 현기영 씨 ‘순이삼촌’이다. 한국 지식인 사회는 ‘순이삼촌’이 나올 때까지 제주 4.3 사건은 공산당이 행한 ‘폭동’으로 규정하는 일에 동참했었다. ‘순이삼촌’은 이 시각을 뒤바꾼 소설이다.


4·3은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

이미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김경률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은 2005년 4월 3일 개봉되었다. <끝나지 않은 세월>은  어린 시절 4.3을 겪었던 주인공 형민이의 가족 이야기이다. 1948년 당시 10살인 어린 형민이 시각에서 보는 4.3, 그리고 그 4.3을 겪으면서 받은 상처와 아픔들이 50여 년이라는 시간을 훨쩍 뛰어넘은 2005년 현실에서도 아직 치유되지 않고 있는 상황을 그린 영화다.

김경률 감독은 시사회에서 기자들이 <끝나지 않은 세월>에서 무엇을 담고 싶었는지 물었을 때 이렇게 답했다.

“4.3을 겪은 어르신들은 아직도 상처가 남아 있다. 쉽게 풀리지 않은 현실이다. 나중에 평가를 보면 알겠지만 잘못된 역사,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4.3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의 책임자라는 차원에서 유족과 도민들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4.3을 겪은 어르신들은 누가 자신들의 형제들을 밀고하고, 죽였는지, 이웃집에 있는 어느 어느 경찰이 마을주민들을 괴롭혔는지 다 알고 있다. 그 당시에는 설령 시대적,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가해자들은 이제는 인간적인 양심에서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화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냐. 그들(가해자)은 아직도 침묵으로 입을 다물고 있다.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역사적 소명 앞에서 아무런 대답을 않는다는 자체가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이 될 수밖에 없다. 4.3이 이제 완전히 해결되기 위해서는 일제 과거사 청산도 마찬가지이지만 지나간 역사에서 잘못이 있다면 엎드려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영화가 상생을 그리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분위기를 그리고 싶었다.

또 하나는 역사란 게 교과서도 있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역사도 중요하다. 당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 아픔을 손자 손녀들에게 이야기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도 진실된 이야기를 전해주는 게 중요하다. 비록 자신의 아픈 상처이긴 하지만 그래도 밑바닥에 있는 잘못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제주의소리>-2005년 03월 25일)

‘끝나지 않은 세월’은 암울했던, 참혹했던 우리 역사를 조금이나마 드러내고자 했다.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역사에서 무엇을 배운다고 하지만 어떤 이들은 역사에서 전혀 배우지 못한다. 보수단체는 4.3 사건 특별법과 평화공원이 군인과 경찰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폐지하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진상조사가 밝혀지면서 군인과 경찰이 잔혹한 방법으로 인민을 학살한 것이 드러나고 있다. 국가 공권력은 절대선이 아니다. 우리는 국가 공권력이 부당하게 사용되는 일을 너무 많이 경험했다. 군부독재 시절에 행사되었던 국가 공권력은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보다는 특정 개인을 위하여 행사된 경우가 많았다.

국가 공권력이 부당하게 행사되면 참혹한 비극이 발생한다. 국가는 언제든지 인민의 권리를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국가 권력을 진 사람들이 누구이든지 공권력을 부당하게 집행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그러기에 이를 통제하고 제어하는 기능이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주의 국가가 삼권분립을 지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수단체는 4.3 사건 진상규명과 평화공원 건립이 국가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염려하지만 전혀 염려할 사안이 아니다. 진실을 밝혀 드러내고 잘못 행사된 국가 공권력을 사과하는 것은 공권력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게 할 것이다.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4·3 사과해

진실을 감추는 길은 오히려 공권력을 더 불신하게 한다. 참고로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4월 3일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 추도사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사과했다.

“무력충돌과 진압의 과정에서 국가권력이 불법하게 행사되었던 잘못에 대해 제주도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자랑스런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랬을 때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보되고, 그 위에서 우리 국민들이 함께 상생하고 통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耽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