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전설, 설화

이뷔코스의 두루미 떼 이야기

道雨 2019. 7. 18. 12:45




이뷔코스의 두루미 떼 이야기



 

경건한 시인 이뷔코스는 어느날 코린토스의 이스트모스에서 거행되는 이륜차 경주와 음악 경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고 있었다. 당시 이 행사는 그리스인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아폴론은 그에게 노래하는 재능과 꿀처럼 달콤한 시인의 입술을 부여했기 때문에, 그는 아폴론의 은혜를 묵상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갈 길을 행했다.

이윽고 하늘 높이 솟은 코린토스의 탑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두렵고 경건한 마음으로 포세이돈의 성스러운 숲 속에 들어갔다. 인적은 없고 오직 한 떼의 두루미가 남쪽을 향해 그와 같은 방향으로 날고 있었다.


그는 두루미떼를 보며 말했다.

"바다를 건널 때부터 나의 길동무였던 두루미들아, 너희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우리는 먼 길을 함께 오면서 묵을 곳을 찾고 있지 않은가. 너희들과 내가 외지에서 온 객을 보호해주는 친절한 접대를 받게 되었으면!"


그는 걸음을 재촉하여 숲 한가운데에 도달했다. 그때 갑자기 강도 둘이 좁은 길 한가운데로 나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항복하든지 목숨을 걸고 싸우든지 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은 리라에는 익숙했지만, 무기를 들고 싸우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부르짖으며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뷔코스는 죽어가며 탄식했다.

"이곳에서 나는 죽는구나. 낯선 땅에서, 내 신세를 슬퍼해 줄 사람도 없이 악당들의 손에 죽는구나. 누가 내 원수를 갚아 줄 것인가!"


그는 심한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공중에서 두루미들이 목쉰 소리로 울며 날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두루미들아, 내 마지막 탄식을 들어다오. 너희들의 우는 소리 외에는 나의 부르짖음에 답하는 소리가 없구나."

그는 이렇게 말하며 죽어갔다.



(중략)


이뷔코스의 친구가 길을 가다가 그의 시체를 발견함.

축제를 보기 위해 극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다. 온 그리스인들은 아까운 시인 하나를 잃음으로써, 그리스 전체에 커다란 피해와 손실을 입었다며 한탄했다. 그들은 법정 주위에 모여, 살인자에게 복수를 하고 그들의 피로써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중략)


극장 안의 좌석은 사람들로 꽉 차서 건물이 터질 것 같았다. 관중들의 외치는 소리는 바다의 포효와도 같았다. 한 계단씩 올라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원형극장의 좌석은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이 솟아 있었다. 


이윽고 수많은 관중들은 복수의 여신으로 분장한 합창대의 무서운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합창대는 장엄한 의상을 걸치고 발을 맞추어 무대 주위를 돌고 있었다. 이처럼 무섭고 장엄한 합창대원들도, 아무 말없이 이들의 행진을 바라보는 관중들도 이 세상 사람들 같지 않았다. 


합창대원들은 검은 옷을 입고, 여윈 손에는 시뻘겋게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있었다. 얼굴에는 핏기가 없고, 이마에는 머리카락 대신 성난 뱀이 휘감고 있었다.

이처럼 무서운 차림의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행진하면서 성가를 불렀다. 그 노래는 죄있는 자들의 심장을 찢고, 그들의 모든 능력을 마비시켰다. 노랫소리는 점점 높아지며 악기 소리를 압도하고, 듣는 이들의 이성과 심장을 마비시키고 피를 굳게 했다.


"마음이 정결하고 죄없는 자는 행복할지어다! 우리 복수의 여신들은 그런 사람을 벌하지 못하리니, 그 또한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온전한 생명의 길을 갈 것이라. 그러나 남몰래 살인을 한 자는 화를 입을지어다! <밤>의 무서운 동족들인 우리는 그를 노리고 있노라. 그런 자가 우리를 피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를 쫓아가며 더 빨리 날리라. 뱀들을 그의 발에 감아 쓰러뜨리리라. 우리는 끝까지 쫓아가리라. 그 어떤 동정심도 우리의 길을 막지 못하리라. 죽을 때까지 그에게 안정도 휴식도 베풀지 않으리라."


복수의 여신들은 이같이 노래를 부르며 엄숙한 몸짓으로 춤을 추었다. 마치 신을 대하듯 죽음과 같은 적막이 온 극장을 덮었다. 

이윽고 합창대는 장엄한 발걸음으로 무대를 한 바퀴 돌고는 뒤쪽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의 마음은 환상과 실체 사이에서 방황했고, 모든 이들의 가슴은 형언할 수 없는 공포로 오그라들었다. 비밀스런 범죄를 감시하며 운명의 실타래를 감고 있는 무서운 힘 앞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맨 위쪽 좌석에서 부르짖었다.

"이봐, 저것 보라! 저기 이뷔코스의 두루미떼가 있다!"


그러자 갑자기 공중을 가로지르는 검은 물체들이 나타났다. 그것은 한눈에 보아도 극장 위를 날고 있는 두루미떼임이 분명했다.


"뭐라고? 이뷔코스라고?"


이 그리운 이름은 듣는 이들의 가슴을 슬프게 울렸다. 바다 위에 물결이 연달아 일어나듯이 입에서 입으로 말들이 전해졌다. 


"이뷔코스! 우리가 다같이 애도하고 있는 그 사람! 저 두루미떼는 살인자들의 손에 죽은 이뷔코스와 무슨 관계가 있을 거야."


말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번개처럼 모든 사람들의 심중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건 복수의 여신이 보여주는 힘이다! 경건한 시인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살인자는 스스로 제 죄를 실토했다! 맨 처음 외친 자와 그가 말을 건 상대를 잡아라!"


범인은 제 입으로 한 말을 취소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공포에 질려 창백해진 살인자들의 얼굴이 자신의 죄를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범인들을 재판관에게 끌고 갔고, 그들은 죄를 자백한 후 마땅히 치러야 할 죄값을 치렀다.




이뷔코스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음 사항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째, 고대의 극장은 1만~3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건물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극장은 큰 규모의 축제 때에만 사용되었고, 누구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항상 만원이었다. 극장은 지붕이 없는 노천 극장이어서 공연은 낮에만 있었다.

둘째, 복수의 여신들의 무시무시한 모습과 내용이 과장되어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는 점이다. 기록에 따르면, 비극시인 아이스퀼로스가 언젠가 50명의 합창단이 복수의 여신 역할을 하도록 했는데, 관객들이 공포에 떤 나머지 기절하고 경련을 일으킨 사람이 많아, 당국에서 이와 같은 연출을 금지했다고 한다.