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김용민을 위한 변명

道雨 2012. 4. 7. 11:04

 

 

 


                      김용민을 위한 변명

                                                   

                                                                                  (민중의소리 / 이정무 / 2012-04-06)


김용민의 과거 발언이 연일 신문의 헤드라인을 채우고 있다. 국회의원이라는 직무는 아주 중요하고 따라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품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지도층의 품격을 말하는 이유는 결코 그들이 인격적으로 원숙하여 평범한 민초들의 사표(師表)가 되기를 기대해서가 아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아본 사람이라면 그런 기대는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품격을 요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지도층이라는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치러야 할 대가를 회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테면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측근들이 저지른 불법적 행동에 눈감고, 이를 적극적으로 은폐하며, 끝내는 이를 고발한 이들에게 ‘그렇다면 너는 깨끗하냐’고 호통을 치기 때문에 우리는 가급적이면 그럴 가능성이 적은 ‘도덕적인 지도자’를 찾아 헤맨다.

다시 김용민으로 돌아와 보자. 김용민의 잘못이 마치 청와대에 앉은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권력을 이용한 것이었다든가, 과거에 한 옳지 못한 발언들에 지금도 변명과 회피로 일관한다면 누구도 그를 보호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에게 당장, 유권자의 심판도 받지 말고, 스스로를 심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그는 지금 대가를 치르는 중인데, 그 대가가 얼마가 되어야 할지에 대해선 지금으로서는 유권자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같은 편이니까 봐준다

이런 주장에는 당연히 두 가지의 반박이 따라올 것이다. 하나는 ‘같은 편이니까 봐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편을 위해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같은 편을 위해서 물러나라’는 것에 대해서는 그 이익의 균형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가 물러난다고 해서 무엇이 좋아질지, 물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무엇이 나빠질지 솔직히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같은 편이니까 봐준다’는 말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같은 편’으로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를 24시간 스토킹해서 얻은 검증결과는 아니겠지만,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이런저런 판단을 내리고 그것이 종합되어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갖게 된다. 김용민의 경우에도 그렇다.

김용민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는 ‘잡놈’이었고, ‘잡놈’의 말과 행동에 열광한 ‘같은 편’ 덕분에 후보가 되었다. 김용민이 어려서부터 고위 공직자가 될 준비를 했던 엘리트가 아니었다는 건 어차피 다들 알고 있었던 일이 아닌가. 그에 대해 ‘같은 편’이라는 믿음을 철회하려면 그가 ‘잡놈’답지 않게 치밀하게 군중을 속이고, 자신의 행동을 아름답게 분칠하면서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잡놈’답지 않게 거짓 눈물로 참회의 연기를 하고 있어서, 앞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면 더 나쁜 짓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는 심증이라도 있어야 한다.

만약 그의 잘못이 더 이상 같은 편이 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그러면 같은 편이 아니니까 봐줄 필요도 없다. 반대로 그가 자신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백함으로써 같은 편에 남아 있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지금 내리는 비는 같이 맞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먼 길을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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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쫄지마! 김용민, 씨바!”

또 발동한 진보진영의 도덕성 콤플렉스
강기석 | 2012-04-06 14:53:3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

솔직히 나도 젊었을 때는 욕 좀 하고 살았다. 같잖은 상황에 맞부딪칠 때마다 논리적·이성적 판단에 앞서 욕부터 튀어나왔다.

그때는 내 주변 친구들도 거의 나만큼 욕을 잘했다. 우리가 특히 성정이 포악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수양이 좀 부족했을 수는 있지만 그보다는 젊은 객기에서 “거친 것이 사내답다”는 착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거의 욕을 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점잖은 사람’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다. 내가 한때 욕 잘했었다는 것을 잘 아는 친구들·동료들도 지금은 그 사실을 거의 잊어 먹었다. 자기들도 지금은 욕을 하지 않는다.

 

결국 세월이 해결해 준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이를 먹는 동안 음으로 양으로 수양이 쌓이기도 했을 것이고, 욕으로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으로 눈치챘기 때문일 것이다. 늙어서도 함부로 욕을 내뱉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 이상 사내답기는커녕, 세상에 못난 찌질이 영감으로 보일 뿐이다.


 

청춘이니까 용서되는 것, 노인이니까 눈살 찌푸려지는 것

 

#2.

나는 나이 70이 넘으면 내 피선거권을 두고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을 것이며, 75세가 되면 선거권도 행사하지 않겠다는 나만의 결심을 아주 오래전에 했다. 잘해야 10년, 더 잘하면 20년을 살 나의 결정보다는 40년, 50년을 더 살 청년들의 미래의 선택에 가중치를 줘야 한다는 깨달음에서다.

 

나이가 들면 내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환자가 8.4%로 42만 명에 이르고 치매 위험이 높은 경도인지장애는 4명 중에 1명 꼴이다. 치매와 증상이 비슷한 알츠하이머의 경우 90세 노인의 20%가 중증환자라는 미국의 한 연구보고서도 있다.

 

나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언젠가는 군복차림에 가스통을 들고 서울광장에 나설 확률이 꽤 높다는 얘기다. 이런 불안감은 최근 영포대군, 방통대군 등이 자초한 망신살로 인해 엄청난 두려움으로 굳혀졌다.

 

 

 

이번 총선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김용민이 젊었을 때 막말을 좀 했다 해서 논란을 빚고 있다. 하나는 부시와 라이스, 럼스펠트 등 전쟁광들을 좀 어떻게 해 보자는 이야기 중에, 또 하나는 서울광장에 출몰하는 노인들을 좀 어떻게 해 보자는 이야기 끝에 나온 장광설인데, 내 생각으로도 좀 심한 비유를 구사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그가 자진사퇴해야 한다느니, 민주당이 사퇴시켜야 한다느니, 민주진보진영까지 나서서 아우성치는 건 좀 정상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늘 반복되는 패턴…진보진영의 한 술 더 뜨기

 

도대체 과거의 막말 때문에 지금의 김용민이 국정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때 김용민의 나이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이었다.

 

그렇다고 부시는 물론 클린턴까지도 아직 철이 덜 들었을 때 마약을 했었다는 에피소드를 들먹이거나, “젊었을 때 막말 한번 해 보지 않은 자, 김용민에게 돌을 던지라”는 김형오식 논법으로 그를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온갖 여성비하를 자행해 온 수많은 새누리당 의원들과 후보들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타기’를 시도할 의도도 전혀 없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누구나, 그것이 진보가 됐든 퇴보가 됐든, 변화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8년 전 그때 김용민은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과 진보에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보잘것없는 학벌 때문에 어떤 주류방송으로부터도 외면당한 채 고작 인터넷 성인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었다.

차츰 실력을 인정받아 주류방송에서도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을 정도로 성장했으나 그가 결정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나는 꼼수다>를 통해서였다.

 

그는 <나꼼수>에서도 ‘씨바’, ‘조까지 마’ 등등의 용어를 거리낌 없이 구사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나꼼수>에서 ‘씨바’며 ‘조까지 마’ 등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불쾌하다기보다는 머리칼이 쭈뼛 설 정도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편이다.

내가 그런 소리들을 욕설이 아닌 일종의 ‘추임새’로 받아들이는 것이, 별 악의없이 욕을 입에 달고 살았던 내 젊은 날의 추억 때문인지, 지금도 가끔씩 후련하게 욕 좀 하고 싶은 잠재의식의 발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김용민이 주류방송에서도 막말을 했거나 ‘조까지 마’를 남발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방송의 제작방식과 전달형식, 목표로 삼는 청취자의 성향이 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솔직해지자면, 내가 만일 그때 그 인터넷방송을 들었더라면 그때도 역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킬킬 웃었을 것이 분명하다.

김용민에게 상황을 살피고 자리를 가리는 능력이 있다면 내게도 주류방송을 들을 때의 자세, 인터넷방송을 들을 때의 자세를 달리 할 만한 능력이 있는 것이다.


 

진화하는 김용민의 균형감각, 과거에서 미래로

 

▲ 4월 6일자 경향신문 6면

 

 

그럼에도 지금 ‘김용민 사퇴’ 운운이 들끓고 있는 것은 또다시 ‘조중동 프레임’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국기를 뒤흔들만한 불법사찰사건에는 이리 빼고 저리 빼던 <조중동>이 “옳지 잘 걸렸다”며 사태를 확산시키자, 진보진영의 도덕성 콤플렉스가 뒤늦게 작동한 것이다. 그리고는 김용민을 변호하는 쪽을 ‘진영논리’에 함몰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정작 ‘진영논리’에 빠진 것은 경향, 한겨레, 진보진영의 일부 도덕군자들인 듯하다. 그들의 논지에는 선거국면에서 전체 야당진영에 불리하니 사퇴하라는 안타까움이 절절히 배어 나온다.

 

참으로 유권자 의식 수준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손사래 치면서도 속으로는 아직도 <조중동>의 위세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부시와 라이스를 죽이기 위해 연쇄살인범을 파견하자”거나 “시청역에 엘리베이터를 없애고 4층 계단을 만들자”는 등 8년 전 인터넷 성인방송에서의 진한 농담을 ‘여성모독’ ‘노인폄훼’를 뜻하는 진담으로 받아들이자고 부르짖는 부류가 <조중동>과 그 일당 말고 또 누가 있을까.

 

“그러자”고 맞장구치는 이들은 오래전에 이명박을 찍었고 이번에도 새누리당을 찍겠다고 이미 작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내 확신이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이번 사안을 놓고 선거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는 쪽으로 논의가 흘러가는 건 옳지 않다.

이 정도 사안을 놓고 사퇴를 강요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로 가야 하며 그 결론은 사퇴는 안 된다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젊었을 때의 표현의 미숙함은 사과와 자숙으로 족하다.

사실 김용민은 지금 사퇴를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처음부터 출마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 선거구에는 웬만한 인물 누가 나가도 이길 수 있으니, 김용민은 애초 <나꼼수>를 잘 만드는 것이 국회의원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쫄지마! 김용민,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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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 놈평>김용민과 새누리당의 음담패설 분석

 

                                                                                  (서프라이즈 / 안호용 / 2012-04-09)


먼저 김용민을 옹호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님을 먼저 밝혀둔다. 지극히 객관적인 마초의 입장에서 쓰는 것이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란다.

 

음담패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리고 여자남자를 막론하고 일상에서 조금은 은밀한 한 부분인 게 사실이다. 친구들과 술자리나 접대용 술자리나 회사직원들과의 회식자리 등등에서 음담패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농담거리로 약간은 은밀하게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면서 동족의식을 느낀다.

 

그 음담패설에 등급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대게 어떤 장소에서 분위기에 맞는 음담패설을 자발적 검열을 거쳐 걸쭉하게 늘어놓는다. 장담하건대 음담패설 안 해본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서 음담패설을 했다고 그 사람의 인격을 탓하지는 않는다.

 

음담패설 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우리의 새누리당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한나라당 성추행이라고 치면 정말 화려했던 성추행 기사들이 끝없이 줄을 잇는다.

여기서 그것을 옮겨놓지는 않겠다.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너무도 많이 회자되었기 때문에 식상한 것은 물론이고 이젠 짜증이 난다. 색누리당이라 불리어도 전혀 부족할 게 없는 그들의 끝없는 배설본능은 앞으로도 계속될지 참으로 걱정이다.

국민을 즐겁게 해주는 차원에서라도 제발 음담패설과 성추행은 종영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그대들이 진정 국민을 위하는 구케의원이다. 하여튼 어려서 빨간책을 너무 많이 읽은 결과인지 모르지만, 그들의 성에 대한 애착은 국민의 시름을 달래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요즘 김용민이 과거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 했던 음담패설로 곤욕을 치루고 있다. 한마디로 보수쪽에서는 난리가 났다. 국회의원질 하겠다고 혼탁한 선거판에 뛰어들었으니 신상털기를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졸지 마시라. 그 정도는 각오해야 할 터 내공에 문제 없으리라 믿는다.

 

사실 김용민의 음담패설과 새누리당의 음담패설은 차원이 다르다. 김용민의 음담패설은 특정한 사람들만 찾아와 듣는 특정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 특정한 컨셉으로 특정하게 토크를 한 것이다.

공중파 방송에서는 공중파에 맞는 언어를 구사해야겠지만, 특정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은 청취자가 극히 제한적으로서 자신이 선호하는 취향을 찾아 나선 것이기 때문에, 출연자는 거기에 맞는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본연의 임무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방송의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케이블에 에로비디오 전용 성인방송도 있고 선정성을 컨셉으로 방영되는 케이블 방송도 많이 있다. 이런저런 잡다한, 정말 말도 안 되는 컨셉을 가지고 방송하는 케이블이나 인터넷방송들이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떳떳하게 다들 잘 먹고살고 있다.

그 가운데 김용민이 극히 일부를 담당했을 뿐이다. 다 먹고살자고 한 짓이리라.

 

 

하지만 새누리당의 음담패설은 일상적인 대화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음담패설이 튀어나오고, 그것이 재수 없게 언론에 잡히면 그게 이슈화된다. 그러니까 자의적으로 음담패설을 하는 것이기에 인격적인 문제와 연결이 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음담패설이 조금은 은밀한 농담이지만, 그래서 조금은 은밀한 장소에서 발설을 해야 음담패설로 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음담패설은 일상적인 활동에서 무절제하게 발산을 해대니 욕을 얻어먹는 것이다.

그런 음담패설 하나 때와 장소를 가릴 줄 모르고, 그런 거 하나 절제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구케의원질을 하고 있으니까 국민적(보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새누리당에 비하면 김용민은 순진하다. 김용민은 생계형 음담패설이지만 새누리당의 음담패설은 인격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어느 정치인이 기자들이 즐비한 공식적인 자리에서 맛사지걸의 서비스를 논하고, 관기 운운하며 농담짓거리를 하겠는가.

최소한 김용민은 음담패설을 할만한 곳에서 했지, 새누리당처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새누리당은 돌을 쥘 자격조차 없다.

 

오늘도 종점다방 미쓰킴은 다리 꼬고 앉아 껌을 짝짝 씹어대며 “ 요즘 전여옥 아줌마는 머하는지 몰라. 그 아줌마 이럴 때 한 방 내던지면 영감들 자지러질 텐데… 국회의원은 나온대? 한나라당에 아직도 있지? ”라고 이죽거린다.

 

안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