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범죄 은폐’를 조언한 BH 비서관 출신 변호사

道雨 2012. 7. 24. 17:31

 

 

 

 

        ‘범죄 은폐’를 조언한 BH 비서관 출신 변호사

‘민간인 사찰’ 범죄자 비호한 ‘법무법인 바른’, 이름이 아깝다
최강욱 | 2012-03-20 08:31:0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변호사로 사는 입장에서 참 오그라드는 말이 있다면 ‘인권 변호사’ ‘국제 변호사’라는 용어가 아닐까 한다. 자격지심일진 모르나 ‘인권 변호사’란 마치 세상의 모든 이득에 초연한 자세로 시민의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지사형의 지식인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 면구스러울 따름이다. 

한때 유행하다 요즘은 좀 정리된 것 같은 ‘국제 변호사’는 마치 어느 나라 법정에서든 자유롭게 멋진 논리를 설파하며 최대의 전문성과 최선의 능력을 바탕으로 의뢰인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로 오인되기 쉽기에 하는 말이다. 더구나 그저 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얻은 이에게 국제 변호사란 호칭을 남발했으니 심정적 거부감은 더했다.

이렇듯 허명을 바탕으로 본질을 호도하고, 그로 인해 기대를 갖고 지켜보던 시민들에게 실망과 허탈감을 안기는 경우는 다른 직역에서도 많고 많을 터이다. 그 중 하나가 공직자에게 거는 기대와 신뢰가 아닐까. 국가를 유지하고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공직자의 역할은 두말할 것 없이 매우 중요하다.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매사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는 자세로 복무해야 하는 이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국가는 엄격한 심사를 통해 공직자를 선발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보수를 지급하며 신분을 보장한다. 퇴직 후에도 상당한 액수의 연금을 받는 자타가 공인하는 안정된 직업일 뿐 아니라, 이기심에 기반한 사익추구가 아닌, 만인을 위한 공익에 헌신한다는 명분도 훌륭하다. 민간인을 대할 때 법과 권위를 바탕으로 늘 ‘갑’의 위치에 있으며, 퇴직 후에도 좋은 직장에 재취업하는 확률이 높다. 그만큼 검증된 자질과 능력을 갖고 있으리라는 기대와, 그간 쌓은 경륜과 인맥이 어떤 활동을 하든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정부를 겪으며 시민들은 공직자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상당 부분 접은 것으로 보인다. 정권 교체에 따라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말을 바꾸는 이들 때문에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말이 회자되어 서로를 자조하게 하더니,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근무하는 이들이 행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서는 공직자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마저 완벽하게 무너졌다. 검찰의 편향적 모습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고, 법원마저 시민의 기대와는 한참 동떨어진 모습으로 파문을 일으킨 게 불과 얼마 전이다.

특히 불법사찰 사건에선 아무런 근거가 없음에도 서슴없이 월권을 자행하는 공무원들의 모습, 피해자의 고통에 철저히 둔감한 것은 물론 범죄행각을 반성하기는커녕 사과할 수조차 없다고 버티는 뻔뻔스런 모습, 거기에 자신들의 소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덧칠하는 근거 없는 색깔론과 갖은 거짓 주장을 더하면 이들에게서는 막무가내식 조폭윤리 외에 도저히 ‘국민에 대한 봉사자’라는 공직자의 모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비단 범죄혐의로 입건되어 단죄된 이들뿐 아니라, 그들을 지휘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던 이들도 그 소행이나 사고방식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최소한의 도리조차 갖추지 못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말단 실무자의 양심고백으로 드러난, 정권 핵심에 복무하던 이들의 소위 ‘배후’로서의 행태는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대포폰을 이용한 증거인멸, 금전을 통한 회유, 조직논리를 앞세운 입막음, 아직 드러나진 않았지만 쉬이 예상할 수 있는 은밀한 협박까지도….

하물며 청와대 대통령실장으로 근무하던 이까지 구속된 자들에게 금일봉을 전했다는 최근의 보도를 보면, 과연 그들이 불법사찰을 심각한 범행으로 여기고 있었는지조차 의문이다. 최선을 다해 헌신한 심복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솔직히 표현하는 형식으로, 또 다른 차원의 입막음과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이라 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공무원들의 조폭적 행태에 넌더리가 날 즈음, 급기야 변호사의 처신까지 도마에 오른다. 하필 이 정권 초기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이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이 불법사찰을 저지른 가짜 공무원들을 변호한다고 나설 때부터 심상치 않다 생각하긴 했었다. 피해자의 편에 있었기에 들었던 편향된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법조 일반의 우려이기도 했다. 

선비는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아야 한다 했거늘, 왜 하필 그 법인을 변호인으로 선임했을까? 아니 이인규, 진경락 같이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변호를 맡은 것을 보면 모종의 계획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과 함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진 않을까 하는 우려들이었다.

공교롭게도 증거인멸의 주범 격인 진경락은 다른 변호인을 추가로 선임하였고, 2심부터는 변호인이 바뀌기도 하였다.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이나 1심 선고가 있은 다음엔 함께 기소된 하위직 공무원들이 왜 우린 변호사 선임을 안 해주느냐며 항의했다는 소식이 법조를 출입하는 기자들 사이에 풍문으로 떠돌기도 했다. 

그러더니 1심이 끝난 다음엔 변호인이 도움을 준 게 아니라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며 가족들이 항의했다는 소문까지 이어졌다. 본래 큰 사건에는 이런저런 유언비어가 난무하기 마련, 이번에도 그저 그러려니 했었다. 물론 일말의 의구심을 떨치진 못하였으나.

최근 진실을 고백한 장진수 주무관은 이런 의구심이 현실일 수도 있음을 밝히고 말았다. 자신을 회유하며 입을 막으려던 최종석 행정관이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와 통화하며 장 주무관이 진실을 밝히면 어찌 되는지 상의했고, ‘바른’에서 이루어진 몇 차례 회의에 참석했을 때엔 어차피 처벌받을 것이니 뒤에 있는 조직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대표변호사의 조언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강 모 변호사는 통상적 수준의 법률적 조언을 했을 뿐이라며 반박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 내부사정에 밝은 변호사가 자신의 의뢰인도 아닌 피의자에게 배후를 밝히지 말라는 조언을 했다는 점이 문제다. 어차피 밝히든 말든 당사자의 유죄 성립엔 영향이 없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통상적 조언에 해당하는지도 의문이다. ‘변호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에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적시하고 있는 변호사법 제24조에 위반되는지의 여부를 당장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의뢰인의 범죄행위를 알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는 변호사 입장에서 늘상 직면할 수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다. 살인자라도 변호해야 하고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자면 은폐를 권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강 변호사의 행위는 저간의 상황을 볼 때 불법 사찰 및 증거인멸의 배후가 존재할 것이라는 합리적 추정에 비추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수사를 막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는데 나아간 것으로 보는 게 상식적이지 않을까.

의뢰인에게 불리한 사실을 변호사와 의뢰인이 함께 감추려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이는 변론 전략상 옳은 행위일 수 있다. 의뢰인이 변호사의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상당수는 자신의 소행을 어떻게 정리하여 불리하지 않도록 정리할 수 있는지에 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팩트’를 넘어 범죄를 은폐하는 중대한 사안일 경우에는 진실을 은폐하여서는 안 될 변호사의 의무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보아야 옳다. 

살인자를 변호하며 그가 범죄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밝혀 정상참작을 구하는 과정에서 굳이 그가 과거 폭력 전과가 있었다는 ‘사실’을 앞서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의뢰인이 다른 사람을 살해한 ‘범죄’를 인지하고도 이를 숨기는 것은 변호사의 윤리와 사회적 의무에 비추어 결코 올바른 행위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물론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일할 의무도 있다. 강 변호사는 장진수 씨가 비록 자신의 의뢰인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의뢰인인 이인규나 진경락을 위해 그들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말도록 조언했다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변호의 전략을 넘어서는 일임이 분명하다. 만일 그가 의뢰인이 행한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행위가 정상적인 나라라면 당연히 정권이 물러나야 하는 중대범죄라는 점조차 부인하는 법률가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사건의 심각성에 비추어 그 와중에 관련 당사자들을 조종한 조직적 배후가 있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은 더 큰 문제가 있고, 새로운 범죄를 은폐하는 것에 해당한다.

더구나 피의자들에게 각종 불법행위를 지시하고도 이를 은폐하도록 하여 자신의 책임을 면한 배후가 밝혀지게 되면, 자신의 의뢰인인 피고인들의 죄가 상대적으로 가벼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범죄의 주역에서 종범으로 되어 비난가능성과 책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피고인이 마음을 바꾸어 진실을 고백하는 것이 재판 과정에서 유리한 양형요소로 반영되어, 형을 정함에 있어 유익한 정상참작 사유가 된다는 점에 비추어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결국 그는 문의한 당사자에게나, 자신의 의뢰인에게나 불리한 내용의 조언을 한 것이다. 법률전문가라면 더욱이 모든 판단요소를 입체적,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당사자에게 가장 유용한 조언을 해 주는 것이 옳을 것이므로, 이러한 행위는 정당한 것이 못된다. 정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국가가 행한 조직범죄를 이런 식으로 비호하고 은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할 수 없는 일이다.

▲ ‘악마의 변호사’ 포스터

몇 년 전 미국 영화 “Devil’s Advocate(악마의 변호사)”가 상영된 적이 있다. 의뢰인의 범행을 확신하면서도 돈에 눈이 멀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악덕 변호사를 그렸다. 알량한 사회적 신분을 미끼로 선량한 시민의 등을 친다면 이 또한 악마의 변호사에 속한다. 법률가적 정의를 내팽개친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짓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도 악마의 변호사가 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일부 변호사는 수임료를 지나치게 받거나 브로커와 결탁하는 고전적 행각에서 벗어나 직접 범죄에 뛰어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변호사법은 제1조(변호사의 사명)에서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의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정했다. 글의 첫머리에서 ‘인권 변호사’라는 말이 면구스럽다 밝힌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변호사는 마땅히 ‘인권 변호사’여야 하기에 이를 특별히 지칭하는게 오히려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오늘 총리실의 불법사찰 사건에 등장하는 변호사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많이 속이 상한다. ‘인권 변호사’와 ‘이권 변호사’가 아주 사소한 차이만을 가질 뿐이라는 비아냥도 아프게 다가온다. 왜 하필 판사와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국내 유수 로펌의 대표변호사가 범죄를 은폐하도록 조언했다는 의심을 받는 것인지 진실로 유감스럽다.

하긴, 민간인 불법사찰이 한 사람의 인격과 인권을 철저히 파괴한 중대 사안이므로 이를 조사해 달라는 요청을 심의하던 와중에, 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인 어떤 변호사는 세상이 떠들썩했던 본건에 대하여 “대체 그게 무슨 사건인데 이렇게 시끄러운 것이냐? 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데”라는 말로 좌중을 허탈하게 했다고 한다. 아시아 인권단체에서 사찰사건의 진실을 확인하러 찾아온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의 인권활동가들은 내게 그 말을 듣고 경악했었다. 

하물며 그 발언의 당사자가 대법원장이 추천한 전직 판사라는 말을 듣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던 그들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국격은 이렇게 망가지고 있다. 그 사이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살면 손해일 뿐이고, 여전히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되뇌이는 여럿의 한숨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바르지 못한 권력은 이토록 깊고 넓은 상흔을 새긴다. ‘정의가 바로 서는 역사’가 너무도 간절한 요즘이다.


[필자소개]

최강욱 변호사는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의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의 변호를 맡고 있습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위원장을 맡은 바 있는 최 변호사는 육군장성 진급 비리 사건, 한미연합부 사령관 횡령 사건, 기무사 민간인 사찰, 국방부 불온서적 지정 사건 등 불합리한 권력과 기득권의 부정부패 등에 맞서 싸워온 대표적인 변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