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군 의혹(정치, 선거 개입)

국정원 추적 100일, '원세훈을 잡아라'

道雨 2013. 4. 13. 11:50

 

 

 

      국정원 추적 100일, '원세훈을 잡아라'

 

 

참여연대 회원들이 3월24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해외도피'를 막기 위해 서 있다. 원 전 국정원장은 해외로 출국하려 했으나, 법무부가 출국금지 조처를 내렸다. 인천공항/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3개월 취재 뒷이야기
경찰 외면 속 특종의 8할은 ‘정의로운 취재원들’

대선 직전 수서서 기자회견, 기자들은 서장 입만 바라봤다.
“게시글·댓글 쓴 적 없다”
경찰은 의심스러운 정황은 덮고, 밝혀진 사실들엔 침묵했다. 불신은 점점 깊어졌다

 

3개월간의 추적이 시작됐다. 실마리를 잡기는 어려웠다.
수사팀은 철통보안을 자랑했고, 사건 관련자들은 말을 아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공포’였다

 

 

 

기자 40여명과 방송카메라 10여대가 김광석 서울 수서경찰서장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김 서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대선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 게시글이나 댓글을 게재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한 기자가 물었다. “추가 수사를 통해 중간 수사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있나요?”

 

김 서장은 주저 없이 답했다. “저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씨의 하드디스크를 분석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도 “온갖 방법으로 다 조사했지만 정치 쪽으로 댓글 달거나 올린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17일 오전 9시 김 서장의 기자회견은 전날 밤 기습 발표와 다르지 않았다. 경찰은 이미 12월16일 밤 11시 ‘국가정보원 직원의 대선 여론 조작 의혹’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대선 최대 현안 중의 하나로 떠올랐던 ‘국정원 여직원’ 사건에 대한 경찰의 발빠른 대응이었다. 김 서장의 브리핑이 있고서 이틀 뒤인 12월19일, 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대선이 끝나자 경찰 수사는 조용히 이뤄졌다. 보름이 지나고 올해 1월3일에야 경찰은 다시 한번 국정원 사건의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국정원 직원 김씨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오늘의 유머’(오유)에서 게시글 추천·반대 활동을 했다. 직접 쓴 글도 있지만 대선·정치·시사와는 무관한 개인적인 내용이다”라고 밝혔다. 국정원 직원이 진보 성향의 누리집(웹사이트)에서 ‘추천·반대’의 의견을 표명했다는 내용이었지만, 정치와 무관하다는 점에서 이전 발표와 다르지 않았다.

경찰은 다시 침묵하기 시작했다. 한달 가까이 어떤 수사 결과도 내놓지 않았다. 국정원도 다르지 않았다. 1월9일 <한겨레>와 ‘5분17초’ 동안의 전화 통화에서 국정원 대변인은 4차례나 김씨가 글을 쓴 적이 없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글을 쓴 건 한 건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경찰과 국정원의 발표로 인해 ‘국정원 직원’ 사건에 대한 파장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국정원 직원 김씨가 정치적인 글에 ‘추천·반대의 의견을 개인적으로 표명한 것이 문제가 되느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국정원 사건은 그렇게 진실과 멀어지고 있었다.

 

 

 

 

 

싸늘히 식은 ‘캡’의 목소리…동아줄을 붙잡다

 

 

대선 이후 국정원 사건에 대한 취재는 쉽지 않았다. 수사팀에서는 한마디도 새어나올 기미가 없었고, 사건 관련자들을 만나기도 어려웠다.

이 와중에 서초경찰서에서는 성추문 검사 사건의 피해여성 사진유출 사건이 배당됐다. 서울 강남·서초·수서경찰서를 출입하는 강남라인 기자들은 더 바빠졌다. 기자들 세계에서 무림의 고수들이 모인다는 강남라인에서 물을 먹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조선일보>가 “국정원 김씨가 오늘의 유머 누리집에서 게시글 추천·반대 활동을 했다”고 단독 보도했고, <중앙일보>마저 “김씨의 국정원 업무는 종북성향 글을 추적하는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캡(사건취재팀 팀장)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안절부절못하며 돌아다니다 우연히 동아줄 하나를 붙잡았다. 국정원 직원 김씨가 쓴 글을 확인할 단서가 생긴 것이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취재 과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긴 어렵다. 다만 밝힐 수 있는 건, 김씨의 글을 보도할 수 있었던 공의 8할이 ‘정의’라는 단어에 고개를 끄덕였던 취재원들 덕분이었다는 점이다. 나머지 2할은 평범한 시민들을 실체도 불확실한 ‘종북’이라고 낙인찍어온 국정원과, 사건의 실체를 숨겨온 경찰의 기여였다.

 

 

취재를 하면서도 또 하나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국정원의 전신이 고문과 미행, 도청 등을 자해하던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가 아니던가. 이런 두려움과 철통보안을 뚫고서 건져올린 ‘사실’은 사건의 본질을 바꿔버렸다.

 

 

<한겨레>가 국정원 직원 김씨가 쓴 글의 내용을 보도하기 전까지 국정원 직원에 대한 논란은 ‘특정 글을 추천·반대한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경찰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 법률 검토를 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경찰 수뇌부는 이미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린 것처럼 보였다. 김용판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김씨의 컴퓨터 분석 결과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는 한밤중 수사 결과 발표를 자신이 주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에도 김씨의 의심스러운 활동 정황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김씨의 노트북에서 지워진 메모장 파일 하나를 발견했다. 그 파일을 복원하자 20개의 ‘아이디’와 20개의 ‘닉네임’이 나왔다.

김씨가 노트북에서 열람한 인터넷 검색기록은 31만여건에 달했다. 김씨가 지난해 8월 국정원으로부터 노트북을 지급받았기 때문에 하루에 4000건씩 인터넷 검색을 한 셈이다. 이는 일반인의 한달 인터넷 검색량을 뛰어넘는다.

 

 

서울청은 이런 내용을 확인하고도 12월16일 밤 11시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주도했다. 보도자료의 핵심 내용을 작성한 주체도 수서경찰서가 아닌 서울청이었다.

다음날 오전 수서경찰서장이 기자들 앞에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서울청은 하드디스크에 대한 상세한 분석자료를 수서경찰서에 넘기지 않았다.

하드디스크에서 나온 20개의 아이디와 20개의 닉네임을 수서경찰서가 받게 된 시기는 다시 하루가 지난 18일 오후 4시께였다. 수서경찰서의 줄기찬 요청 끝에 서울청이 분석자료를 보내준 것이다.

 

 

경찰은 국정원 여직원이 정치적인 글을 게시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의심스러운 정황은 남아 있었다. 단서는 ‘20개씩 발견된 국정원 직원의 아이디와 닉네임’이었다.

경찰이 알려준 것은 이게 전부였다.

국정원 직원이 실제 무슨 아이디와 닉네임을 사용했는지는 직접 밝혀내야 했다.

 

 

결국 올해 1월31일 <한겨레> 보도로 김씨가 작성한 91개의 글이 세상에 공개됐다.

대북 업무를 담당하는 국정원 3차장 산하의 심리전단 직원인 김씨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를 비난하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의 금강산 관광 재개 공약을 비판하는 글을 쓴 것 역시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씨가 정치적인 글은 쓴 적이 없다”는 국정원과 경찰의 거짓말이 탄로났다.

 

 

보도가 나오자 경찰은 부리나케 기자회견을 열었다. 변명은 궁색했다. 경찰은 1월31일 “게시글이 정치, 시사 등과 관련 없다고 한 것은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탓이다. 글도 판단에 따라 대선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없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국정원은 김씨의 활동이 “종북세력을 추적하는 국정원 직원의 고유 업무”라고 주장했다.

 

 

여론 조작에 참여한 인물은 국정원 직원인 김씨만이 아니었다. <한겨레>가 2월4일 ‘국정원 직원의 아이디 5개를 제3의 인물이 썼다’고 보도하자,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경찰과 국정원은 더 이상 김씨 개인의 행동으로 사건을 무마할 수가 없었다. 이는 곧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단서이기도 했다.

 

 

 

 

이씨 찾기 위한 수백번의 클릭

 

 

‘제3의 인물’을 찾기 위한 취재 과정은 지난했다. 처음 확인된 것은 제3의 인물 성이 ‘이씨’라는 것뿐이었다. 이씨의 정체는 오리무중이었다. 신분은 물론 나이와 이름조차 확인되는 것이 없었다. 다만 이씨가 국정원 직원 김씨와 유사한 활동을 한 것은 확실했다.

경찰 수사 결과, 이씨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아이디는 30개가 넘었다. 이 아이디들은 160여개의 게시글을 작성하고, 2000회가 넘는 게시글 추천·반대 활동을 하는 데 사용됐다. 국정원 직원 김씨보다 이씨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한 셈이다.

 

 

단서는 뜻밖의 곳에서 나왔다. 2월8일 <에스비에스>(SBS) 8시 뉴스는 이씨가 머물렀다는 고시원을 찾아 보도했다. 영상에는 ‘고시원’이라고 적힌 간판의 일부만 담겼다. 이 유일한 실마리밖에 붙잡을 게 없었다.

 

어려울 땐 단순하게 가는 게 좋다.

인터넷에서 ‘고시원’을 검색했다. 서울 시내 등록된 고시원이 3000개 가까이 나왔다. 실제 거리를 볼 수 있는 인터넷 지도 서비스를 이용해 같은 간판이 있는지 하나씩 확인했다. 설 연휴가 이어진 터라 시간은 충분했다. 첫날 400여개를 검색했지만 같은 간판은 없었다.

다음날 취재를 통해 고시원이 강남구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검색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 결국 이틀 만에 방송에서 나온 간판이 달린 고시원을 찾을 수 있었다.

 

 

이씨의 구체적인 신원은 국정원 사건을 함께 취재한 최유빈 기자가 밝혀냈다. 최 기자는 며칠 만에 비밀투성이였던 이씨의 나이와 출신 학교를 알아냈고, 2004년 당시 한나라당의 한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운동을 했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문제는 2004년 이후였다. 10명이 넘는 이씨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봤지만, 이씨의 최근 행적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고시 공부를 하던 이씨가 선거운동을 한 뒤 어떤 과정을 통해 김씨를 만났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존재로 국정원이 대선 여론 조작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은 더 확실해졌다.

이씨의 정체가 밝혀진 뒤 민주당은 이씨를 국정원 직원 김씨의 공범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씨는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됐다.

경찰의 소환을 피해 잠적했던 이씨는 결국 여론과 경찰 수사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2월22일 수서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새로운 정황이 속속 드러났지만, 경찰 수사는 여전히 더디기만 했다. 사건을 수사해왔던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2월4일 서울 송파경찰서로 발령을 받았다. 권 과장은 사건에 관계된 경찰 중 유일하게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권 과장은 1월23일 “경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잖아요. 이 사건의 수사기록에는 수사관의 이름이 남습니다.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수사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서울경찰청은 “1년 이상 과장으로 일했던 모든 경찰 간부를 인사이동한다”는 이례적인 방침을 이유로 인사를 강행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권 과장을 이번 사건에서 손 떼게 하려고 내놓은 고육책이라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국정원과 조금이라도 관계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수밖에 없었다. 전·현직 국정원 직원과 국회 정보위원회 관계자 등을 두루 만나 취재를 벌였지만 모두들 국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렸다.

현직들은 “회사를 오래 다녀야 한다”는 이유로 접촉 자체를 꺼렸다.

전직들은 “원세훈 원장 취임 이후 현직 직원을 만나는 것이 금지됐다. 동기들마저 만날 수 없다”며 한탄했다. 국회의원도 “질의를 보내면 ‘비밀이다’는 내용만 돌아온다”며 답답해했다. 의미있는 성과는 2월 말에야 나왔다.

 

 

 

 

‘제3의 인물’ 이씨 찾으려 인터넷 지도 서비스 통해 고시원 수백개 일일이 확인하고
‘원장님 지시 말씀’ 검증에 기자 3명이 매달렸다

 

고소·고발 이어지는 가운데 조용히 퇴임한 원세훈 전 원장 해외 출국 소식 듣고, 밤늦게 그의 집을 찾았다
초인종 눌러도 개만 짖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걸까

 

 

리트위트로 남은 원장님 지시말씀

 

 

원 전 원장이 직접 직원들에게 정치 개입을 지시한 내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국정원 내부망에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지시말씀)이라는 게시판이 있고, 한 달에 한 번꼴로 다양한 지시사항이 올라오는데 이 중 상당수가 ‘부적절한 지시’라는 것이었다.

 

 

혼자서 취재를 더 진행하긴 힘들었다.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실과 지시 말씀의 정체를 찾아 나섰다. 자세한 과정을 밝힐 순 없지만 2주간의 노력 끝에 결국 관련 내용을 입수했다.

25개의 지시사항은 정부·여당의 정책을 옹호하고, 이를 반대하는 세력을 종북으로 낙인찍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국정원 직원 김씨가 속한 심리전단이 2010년 보고한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 방안’이라는 문서에 대해 원 전 원장은 “바로 우리 (국정)원이 해야 할 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인 2011년 11월18일 지시말씀에는 “인터넷 여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내용까지 담겨 있었다.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대통령의 해외 순방 칭송 등 정부 여당을 일방적으로 편들라는 지시 내용도 다수였다.

 

원 전 원장의 지시말씀은 국정원 직원 김씨가 젊은층들이 자주 모이는 ‘오유’ 등 누리집에서 작성한 글의 주제와 일치했다. 김씨의 게시글이 국정원 차원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점은 한층 더 분명해졌다.

 

 

문제는 문서의 진위였다. 검증이 필요했다. 기자 3명이 검증 작업에 매달렸다.

우선 국정원 내부망에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이라는 게시판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10여명에 이르는 전·현직 국정원 직원들을 통해 게시판의 존재를 확인했다. 또 원 전 원장이 취임한 뒤로 이 게시판이 더 활발하게 사용됐다는 내용도 확인됐다.

 

 

이후 ‘지시말씀’에 거론된 내용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확실한 단서를 찾았다. 원 전 원장이 지난해 11월23일 지시한 내용 중 일부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트위터에 올라온 사실이다.

그 글을 쓴 사용자는 이미 탈퇴했지만, 다른 사람이 리트위트를 한 흔적이 남아 꼬리가 밟혔다.

 

 

원 전 원장의 지시말씀에는 “최근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한국과 같이 자원 없는 나라가 원전 활용하는 것은 현명, 관리도 잘한다’고 호평한 내용을 원전 지역 주민들에게 홍보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같은 내용을 거의 똑같이 트위터에 올린 사람 2명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 발언은 허위였다. 실제 발언을 한 사람은 국제원자력기구가 아니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사무총장이었다. 원 전 원장이 실수를 한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은 이 실수마저 그대로 옮겨 트위터로 전파했다.

 

 

국회에서는 국정원에 질의를 보내 ‘지시말씀’에 거론된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 방안’이라는 문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문서의 진위가 확인된 이상 보도를 미룰 이유는 없었다. 진 의원실과 협의해 보도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3월18일 <한겨레> 1면 머리기사와 두 면에 걸쳐서 ‘지시말씀’이 공개됐다.

 

 

 

 

원세훈 전 원장집엔 개 한 마리뿐

 

 

 

3월24일 오전 서울 관악구 남현동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집 안에서 개 한마리가 밖을 쳐다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원 전 원장의 지시말씀이 공개되자 파장은 컸다.

지시말씀에서 ‘종북세력’으로 거론된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원 전 원장을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다. 고소 대열에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와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도 합류했다.

 

 

원 전 원장은 자신에 대한 고소·고발이 이어지던 3월20일 저녁, 몇몇 간부만 모아놓은 자리에서 조용히 퇴임식을 열었다. 수사기관이 석달 넘도록 끌어온 국정원 사건의 배후로 그가 지목되는 시점이었다.

 

 

3월22일 저녁, 다급한 제보가 왔다. 원 전 원장이 일요일인 3월24일 해외로 출국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국정원 안팎에서는 원 전 원장이 퇴임 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원으로 간다는 소식이 널리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금요일 밤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밤 10시께 기사를 마무리하고, 출국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 관악구 남현동에 있는 원 전 원장의 집으로 향했다.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다음날 낮 다시 찾은 원 전 원장의 자택에는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 10여차례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만 만나 달라”며 소리도 질러봤지만 개가 대답할 뿐이었다. 진돗개와 수십개의 동작감시센서, 폐회로카메라(CCTV)가 집을 지켰다.

 

 

이웃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해 원 전 원장의 집 수리가 일년 내내 진행됐다고 한다. 국정원 관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준비로 보였다.

하지만 3월20일 퇴임식이 있기 일주일 전께 이삿짐차가 원 전 원장의 짐을 한가득 싣고 나갔다.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거나 이미 국외로 나갈 준비를 마친 것이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남현동 자택에서는 끝내 원 전 원장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출국 소식이 전해진 뒤 원 전 원장에 대한 여론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일부 시민들은 출국을 막아야 한다며 3월24일 직접 인천국제공항에 나가기까지 했다.

여당 안에서도 “전직 국정원장이 퇴임 직후 해외로 출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법무부는 원 전 원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처를 내렸다.

이후 원 전 원장은 지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미국으로 출국할 의도는 없었다”, “일본으로 잠시 여행을 갈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번도 직접 출국 논란에 대해 해명한 적은 없다. 그리고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100일이 넘는 취재 과정 내내 ‘보이지 않는 손’이 발목을 잡았다. 그만큼 이번 사건의 실체를 감추려는 이들이 많았던 탓이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고 싶어하는 취재원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정보기관의 그림자가 뒤를 따르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실체가 이만큼 밝혀진 것은 모두 그들의 용기 덕분이었다. 이제 그 용기에 걸맞은 대답이 필요하다.

경찰과 검찰의 몫이 여기 있다. 경찰과 검찰이 진정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민의 ‘공복’이라면.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관련 영상] 정환봉 기자의 ‘국정원녀 사건’의 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