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관련

대법원 “ISD, 극심한 법적 혼란” 의견냈었다

道雨 2012. 4. 26. 12:56

 

 

 

8쪽짜리 `ISD 검토 의견서’
국회 요구에도 5년간 비공개
주권침해 가능성 등 문제로 
“청구대상서 재판 배제” 강조
ISD 재협상에 반영될지 관심

대법원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에 대해 “극심한 법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정부에 밝혔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은 사법부의 재판이 중재 대상에 포함되고, 미국 투자자의 중재 청구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의견서는 2006년 6월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당시 법무부의 요청에 따라 대법원이 작성했지만, 지난 5년간 일체 공개하지 않아왔다. 보존기관(6년 이상)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에 “보관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해, ‘법원기록물관리규칙’위반 지적까지 받았다.

25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박주선 의원(민주당)에게 제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국제투자분쟁 해결절차(ISD)와 관련한 검토의견’을 보면, “미국 투자자의 중재 청구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돼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제소에 따른 대응 등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중재 청구 대상에 사법부의 재판을 배제할 수 없다면 극심한 법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돼 있다. ‘국제 투자자 분쟁 해결 절차’와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말만 다를 뿐 같은 뜻이다. 이에 대법원은 “투자자-국가 소송제 도입 여부는 국민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판단해야 하며, 특히 중재 청구 대상에 사법부의 재판은 배제하는 등 중재 청구의 대상과 요건을 구체적으로 특정해, 그 해석과 관련한 분쟁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주권의 침해·법적 불안정 초래 8쪽짜리 검토 의견서을 보면,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장점이 반쪽, 문제점이 3쪽 분량을 차지한다. 첫번째 문제점으로는 주권의 침해 가능성이 꼽혔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도입하면 정부의 각종 정책이나 규제 조처가 간섭받고, 이러한 분쟁에 대해 사법부가 관여할 여지가 없어져, 국가의 주권 또는 사법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직접 중재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해, 외국인이 우리 국민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려 평등권에 어긋날 우려가 있다고 대법원은 분석했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내국인 역차별 비판이 많다. 결국, 2002년 미국 연방의회는 무역촉진권한법을 제정해, 미국 시민보다 더 큰 권리를 외국인에게 부여하는 일이 없도록 행정부가 투자협상을 진행하도록 했다.

두번째로 사법부의 재판도 중재 청구의 대상이 됨으로써 법적 불안정 및 불안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대법원은 지적했다. 미국의 재판 절차와 판결을 중재기구가 심판한 로언 사건을 구체적인 사례로 들었다. 캐나다의 장의업체인 로언이 1995년 미국 미시시피 주법원에서 5억달러를 배상하라는 배심원 평결을 받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ㆍ나프타) 위반이라며 투자자-국가 소송을 청구한 사건을 말한다. 중재기구는 기각 결정을 내렸지만, 사법부의 재판도 중재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 공공정책 왜곡 우려 또 국가의 공공정책 왜곡 문제가 지적됐다. 중재기구가 정부의 각종 정책을 평가하고 심리함에 따라 공공정책이 위축되거나 국가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공중 건강, 안정 및 환경 등에 관한 정부 정책은 간접 수용을 구성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포함하고 있어 어느 정도는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대법원은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중재 절차의 투명성 문제도 거론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제3자에게 법률의견서 제출 권한을 부여하고 3년 이내에 상소 기구를 설치할지 협의하도록 규정해 나프타보다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했다.

박주선 의원은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때 대법원의 검토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지난해 12월 현직 판사 166명이 한-미 협정이 사법주권을 침해한다고 또다시 우려를 표시한 것”이라며 “오는 6월로 예정된 투자자-국가 소송제 재협상(개정 협상)에서는 대법원의 의견을 반드시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미 협정의 투자 분야를 협정 발효(3월15일) 뒤 90일 이내에 미국과 재협상하겠다고 밝히고, 지난 3월부터 협상안을 마련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