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지금 이 시대 최고의 개혁은 바로 선거제도 개편이다.

道雨 2019. 6. 4. 09:55




이 시대 최고의 개혁은 무엇일까

 


1996년 4월11일 국회의원 선거의 승자는 139석을 확보한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이었다.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 총재가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는 79석에 그쳤다.

정가에서는 “디제이는 이제 끝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야권의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 전망도 비관적이었다.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은 당대의 논객이었다. 그는 “이 시대 최고의 개혁은 정권교체”라는 화두로 반전을 시도했다. 대한민국 모든 부조리는 정권교체가 안 됐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악마와 손을 잡더라도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디제이피(김대중-김종필) 연합이 추진됐고,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한-미 관계, 한-일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언론 개혁을 추진했다.

조세형 대행의 화두가 옳았던 것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총재직에서 물러나면서, 총재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다.

정당의 권력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정치는 제도 변화의 동력을 상실했다. 개헌은 물론이고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바꿀 길도 없어졌다.


17년이 지나서야 선거제도 개편안이 가까스로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됐다. 패스트트랙은 일시적인 소동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정치가 변화의 동력을 찾아가는 경로에 들어선 것일 수 있다. 되돌려서는 안 된다.


‘1여 3야’의 주도로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법안의 운명은 여전히 위태롭다.

자유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어떻게든 백지화하려고 한다.


법안을 둘러싼 대립과 긴장에는 두 가지 큰 정치적 함의가 있다.


첫째, 과거와 미래의 대결이다.

대통령제와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는 필연적으로 극한 대립을 불러온다. 이대로 두면 언젠가 분노와 적대감을 조직하는 선동가와 극단 세력이 집권할 위험이 있다.

반면에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여야 공존, 그리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출발선이 될 수 있다.


둘째, 촛불이 요청한 검찰 개혁의 성패가 걸려 있다.

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이 안 되면, 검찰 개혁은 이번에도 물 건너간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옷을 벗어서 흔들며 ‘외인론’을 주장했다. 거짓이다. 검찰은 옷이 아니라 칼이다. 칼은 피를 그리워한다. ‘내인론’을 인정하고 검찰을 개혁하지 않으면, 정권은 물론이고 검찰 자신도 망가진다.


경계해야 할 것은 ‘회귀 본능’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여차하면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법안을 포기하려고 들 수 있다. 거대 양당이 당 지지도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현행 선거제도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단견이다.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 심판론으로 내년 4·15 선거에서 1당이 되면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회고 투표, 대통령 선거는 전망 투표다.

더불어민주당이 1당을 유지하거나 과반 의석을 차지한다면, 아니 180석을 차지한다면 문재인 정부 개혁 법안을 모두 다 통과시킬 수 있을까? 없다.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법안을 실제로 통과시킬 수 있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말이다.


반면교사가 있다.

미국의 대통령제와 지역구 중심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지난 40~50년 동안 미국 정치의 양극화를 가속했다. 이제 공화당은 민주당을, 민주당은 공화당을 경쟁자가 아니라 적이라고 생각한다.

연방정부 셧다운과 대법관 임명 거부가 일상화하고 있다. 인종과 종교가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를 가르고 있다. 양당 지지자 간의 적대감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끔찍한 사고가 언제 어떻게 터질지 알 수가 없다. 불안하기만 하다.


미국의 실패를 따라가지 않으려면 우리도 발상을 바꿔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서로를 대화와 타협의 상대로 인정해야 한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에도 당 지지도에 걸맞은 의석을 나눠줘야 한다.

그래서다. 지금 이 시대 최고의 개혁은 바로 선거제도 개편이다.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96471.html?_fr=mt0#csidx1205ab6e2d4c7ecb3d25be8e095c15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