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우리나라와 중국이 수교한 지 20년이 됐다. 한-중 관계는 수교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두 나라 관계를 공식 규정하는 이름의 변천사만 봐도 변화의 정도를 실감할 수 있다. 1992년 수교 당시엔 ‘우호협력관계’로 출발했으나 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21세기를 향한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됐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중 땐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다시 격상됐다가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가 됐다.
특히 경제·문화 등 비정치 분야의 발전이 눈부셨다. 63억여달러로 시작한 무역 규모는 지난해 2206억여달러로 35배 이상 늘었다. 미국·일본과의 교역 규모를 합친 것보다도 더 큰 액수다. 수교 당시 13만여명에 불과하던 양국간 방문자 수도 지난해 660만명을 넘어섰다. 중국 관광객과 쇼핑객 없는 서울 명동과 제주도를 상상하기 어렵게 됐고, 베이징의 젊은이들이 서울과 동시에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을 즐기는 시대가 열렸다. “물이 흐르면 개천이 될 것”이라는 수교 당시 리펑 중국 총리의 예언이 초라하게 들릴 지경이다.
반면 정치·안보 쪽은 ‘경열정랭’(경제는 뜨겁지만 정치는 차갑다)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관계가 부진하다. 중국과 북한의 전통적 우호관계와 미국의 아시아 귀환과 함께 온 미-중 대립이라는 외부 환경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틀어진 건 전략 부재 탓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는 양자·지역·세계 문제에 걸쳐 모든 사안을 협력할 수 있다는 전략적 관계로 설정해 놓고 실제론 대미 일변도 정책을 취하면서 중국의 반발을 초래했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터진 2010년은 양국간 ‘전략적 불신’이 최고조에 오른 시기였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려면 중국의 협력이 절대적이다. 경제 번영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2대 강국으로 불릴 정도로 급성장했지만, 보시라이 사건, 김영환 사건에서 보듯 인권·민주 등 가치에 대한 인식에선 아직 우리와 격차가 크다. 동북공정과 만리장성 늘리기에서 나타나듯이 배타적 국수주의 성향도 강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골치 아픈 거인을 상대하지 않을 수 없다. 국익을 위해서라도 중국이 이 지역에서 생산적 협력자 노릇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나서야 한다. 국가 생존 전략 차원에서 한-중 관계를 점검하고 재정립할 때다.
[ 2012. 8. 24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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